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예전엔 머리로 음악을 만들었다면 이번엔 가슴으로 작업했죠. 생각이 아니라 본능에 충실한 음악을 채워 래퍼로서의 꿈을 이뤘어요."
최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빅뱅의 두 멤버 지-드래곤(권지용.23)과 탑(최승현.24)은 듀엣 1집 'GD&TOP'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음반에서 앙칼지고 날렵한 음색의 래퍼 지-드래곤과 묵직한 저음의 래퍼 탑은 마치 성악의 테너와 베이스처럼 화음을 만들어냈다.
그간 빅뱅이 랩이 가미된 대중적인 가요를 선보였다면 두 래퍼는 두터운 힙합 베이스에 일렉트로닉, 디스코,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얹었다. 일부 곡에선 언더그라운드적인 색채까지 띄는 도전도 했다. 음악 필체를 자유분방하게 놀렸다는 점에서 강한 자신감마저 느껴진다.
그 결과 1집은 수록곡 '오 예(OH YEAH)' '하이 하이(HIGH HIGH)' '뻑이가요' '집에 가지마' 등 4곡을 한꺼번에 띄우며 음반 주문 물량이 15만장에 달했다.
"진짜 뿌듯한 점은 말로만 래퍼라고 비난하던 분들이 인정해준 점이죠. 또 언더그라운드 래퍼들도 우리에 대한 생각을 바꿔 준 것 같고요. 아이돌 그룹 멤버임에도 힙합을 고집한 결과 우리가 비주류 힙합에 대한 선입견을 조금은 바꿔놓은 것 같아요."(두 멤버)
◇"개성..자유로운 사고 덕택" = 두 래퍼는 음악, 무대 퍼포먼스, 패션에서 강한 개성을 뽐낸다. 이들이 뗀 걸음마다 유행이 생겨나는 이유다. 둘은 "우리 사고가 자유로운 덕택"이라고 했다.
여느 아이돌 그룹과 달리 손수 음악을 만드는 이들은 곡 작업 방식부터 남다르다.
"눈을 뜨면 작업실에 가요. 거기서 밥 먹고 영감이 떠오르면 작업하고, 생각 안 나면 게임하고 춤도 추죠. 말이 밤샘 작업이지 온전히 음악 만드는 시간은 1시간 남짓일걸요."(지-드래곤)
"일한다고 생각 안해요. 대화하면서 가사 쓰고, 녹음실 들어가고 싶을 때 들어가요. 각자 작업실에 들를 때마다 한곡에 각자의 색깔을 쌓고 또 쌓죠. 그래서 결과물도 자유롭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탑)
물론 창작자로서의 고통이 없는 건 아니다.
지-드래곤은 "'영감(靈感)님'이 매번 오시진 않는다"며 "한때 안 나오는 걸 쥐어짜려니 음악이 일처럼 느껴진 적도 있다. 하지만 이번엔 배우가 스토리를 이어가는 릴레이 연극처럼 우린 작가가 된듯 흥미롭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방송 무대에도, 패션에도 매번 드라마틱한 변화를 줬다. 곡당 기본 틀만 짜여있을 뿐 방송사 무대 세팅, 조명에 따라 현장에서 그때그때 바꿨다.
두 멤버는 "요즘 음악계는 음악만 좋다고, 잘 생겼다고 승부를 내는 게임이 아니다"며 "대중의 주목을 받으려면 보는 재미도, 말할 거리도 제공해야 한다. 새로운 걸 원하는 분들을 위해 퍼포먼스도 바꾸고 패션쇼의 '쇼 북'처럼 다양한 스타일링을 보여준다. 우린 언제나 새로워보이고 싶다"고 했다.
◇"어려운 랩 음반 선입견 깨고팠다" = 눈치보지 않고 만든 곡들이기에 방송사 심의란 암초를 만나기도 했다. '뻑이가요'는 노랫말에 저속한 표현, '집에 가지마'는 선정적인 내용이라며 일부 방송사로부터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원곡을 훼손하지 않겠다며 수정하지 않았다.
"방송사 심의 통과 여부보다 음악팬들을 대리만족시킬 음악을 선보이는 게 더 의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제가 부모님 말씀 잘 들을 이미지가 아니니 방송사가 색안경을 꼈을 수도 있죠. 하하. '뻑이가요'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김선아 씨의 '뻑이 간다, 뻑이 가'란 대사에서 영감을 받은 가사인데 왜 드라마는 되고 음악에선 안되죠?"(지-드래곤)
일부의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이들의 음악은 여러 대목에서 실험적인 시도가 엿보인다.
미국 유명 DJ 겸 프로듀서 디플로가 작곡가로 참여한 '뻑이가요'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트랙에 비트있는 랩 플로우를 얹어 걸쭉한 힙합으로 완성했다. 또 '베이비 굿나이트(BABY GOOD NIGHT)'에선 어쿠스틱한 기타 연주에 몽환적인 랩, 탑의 솔로곡 '오 맘(OH MOM)'에선 록 사운드, 지-드래곤의 솔로곡 '어쩌란 말이냐?'에선 로큰롤 리듬을 섞었다.
이들은 "'두 래퍼가 작업하면 못 알아듣는 랩만 하겠지'란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며 "우린 각자 색깔이 강하지만 섞을수록 계속 다른 색깔이 나왔다"고 했다.
◇"빅뱅 신보는 록 가미한 따뜻한 음악" = 이달 중순까지 듀엣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바로 빅뱅에 합류한다. 오는 24일 빅뱅의 신보를 내고 이어 25-27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4만 명 규모의 콘서트 '2011 빅 쇼(BIG SHOW)' 무대에 오른다.
"빅뱅 음반은 거의 완성됐어요. 지금껏 빅뱅은 신나는 음악과 서정적인 음악이 큰 줄기였는데 이번엔 새롭게 록을 가미했어요. 지난해 나라가 어수선했던 탓인지 요즘은 사람들이 TV를 봐도 생각없이 웃을 거리를 찾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무겁고 기계적인 음악보다 따뜻하면서도 신나는 음악을 선보이려고요."(두 멤버)
이들은 "빅뱅 무대는 정말 재미있을 것"이라며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걸 모른다. 가수에게 무대 체질이라고 하는 건 숨겨진 걸 무대에서 표출하기 때문이다. 우린 무대에선 다른 사람이 되고 내려오면 바보가 된다"고 웃었다.
일본에서도 큰 인기인 빅뱅은 신보 활동을 마치면 오는 5-7월 일본으로 건너간다.
지-드래곤은 "일본 팬들에게도 우리가 해야할 몫이 있다"며 "이번엔 제대로 프로모션을 하고 싶어 3개월 간 현지에서 산다. 돌아오면 연말까지 국내에서 활동할 것이다. 이때 선보일 음반에는 세계적인 작곡가들이 참여한다. 빅뱅 음악의 신선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꿈은 이뤘는데 이미지를 잃었다" = 2006년 데뷔해 큰 사랑을 받는 이들의 삶에도 득실이 있었을 터.
탑은 "감정을 표현하는 직업이니 평소 감정 기복이 심해져 나를 잃은 것 같다"며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통해 사람을 얻었다"고 했다.
또 유년기부터 방송 활동을 한 지-드래곤은 "어린 시절부터 꿈 꾼, 큰 사랑을 받는 가수가 됐다"며 "지금의 나를 보며 가수의 꿈을 키우는 친구들이 있다면 만족한다. 하지만 내 이미지를 잃었다. 난 착한 여우인데 까칠하고 버릇없고 실속 차리는 이미지가 돼 있더라"고 웃었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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