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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났어요! 아저씨들도 대박났어요!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1-02-01

<평양성>을 만든 아저씨들이 당구장에서 웃고 떠들다

“<황산벌>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영화였다.” <왕의 남자>로 신드롬을 일으키던 당시 인터뷰 중, 이준익 감독은 <황산벌>을 아쉬워했다. 제작비의 간소화, 사극 장르의 고증을 자유롭게 탈피한 영화, 좌우 논쟁의 파장까지 일으킨 점으로 보자면 <황산벌>은 <왕의 남자>에 앞서, 이준익 영화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영화였다. 그로부터 8년 뒤다. 이준익 감독이 <황산벌>의 속편이라 할 <평양성>에 진격했다. 나당연합군의 최종함락지로 표적이 된 고구려 평양성이 역사적 사실. 이준익 감독은 여기에, ‘만약 김유신이 나당연합군의 뒤로, 고구려 주도의 통일을 돕고 있었다면?’이라는 발칙한 상상을 더한다. 물론 방언이 난무하는 포복절도할 코믹이자 상하 계층에 관한 풍자이고, 민초들의 해학이다. 35억원 들인 <황산벌> 제작비의 배에 가까운 60억원 규모. 이준익 감독의 표현에 의하면 <평양성>은 전작 <님은 먼곳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등 연이은 흥행 저조에 대한 마지막 반격이다. “이번에도 안되면 연출 포기한다!” 자신감인지 걱정인지 모를 각오들. 감독의 다짐이 이렇다보니 <평양성>을 함께한 배우들의 각오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평양성>의 주요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황산벌>의 총기어린 김유신 대신, 치매연기를 선사하는 정진영, 김유신이 있는 곳엔 언제나 함께하는 동생, 김흠순 장군 역의 신정근. 연개소문(이원종)의 아들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드는 고구려 수장 남건 역의 류승룡. 그리고 형과 달리 당나라에 우호적인 남생을 연기하는 윤제문이다. 지난 1월 14일 오후 7시. 이준익 감독이 애용한다는 충무로의 한 당구장에 모인 다섯 ‘아저씨’들의 수다. 시작도 하기 전, 윤제문이 목소리를 높인다. “인터뷰 빨리 하고 막걸리에 삼합이나 하러 갑시다!”

정진영 난 감독님이 <평양성> 진짜로 만들 줄은 몰랐다. 감독님이나 조(철현) 대표님이나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틈만 나면 기획회의를 하는 사람들이다. 수백개의 영화가 살았다 죽었다 하는 게 아침(제작사)의 일과다. 이준익 그래서 제일 많이 반대한 게 당신이었다. 정진영 <달마야 놀자> 당시 제작자로 날 캐스팅하러 왔을 때부터 난 반대하지 않았나. 늘, ‘이번 시나리오 좋다’고 기획 단계부터 사람을 꼬인다. 그러면 난 시나리오 나오면 보고서, ‘안된다!’고 하지. (웃음) 이준익 일관된 반대다. 일단 반대! 무조건 반대! 심지어 <왕의 남자>도 반대한 사람이다. 정진영 반대라고 하면 그렇고. ‘우려’였다고 승화시켜주라. <황산벌>은 2003년 당시에 듣도 보도 못한 사극 아니었나. 반전의식까지 뿌리 깊이 박혀 있었다. 그때도 걱정스러웠지만 그 영화가 8년이 지난 지금 어떤 의미로 전해질까, 그게 더 걱정이더라. 그러니 ‘그거 하지 말고 딴 거 하세요’ 한 거다. 감독님과 내 관계를 정리해보면 아무래도 난 야당쪽인 것 같다. 재고를 하게 만들기 위해서 거칠게 얘기하는 거다. 내가 아무리 거칠게 얘기해도 상처 안 받지 않나. 이준익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 인정하는 거다. 바람직하다. 같이 살자면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을 똑바로 지적해줘야 한다. 의견을 받아들여 이번엔 <황산벌>의 판박이로 가는 게 아니라 ‘거시기’(이문식) 중심으로 가자고 한 거다. 류승룡 역시 그래서 그 부분이 제일 잘 반영된 거 같다. 대서사인데 결국 민초가 주인공이다. 대부분 자기가 왜 싸우는지 모르는 병사들이 주인공이 된다. 지금 현실을 대입해도 다르지 않다. 정진영 이 영화는 <황산벌>하고는 구조 자체가 다른 영화다. 극점이 많은 드라마다. 거시기의 멜로, 연개소문의 투혼, 문디의 출세욕. 이렇게 서로 다른 극점들이 존재하니 <황산벌>처럼 힘으로 밀어붙이고 쓰면 안된다. 구조 속에서 시나리오를 잘 따라가야 한다. 이준익 소실점이 많은 영화다. 계층적으로는 상하, 좌우로는 이데올로기. 또 동서남북으로 고구려, 백제, 당나라가 있다. 남생이 나오는 장면으로 보면 남생이 주인공, 남생 주도로 가는 이야기가 가능하다. 김유신으로 보면 또 김유신 주도의 영화가 된다. 남건, 거시기, 누구든 영화 속 캐릭터가 각자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각자의 입장이 정확하니까. 내가 편집하다가도 볼 때마다 영화가 달라 보이더라. 류승룡 행간이 많은 영화더라. 시나리오 보고, ‘이게 정말 완성된 영화인가?’ 했으니까. 어렵더라. 코믹인데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실을 촘촘히 꿰어맞추고. 표면적으론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고구려를 잘 이용해서 당나라를 치자는 계략들이 있다.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사실을 풍자와 해학을 섞어서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별로 없다 싶더라.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 생각됐고 그래서 더 하고 싶더라. 이준익 원래 사극이 갖고 있는 전형성을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시도로 근거도 없는 성을 만들고 그랬다. <황산벌>만 해도 제작비 때문에 뜻대로 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지. 성도 목책으로 얼기설기 짓고. 이번엔 상상력을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성루에 대형 까마귀 머리를 설치한 건 기존 사극에선 한번도 못 본 비주얼이다. 사극은 고증에 얽매이다 보니 그 범주에서 떨어지지 않아야 리얼리티가 산다고 생각한다. 난 아예 대놓고 리얼리티 없애자, 하고 갔다. 류승룡 <황산벌>하고 8년 만이다. 그동안 CG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나. 이준익 사극 전쟁영화 장르인데 정확하게 따지면 제작비가 57억 5천만원이다. 그렇게 보면 많은 돈은 아니다. 그런데 CG 좋다. 신무기도 기대해야 한다. 류승룡 옛날에는 촬영하려면 갑옷 무게만 15kg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가볍고 모양도 예쁘다. 특히 고구려 복장은 정말 좋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간 것 같은 변화다. 윤제문 재밌더라, 난. 이준익 어떻게 재밌었나. 좀 구체적으로 말해야 기자가 기사를 쓰지. 윤제문 ….

