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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잡고 싶다
강병진 사진 최성열 2011-02-15

개구리소년 사건 소재로 한 <아이들…>이 밝혀낸 진실과 의문점

1991년 3월26일, 개구리소년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20년 뒤인 2010년 3월26일, 천안함이 사라졌다. 날짜는 우연의 일치일 뿐이지만 미스터리의 성격상 두 사건은 닮아 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췄고, 발견된 유해(잔해)는 그간의 행적과 사라진 이유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담고 있지 않았다.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격침인지 좌초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듯이, 개구리소년들의 죽음 또한 타살인지 아닌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 전체가 빠져버린 거대한 구멍이었다. 개구리소년 사건을 영화화한 <아이들…> 또한 천안함 사건의 미스터리를 재추적한 KBS <추적 60분>과 닮은 듯 보인다. <아이들…>은 사건에 얽힌 의문점과 등장한 가설의 진위 여부를 드러내며 주장한다. 아이들은 살해당했다. 당연히 아이들을 죽인 범인도 어딘가 살아 있다.

가설의 재료는 한권의 책, 정확히 말해 한 사람이다. 사건 발생 5년 뒤인 지난 1996년, 한 심리학 교수는 개구리소년 중 한명인 종호(극중 이름)의 집에 아이들이 묻혀 있다고 주장했다. 수사에 진전이 없었던 경찰은 그의 가설에 힘입어 종호의 집 화장실과 방 등을 파헤쳤지만 시체는 나오지 않았다. 부모를 범인으로 몰았던 교수는 2005년 1월부터 10월까지 자신의 수사기록을 인터넷 카페에 연재했고, 이 기록은 같은 해 11월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아이들…>은 그의 기록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다. 극중에서 관객을 안내하는 이는 방송 조작으로 좌천당한 다큐멘터리 PD 강지승(박용우)이다. 대구지사로 발령받은 그는 다시 본사로 올라갈 기회를 노리던 중, 황우혁 교수(류승룡)의 가설을 듣게 된다. 아이들의 실종에 부모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추적에 나선 황우혁과 강지승은 종호의 집을 찾고, 이때 종호의 아버지(성지루)로부터 석연치 않은 점들을 발견한다. 추리를 거듭하던 황우혁은 아이들을 죽인 범인은 종호의 아버지이고, 그래서 종호만은 죽지 않았을 것이며 죽은 아이들은 종호의 집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강지승은 황우혁의 말을 믿고 경찰을 설득해 종호의 집을 파헤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발견되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사건 발생 11년 뒤인 2002년 9월, 아이들은 그들이 놀러간다고 했던 산의 중턱에서 유골로 돌아온다. 종호의 부모를 의심했다는 죄책감을 느낀 강지승은 과거의 수사관인 박 형사(성동일)를 찾아가 진범 추적에 나선다.

원작을 부정하는 영화

<아이들…>은 원작과의 관계를 볼 때 흥미로운 영화다. 분량으로는 분명 원작이지만 사실상 영화는 원작의 주장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황우혁이 부모를 범인으로 지목하기까지의 과정은 영화가 관객을 끌어당기기 위해 배치한 흥미요소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원작자가 내놓은 가설은 원작보다 영화에서 더 처절하게 무너진다. 이때 질문이 따른다. 그렇다면 가설의 근거가 된 석연치 않았던 상황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중·후반부에 이르러 원작의 가설을 무너뜨리는 <아이들…>은 이때 발생한 반작용의 동력으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슬픔을 강조하는 한편, 진범의 그림자를 쫓고 있다. 말하자면 영화는 원작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는 연출자인 이규만 감독이 원작자의 가설을 믿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는 “실제 아이들의 부모와 수사관, 법의학자, 그리고 원작자를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관계에 의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규만 감독.

“책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어떤 아이들이 손을 흔들면서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규만 감독의 진짜 속내를 찌른 건 <리턴>의 공동작가이자 아내인 이현진 감독이었다. “지금 부모가 정말 용의자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규만 감독은 혼란스러웠다. 한권의 책과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만으로는 부모를 범인으로 몰고 끝나버리는 영화이거나, 그 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영화 둘 다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범인일 리가 없다고 확신한 이현진 감독은 원작이 물증없이 심증에 크게 기대고 있으며, 해석 가능성의 여지를 좁혀놓았다는 등의 구조적 허술함을 짚어냈다. 다시 원작을 읽은 이규만 감독은 그제야 자신이 “맛이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현진 감독이 사건을 다시 파보자고 했다. 부모가 범인이 아니라는 명확한 물증을 찾아야 했다.”

