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건 사각의 스크린에서 훌훌 벗어나 관객의 마음에 무한히 각인되는 영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969년 당시 서부영화 흥행사상 최고 수입인 2900만달러라는 기록(이 기록은 21년 뒤인 <늑대와 춤을>이 갱신하기까지 이어졌다)을 세우며 순식간에 주연인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퍼드를 할리우드의 영웅으로 등극시키는 위력을 발휘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의 한 장면 또한 예외일 수 없다.
B. J. 토머스의 감미로운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가 흐르는 가운데 폴 뉴먼과 캐서린 로스가 함께 자전거를 타는 서정적인 영상은 지난 시절의 영화를 오늘에 되살리는 묘약으로 기능한다. 뉴스영화를 연상시키는 세피아톤의 화면 안에서 미국 중서부 시대는 완벽히 재창조되었으며, 확 트인 조망과 어우러진 정확한 초점은 두 무법자의 황폐한 삶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작은 기술의 변화로 이야기를 한층 강화시키는 촬영감독 콘래드 홀의 움직임은 마지막 순간 탄환 속으로 질주하는 두 주인공의 죽음에 이르러 예의 주시를 멈추고 고정됨으로써 영화를 하나의 전설로 끌어올리기에 이른다.
안정감 있는 촬영으로 인물의 심리를 포착해내는 데 주력해온 콘래드 홀은 1956년 촬영을 시작한 이래 50여년을 카메라와 함께한 촬영계의 달인이다. 1926년 타히티 태생인 홀은 작가인 아버지 제임스 노먼 홀의 영향으로 예술적인 분위기에서 유년기를 보낸다. 이후 남캘리포니아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던 그가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형편없는 실력으로 전공에는 통 흥미를 갖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부터이다. 단순한 흥미에서 시작되었다지만 영화로 전공을 바꾸면서 동료들과 함께 실험영화를 찍었으며, 미국촬영가협회에서 최초로 촬영 장학금을 받는 실력을 발휘한다.
졸업 뒤, 동료들과 독립영화 작업을 하던 홀은 TV시리즈 <Stoney Burke>로 촬영감독에 데뷔하였으며, <엣지 오브 퓨리>(1958), <인큐버스>(1965)와 같은 저예산영화를 작업하면서 촬영감독으로 자산이 될 실력을 갖추어나간다. 처음 촬영한 극영화 <와일드 씨드>(1965) 이후 <모리터리>(1965)와 (1966), <인 콜드 블러드>(1967)로 연속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되면서 빠르게 할리우드의 주류 촬영감독으로 인정받은 홀은 한때, 10년간의 공백기를 갖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하스켈 웩슬러와 광고회사를 경영하였으며,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하려는 바람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실제 그는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을 각색하기도 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들추어보면 73살의 나이에 촬영한 <아메리칸 뷰티>가 번쩍 눈에 띤다. <내일을 향해 쏴라>에 이은 두 번째 오스카상 수상작인 이 작품의 성공은, 1994년에 이미 그가 경력이 황혼에 접어든 베테랑 촬영감독에게 주어진다는 미국촬영가협회의 평생공로상을 수상하였다는 사실에 비추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들지 않는 촬영에 대한 열의와 연륜으로 이루어진 노장의 렌즈는 이 영화로 감독에 데뷔하는 신참 샘 멘데스를 뒷받침해줄 훌륭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좋은 작품이라는 판단이 있었기에 보수는 개의치 않았으며, <위대한 승부>에서 스티브 자일리언 감독과 함께했던 것처럼 첫 작품을 연출하는 감독과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에게 주위의 평판이나 성공에 대한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새로움을 향한 도전이다. 그간 여러 편의 영화에서 섬세한 어둠의 이미지를 포착해낸 홀의 시선은 이 한편의 영화를 그려내는 데 집약된다. 미국 중산층을 관통하는 어둡고 그늘진 이미지는 내부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심리상태와 대비되어 긴장을 고조시켜주며 재조명되었다.
자신 앞에 펼쳐진 빈 백지를 채워나가는 심정으로 홀은 기술을 손끝에 담아 스크린에 차곡차곡 영상화시켜나간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촬영 또한 감정을 담아내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의미에서의 기술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바로 ‘어떻게’가 아닌 ‘왜’ 이 장면을 찍는지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칠 줄 모르는 저력을 가진 촬영감독으로 홀은 이렇게 충고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면모를 그 시대에 맞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단지 기술적인 면에서뿐만이 아니라, 좀더 명석하고 훌륭한 인격을 쌓아야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이것이 작품을 꾸준히 살아 있게 만드는 비결이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Conrad Hall 필모그래피
<더 로드 투 퍼디션>(The Road to Perdition, 2001) 샘 멘데스 감독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 1999) 샘 멘데스 감독
<시빌 액션>(A Civil Action, 1998) 스티븐 자일리언 감독
<톰 크루즈의 위다웃 리밋>(Without Limits, 1998) 로버트 타운 감독
<러브 어페어>(Love Affair, 1994) 글렌 고든 캐런 감독
<위대한 승부>(Searching for Bobby Fischer, 1993) 스티븐 자일리언 감독
<제니퍼 연쇄 살인 사건>(Jennifer Eight, 1992) 브루스 로빈슨 감독
<집단 소송>(Class Action, 1991) 마이클 앱티드 감독
<불타는 태양>(Tequila Sunrise, 1988) 로버트 타운 감독
<블랙 위도우>(Black Widow, 1986) 밥 라펠슨 감독
<마라톤 맨>(Marathon Man, 1976) 존 슐레진저 감독
<스마일>(Smile, 1975) 마이클 리치 감독
<부서진 세월>(The Day of the Locust, 1975) 존 슐레진저 감독
<캣치 마이 소울>(Catch My Soul, 1974) 패트릭 맥구한 감독
<일렉트라 글라이드 인 블루>(Electra Glide in Blue, 1973) 제임스 윌리엄 구에르치오 감독
<팻 시티>(Fat City, 1972) 죤 휴스톤 감독
<해피엔딩>(The Happy Ending, 1969) 리처드 브룩 감독
<트릴로지>(Trilogy, 1969) 프랭크 페리 감독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 조지 로이 힐 감독
<헬 인 더 퍼시픽>(Hell in the Pacific, 1968) 존 부어맨 감독
<인 콜드 블러드>(In Cold Blood, 1967) 리차드 브룩스 감독
<폭력 탈옥>(Cool Hand Luke, 1967) 스튜어트 로젠버그 감독
(The Professionals, 1966) 리처드 브룩스 감독
<하퍼>(Harper, 1966) 잭 스마트 감독
<인큐버스>(Incubus, 1965) 레슬리 스티벤스 감독
<모리터리>(Morituri, 1965) 베른하드 위키 감독
<와일드 씨드>(Wild Seed, 1965) 브라이언 휴톤 감독
<더 아웃터 리미트>(The Outer Limits, 1963) 레온 벤손 감독 외
<엣지 오브 퓨리>(Edge of Fury, 1958) 로버트 거니 주니어 감독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