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터 람스,
3월20일까지 / 대림미술관 / 02-720-0667
패션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어느 글에선가 읽은 패션모델 케이트 모스의 말은 가슴속에 새겨두고 있다. 옷 잘 입는 비결이 뭐냐고 묻자 그녀의 대답. “매일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 어떤 아이템을 뺄 것인지 고민해요.” 어쩐지 이 말이 액세서리 한점, 소품 하나 더 걸치고 싶을 때마다 머릿속을 맴돌았고, 결국 현관문을 뒤로하기 전에 버림받는 아이템들이 종종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집밖으로 나와보면 모스의 그 간단한 말이 정말로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집에 버려두고 온 아이템들이 불필요한 것들이며, 금세 질려버릴 거란 사실이 한 시간만 지나도 명백해지니까. 그럴 때마다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Less is More)라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말이 얼마나 살아가는 데 있어 절실하게 필요한 말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독일 디자이너 디터 람스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후예다. 산업디자인계의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그는 브라운사의 가전기기와 비초에사의 가구를 심플하고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제작해 명성을 떨쳤다. 수십년간 그들 회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소비자들의 입맛을 신경써왔을 그는 압축과 생략의 대가답게 좋은 디자인을 위해 디자이너가 염두해야 할 법칙을 ‘10계명’으로 줄여 동료들과 나눴다. 그 법칙을 간추려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이해하기 쉽게 한다. 좋은 디자인은 불필요한 관심을 끌지 않는다. 좋은 디자인은 오래 지속된다. 좋은 디자인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 좋은 디자인은 할 수 있는 한 최소한으로 디자인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제품을 보면 이러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체감할 수 있다. 잡는 사람을 고려해 손잡이에 손가락 모양의 움푹 팬 부분을 추가한 <Door Handle Programme>(1986), 쓰는 사람에 따라 확장과 재배열을 가능케 한 선반인 <Universal Shelving System>(1960), 도리아식 기둥 모양으로 기계를 사용할 때마다 즐거움을 주는 주서기 <Citromatic>(1972)는 제작으로부터 30~40년이 지난 요즘 현대사회에서 사용한다 해도 전혀 민망하지 않은 디자인을 자랑한다. 람스가 브라운사와 비초에사를 위해 디자인한 400여점의 제품을 공개하는 <Less is More: 디터 람스의 디자인 10계명 전>에서는 예술의 영역에 포함되어도 손색이 없을, 더 다양하고 기발한 산업디자인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