이규만 감독과 이현진 감독은 먼저 아이들의 부모를 만났다. 부모들 가운데 만남이 가장 어려웠던 이는 역시 종호 어머니였다(종호의 아버지는 이미 암으로 세상을 뜬 뒤였다). 종호와 함께 실종된 원길이(극중 이름)의 아버지는 사건 당시 부모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아이들을 찾아다녔던 전국미아찾기협회의 나주봉 회장의 도움으로 수차례 접촉을 시도한 끝에 만날 수 있었다. 4시간가량의 대화가 오고갔을 때, 이규만 감독은 잠시나마 혼란스러워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너무 순수한 분이었다. 책에서는 무뚝뚝하고 어딘가 음산하게 묘사됐는데, 만나보니 소녀도 그런 소녀가 없더라. 불교신자인데, 이제는 마음을 내려놓으신 것 같았다. 더이상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는다고 하셨다.”

이규만 감독은 실제 원작자가 가설의 근거로 삼았던 몇몇 부분들을 확인했다. 종호의 할머니는 왜 원작자를 보고 이상한 손동작을 했을까. 원길이의 아버지는 “아이들이 사라지기 전부터 그러셨다”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종호의 아버지는 왜 화장실까지 따라가 원작자에게 말을 걸었을까. “종호 어머니와 원길이 아버지에게 들었는데, 종호 아버지는 원래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었고 당시에는 누가 와도 그렇게 따라다니면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셨다더라. 말하자면 종호 아버지는 호의를 베푼 거였는데, 원작자의 관점에서는 의심스러운 무엇이었던 거다. 이런 엇갈림이 비극의 시작으로 보였다.” 당시 종호 어머니가 자신의 운명에 대해 흘리듯이 던진 한마디는 고스란히 시나리오에 적혔다. “사람 사는 게 파도 같다. 파도가 성이 나서 그런 게지.”

물증을 찾아라

부모들의 무죄를 확신한 뒤, 찾아야 했던 건 원작자의 주장을 무너뜨릴 물증이었다. 당시 사건으로 원작자는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고 학회에서도 제명당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새로운 가설을 내세우고 있었다. 아이들의 시체가 종호의 집에 없었던 게 아니라 그때 찾아내지 못한 것이며, 그 이후 옮겨졌다. 그리고 (제 자식을 죽일 수는 없었을 테니) 종호는 어딘가에 살아 있다.

이규만 감독은 아이들의 유해를 부검한 법의관을 만났다. 원작자의 가설이 틀렸다는 물적 증거는 이미 유해 발견 당시에 나와 있었다. 종호의 두개골에는 사인으로 추정되는 함몰된 상처가 두개나 있었다. 발견 당시 척추뼈의 순서가 제대로 맞아 있었다는 점은 시체가 옮겨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유해가 발견된 장소의 주위는 군대였고, 2분 거리에 민가가 있었다. 찾아가서 살펴보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곳이라고는 그 장소뿐이었다. 아이들이 그곳에서 죽었고, 숨겨졌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법의관님 말로는 그 땅이 깊이 팔 수 있는 땅이 아니라고 하더라. 사실상 매장된 게 아니라 흙으로 덮여 있었던 거다. 유해에서 발견된 파리구더기가 그 증거였다. 법의관은 깊이 매장된 시체에서는 구더기가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이규만 감독은 아이들이 살해당했을 그 장소에 누워보았다. 하늘이 보였다. 그는 아이들이 보았을 하늘이라고 생각했다. 푸른 하늘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취재를 거듭한 결과,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용의자가 없을 뿐 별다른 의문점없이 종결된 사건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남아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가며 사건에 매달렸던 원작자는 왜 법의관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언론에 공개된 몇몇 자료만 확인했다면, 자신의 가설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규만 감독과 이현진 감독이 원작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법의관을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놀라운 건, 원작자가 이미 언론에도 공개됐던 부검결과를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부검으로 나온 여러 증거들을 이야기했다. 그때 원작자의 등 뒤로 벽이 무너지는 게 보였다. 사람이 약 17년간 믿어온 신념이 무너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더라.”

