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개그맨 이승윤, 박성광, 양선일, 정태호는 매주 하얀색 전신 발레복만 입고 KBS 공개홀 무대에 오른다.
이들이 무대에 서면 1천여명 관객들의 시선은 자연히 한 곳으로 향한다. 높이 1m, 길이 1m 남짓한 바에 간신히 가려지는 바로 그 부위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이들이 자꾸 스스로 가리려 들기 때문에 자꾸만 시선이 간다.
요즘 KBS 2TV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화제의 코너 '발레리NO'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지난 2일 KBS 신관에서 만난 이들은 "아직도 관객들의 뜨거운 시선에 적응 중"이라고 털어놨다.
"관객들에게 다 발레복을 입히면 모를까. 관객들과 옷을 바꿔입지 않는 한 끝까지 적응이 안될 것 같아요. 그래도 요즘에는 조금 편해지긴 했어요.(박성광)"
양선일은 "저격수가 목표물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느낀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당사자들의 고충에도 불구하고 '발레리NO'가 인기 코너로 자리 잡으면서 이들의 자리를 노리는 개그맨들도 많아졌다.
'개콘'의 쌍둥이 개그맨 이상호, 이상민은 이미 '쌍둥스키'라는 이름까지 지어놓고 '발레리NO' 4인방의 주변을 맴돌고 김준호는 발레단에 원장이 필요할 것 같다며 압력을 넣는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영입하고 싶은 이는 따로 있다. 바로 아이돌 스타들이다.
"대신 우리처럼 무대에 서려면 계기가 필요해요. 잠시 주춤해서 주목받기 위한 이슈가 필요한 스타들이 바로 그런 분들이죠. 그 친구들을 위해 옷도 한 벌 준비해 뒀어요. '검색어에 안 오른지 오래됐다. 메인 사이트 장식하고 싶다' 하는 스타분들 신청받습니다!(박성광)"
정태호가 "우리랑 평균 키가 맞아야 한다"고 하자 박성광은 비스트의 이기광을 꼽으며 "키로만 보면 우리 멤버가 될 것 같다"며 욕심을 보였다.
'발레리NO'는 두달전 처음 선보일 때부터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 비슷한 콘셉트의 개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민망한 몸개그를 전면에 내세우기는 '발레리NO'가 처음이었다.
"그간 시도하지 않았던 걸 시도한 거라 첫 반응이 극과 극이었어요. '좋다' '재미있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민망하다' '시기상조다'란 말도 많았죠. 그런데 그런 반대되는 반응들이 좋았어요. 새로운 것을 할 때는 항상 말이 많잖아요.(이승윤, 박성광)"
발레리NO'는 정태호와 양선일이 발레를 보다 떠올린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이들도 시기상조라는 생각에 6개월 넘게 묵혀 뒀었다.
정태호는 "'하자' '말자'를 계속 반복했다"며 "발레복을 입어보고는 정말 하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작진에게 보여주니 반응이 좋았다"고 돌아봤다.
둘이 본격적으로 코너를 준비하던 차에 박성광이 합류했고 몸개그 아이디어가 좋은 이승윤이 러브콜을 받고 막차를 탔다.
공교롭게 바를 같이 쓰는 이승윤과 박성광, 양선일은 키가 비슷하다. 박성광은 "키를 이렇게 맞출 수 있다니 마치 신이 멤버들을 골라준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들이 보는 '발레리NO'의 웃음 포인트는 뭘까.
"가리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공감을 사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가리는 아이디어가 기발하지 않으면 웃지 않더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소품으로 가리면 확실히 반응이 달라요. 비주얼만 갖고 웃기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이승윤)"
박성광도 "관객들이 저 친구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어떻게 갈까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가리기 위한 아이디어는 생활 곳곳에서 찾는다. 사물들이 많은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간다. 그러다보니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마트에 가서 괜찮다 싶은 게 있으면 한번씩 거기다 대봐요. 크기가 어느 정도 된다 싶으면 꼭 사죠. 대신 혼자 가야 해요. 아직 다행히 오해받은 적은 없는데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양선일)"
이승윤은 "욕심에 자꾸 작은 소품을 찾게 된다"고 했다.
이들은 국내 굴지의 발레단의 발레리노로부터 과외까지 받는다.
이승윤은 "선생님으로부터 실제 발레 종사자분들이 좋아하신다는 말도 들었다. 특히 단장님이 좋아하신다더라"며 뿌듯해했다.
녹화장에서는 미리 동작을 맞춰도 돌발 상황이 생긴다. 중요 부위를 가려야 할 소품을 실수로 떨어뜨리거나 망가뜨리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그러나 실수가 나올 때 관객들의 반응은 더 뜨겁다.
정태호는 "재미있게 미리 짠 것도 좋지만 관객들이 리얼로 이뤄지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며 "코너를 짤 때 최대한 리얼한 상황을 살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매주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관객들 앞에 서다 보면 몸매에 신경이 쓰일 법도 한데 이들은 몸매 관리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평소처럼 야식을 먹고 잔다는 정태호는 "완벽한 몸매의 사람보다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이 웃기는 데 더 좋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반면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이승윤은 "다른 멤버들이 몸매 관리에 신경 쓰지 못하게 한다"며 견제 심리를 내비쳤다.
이들은 앞으로 대립관계를 부각하거나 이야기를 넣는 방식으로 구성에 변화를 줄 예정이다. 녹화장을 벗어나는 아이디어도 생각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바로 박수칠 때 떠나는 것.
"재미있을 때까지 하는 게 우리 목표에요.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재미없다고 느껴지면 알아서 그만둘 겁니다. 계속 재미있으면 1년이고 10년이고 가야죠.(이승윤, 정태호)"
okk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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