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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셔널] 애인을 침대까지 들고 갈 힘 있으면 돼
신두영 사진 백종헌 2011-03-15

<그해 여름> <마린보이>의 조기훈 키그립

그립팀은 카메라의 무브먼트를 책임진다. 트랙을 깔고 고정된 카메라를 이동하는 돌리숏, 크레인이나 지미집에 카메라를 달고 찍는 부감숏 등이 그들의 업무다. 움직이는 자동차신을 찍을 때 카메라를 자동차에 설치하는 리깅(rigging) 작업 등도 그립팀이 맡는다. 그립팀의 팀장을 키그립(keygrip)이라고 부르는데 국내 영화촬영 그립팀은 촬영분야에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전문 기술 스탭이다. 현장에서 키그립의 역할이 중요하게 자리잡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립 전문업체 무브먼트의 조기훈 키그립에게 그립팀의 역할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았다. 조기훈 팀장은 경력 10년차의 베테랑으로 <그해 여름> <마린보이> 등의 영화 키그립이었다. 지금은 황동혁 감독의 <도가니>에 참여하고 있다.

-그립팀은 어떤 일을 하는 스탭인가. =카메라의 무빙숏, 그러니까 크레인 등 장비를 이용한 이동컷이나 부감컷을 책임지는 파트로 정착되어 있다. 돌리 그립이나 크레인 그립 같은 일을 주로 한다. 사실 그립팀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개념이다. 할리우드에서는 그립팀이 국내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한다. 영화를 볼 때 카메라가 움직이는 장면에선 그립팀이 그 일을 했다고 보면 된다.

-할리우드 그립팀의 시스템은 어떤가. =할리우드에서는 DP(Director of Photography)가 사령관처럼 촬영팀과 조명팀을 진두지휘 한다. 직접 촬영을 하는 DP도 있지만 카메라 오퍼레이터를 두고 모니터 앞에서 감독과 긴밀하게 얘기를 하면서 감독이 원하는 최대한의 앵글을 잡을 수 있도록 한다. 그 중심에 키그립이 있다. 키그립은 조명과도 밀접하다. 예를 들어 건물과 건물 사이에 큰 광선을 막아야 할 때 그립 장비를 이용한 리깅을 한다. 나도 현장에서 간단한 카메라 리깅을 하지만 주로 돌리 그립이나 크레인 그립 오퍼레이팅을 하기에 할리우드 시스템의 광범위한 일을 하는 키그립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경우가 있다.

-촬영에 따라 새로운 장비를 만들기도 하나. =기성복처럼 나와 있는 장비가 있지만 현장의 조건에 맞는 장비가 필요할 때가 있다. 촬영감독들과 같이 고민하는 포지션이 되니까 촬영감독들이 먼저 소스를 주는 경우가 많다. 영화에서 카메라 워킹이 다채롭게 변화하고 있으니까 새로운 장비의 필요성은 점점 많아질 것 같다.

-그립팀이 참고하는 영화 혹은 그립 역량이 뛰어났던 영화에는 어떤 게 있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이 유명하다. 그립 장비가 많이 쓰인 영화라면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가 있다. 자연스럽게 화면이 움직이고 있지만, 거기에 굉장히 많은 장비가 들어가 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도 그렇고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을 보면 좋은 무빙들이 많다. <달콤한 인생>을 찍은 김지용 촬영감독은 장비 활용이 좋은 촬영감독 중 하나다. 굉장히 속도감있게 빠져야 하는 앵글인데 지미집 암(arm) 길이만큼 쭉 빠지는 숏이었다. 그걸 아무리 잘 당겨도 속도가 붙으면 약간 흔들리게 되는데 그 느낌이 오히려 영화에 잘 어울렸다. 촬영감독이 숏 디자인을 잘하겠지만 감독이 원하는 것을 살려주면서 자기 스타일도 묻어 있는 것이 잘하는 촬영이다.

-촬영감독이 한명의 키그립과 계속 같이 작업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부부 같다는 말도 들었는데 파트너로서 촬영감독과의 관계는 어떤가. =김지용 촬영감독과 오래 일을 했다. 어떻게 보면 부부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부부는 서로 속이면서 살고 있잖나. (웃음)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촬영감독이 같이 작업했던 키그립을 계속해서 찾는 건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설명을 여러 번 하지 않아도 된다. 리허설해보고 한번만 수정하면 되니까. 쉽게 얘기하면 편해서 그런 건데 키그립이 프로페셔널한 테크니션으로서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립 일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1999년 정도에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촬영감독 복이 많았다. 유학파인 김병일 촬영감독에게 그립팀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막연했다. 촬영팀은 막내부터 다섯명씩 함께 다닌다. 그런데 그립팀을 보니까 두명이더라. 빨리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웃음)

-그립 일은 어떻게 시작할 수 있나. 자격조건 등은 어떻게 되나. =1종보통 자동차 운전면허가 있어야 하고 애인을 들고 침대까지 갈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기만 하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내가 속해 있는 무브먼트에는 급여 시스템이 있다. 조수들은 항상 월급이 나간다. ‘영화 하면 밥 못 먹는다’는 인식이 있는데 현장에 가면 밥차에서 밥 잘 준다. 그립 일을 하려면 마인드가 중요한 것 같다. ‘일단 배우고 나중에 갚겠다. 두고 봐라’, 이런 것 말이다.

-그립팀은 힘을 많이 쓰는 일을 하는 것 같은데 힘들지 않나. =매일 헬스하는 기분으로 장비를 들다 보니까 힘이 좋아졌다. 그립팀이 힘들다고 해도 조명팀보다는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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