하지만 그 뒤 다시 만난 원작자는 “그 유골이 종호의 것이란 증거가 있나, 어린애의 두개골은 쉽게 구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현진 감독이 평소 욱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때 욱하는 게 보여서 급하게 말렸다. 사실 종호의 유해에서 추출한 DNA가 종호 엄마와 일치한다는 것도 이미 부검 결과에 나와 있었다.” 영화에서 황우혁 교수가 ‘인지 부조화’에 대해 강의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자신이 믿고 있었던 것들이 무너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자기가 틀린 것을 인정하지 않게 되지. 그리고 그 틀린 이론을 믿는 이들 사이에서 더욱더 견고해지고… 그러니 인간이란 참 애틋한 거야.” 이 장면을 삭제할지 말지 고민 중이었던 이규만 감독은 원작자와 다시 만난 뒤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작자의 극중 이름이 왜 황우혁인지, 극중에서 그를 가리켜 왜 굳이 ‘황구라’라고 하는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규만 감독이 취재에 들인 3년은 곧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가 내놓은 영화도 그런 믿음을 강조하는 지점에서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는 실제 수사에서 지목되지도 않았던 허구의 용의자를 드러내고, 그를 추적하는 과정까지 이어진다. “당시 사인이 저체온증에 의한 자연사냐, 타살이냐란 논란이 있었다. 법의관님은 자비를 들여서 외국의 여러 유명한 법의학자에게 자료를 보내 자문을 구했고 모든 법의학자가 타살이라는 결론에 동의했다고 하더라. 타살이라면 진범이 있다는 얘기 아닌가. 무엇보다 아이들의 유골에 난 상처를 본 순간, 꼭 범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르적이지 않은’ 스릴러영화

이규만 감독은 유골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영화감독이란 직업이 가진 잔인함을 느껴야 했다. 유골을 보기 위해서는 부모의 입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죽은 자식의 유골을 보게 만들어야 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지만, 미술의 사실성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결국 그는 원길 아버지의 도움으로 유해가 된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다. “아이의 두개골이라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작았다. 사람이 아니라 토끼의 두개골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함몰된 부분을 겨우 보존해놨는데, 만지면 바스라질 것 같았다.” 유골에는 사인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을 함몰된 상처뿐만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흉기로 수십번을 콕콕 찌른 듯한 상처도 있었다. “아이들을 단번에 죽인 게 아니라, 가해를 한 것 같았다. 법의관님은 단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살아 있을 때 생긴 상처가 맞다고 했다. 나로서는 범인의 뒷모습을 봤다는 느낌이었다. 진짜 범인이 1명일지 여러 명일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는 영화에서 묘사된 것보다 더 잔인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유골을 확인하는 동안 원길 아버지는 그 과정을 담담히 지켜봤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무심히 던진 한마디도 영화에 담겼다. “아이가 죽은 걸 알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애가 죽을 때 얼마나 아팠을까요?” 이규만 감독에게는 부모들이 겪은 아픔의 본질에 한발 더 다가선 순간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장르적으로 연출되지 않은 스릴러영화다. 감독의 전작인 <리턴>과 비교할 때, 그리고 실제 사건이 가진 힘을 생각한다면 의외인 모양새다. 만약 원작자의 시선을 따르는 구성이었다면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긴장감은 더 배가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허구의 안내자를 내세워 미스터리의 자극을 중화하는 한편, 부모의 깊은 슬픔이 드러나는 순간에서야 영화적인 방점을 찍고 있다. 이에 대해 이규만 감독은 “감독으로서의 욕심과 윤리성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즉, <아이들…>이 왜 만들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자문자답이다. “실제 사건에 대한 무수한 소문이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미 모든 게 입증된 사건이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이미 정리된 내용을 널리 알려서 더이상의 상처가 없도록 만드는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종호의 부모님이 잘못된 가설을 접한 사람들의 용의선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편의 장르영화로 평가할 때, <아이들…>은 분명 실화의 무게와 그를 대하는 태도에 일정 부분 잠식된 영화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로서 부단한 취재와 증명으로 실화의 이면을 드러내려 한 태도는 충분히 평가받을 듯 보인다. 아울러 과거에 새겨진 상처가 치유된다면 더 환영받을 일이다.

그리고 또 비극이 있었다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에 얽힌 또 다른 오해들

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가장 큰 비극을 겪었던 이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환자촌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일하다가 월급을 못 받고 나온 사람이 방송사에 거짓 제보를 했고, 당시 방송사가 확인절차 없이 보도한 것이 화근이었다. 아이들의 부모들과 군부대, 기자들이 나환자촌으로 몰려갔고 환자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때 몇몇 기자들은 마을 회관에 갇혔는데 이 상황에서 쓰인 기사가 방송되면서 이번에는 환자들이 방송사로 몰려가는 일도 벌어졌다. 심지어 흥분한 환자들은 당시의 기자를 입으로 물었다고 한다. 물론 나병은 그렇게 전염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환자들에게 물린 기자는 잠복기인 7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검사를 받는다고 한다. 이규만 감독은 “이 환자들의 고통만으로도 또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그 자체도 비극이지만, 더 많은 비극을 낳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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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다혜·디자인 김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