감독의 디렉션이 필요없는 관록의 배우들

이준익 캐스팅은 일단 스케줄이 되고 돈이 맞으면 하는 거다. (웃음) 물론 감독은 배우에 대한 호감이 있고, 배우는 감독에 대한 호감이 있어야 하지. 신정근 내 경우엔 가난해서 호감이 가더라. (웃음) 이준익 그렇지. 이 사람이 가난한 거 아니까 써준 거다. 내 영화엔 다 출연했다. <황산벌>부터 7번 썼다. 신정근이랑 같이 붙여놔야 다른 배우가 산다. 연기 좀 못하는 메인이 있어도 신정근만 붙여놓으면 그 배우도 연기 잘하는 거 같다. (웃음) 그게 제일 어려운 연기다. 어려운 건 다 신정근한테 주는 거다. 주연, 조연을 떠나 한번도 안 빼고 같이 작업하는 건 그만큼 좋은 배우니까 그러는 거다. 신정근 에구 우린 가족이잖아요. 뭘 그런…. 이준익 신정근이 있으면 ‘김유신’(정진영)이 뭘 해도 불안하지 않다. 코믹하게 치닫지만 이게 ‘날가루’ 코믹이 아니게 해준다. 디렉션 안 줘도 김유신 뒤에 가서 완벽하게 서 있다. 병풍을 오래 하다 보니 ‘병풍의 달인’이 된 거다. (웃음) 정진영 <평양성>까지 하다 보니 내가 배우 브로커가 되어 있다. 이번에 문디(이광수)도 내가 추천했는데, 첨엔 너무 어리다 하시더니, 나중엔 문디 역에 딱이라고 좋아했지, 신정근은 <와일드카드> 때 같이 했는데 잠깐 만났는데도 딱 알겠더라. 연기 잘하는 걸. 그래서 감독님께 소개해주지 않았나. 이준익 애초 그랬지. 괜찮은 친구 있다고 봐달라고 하더라. 근데 신정근이 오디션은 잘 못 봤다. 그래도 같이 하자고 했다. 정진영을 믿는 거지. 정진영이 사실 매의 눈이다. 한번 보면 바로 안다. 사실 여기 있는 배우들은 모두 연기 9단이다. 디렉션이란 게 다 필요없는 배우다. 정진영 그 말 상당 부분 인정한다. 디렉션이 필요없단 건 그만큼 재밌게 찍었단 말도 되는 거니까. 함께한 배우들의 개성이 다들 강했다. 대부분 연극 무대에서 기초를 닦은 터라 연기도 인정할 만했다. 무엇보다 출연진 중 평균 나이 40살 이상으로만 50명이 넘는 현장이었다. (웃음) 사연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만 족히 20~30명은 된다. 신정근 감독이 디렉션을 줘도 더이상 안 들을 나이의 배우들이다. (웃음) 정진영 그렇게 말하면 감독 말 하나도 안 들은 것 같고. (웃음) 일일이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가 없는 현장이었지. 모두 연기력 이전에 성실함을 갖춘 배우들 아닌가. 이준익 다들 성실하기론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류승룡은 동급 최강이다. 계산을 철저히 해오는데도 막상 슛 들어가면 들키지 않는다. 아무리 자기가 준비해온 게 있더라도 현장에 와서 상대배우가 다르게 나가면 가지고 온 걸 버릴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 대처능력이 정말 탁월하다. 류승룡 처음엔 너무 멋있는 척했더니 영화 톤이랑 맞질 않더라. 대본에 있는 것, 텍스트 안에 활자화된 건 그런 인물이었다. 그런데 리딩 끝나고 감독님이 웃겨줘야 한다고 하셨다. 현장 분위기도 코믹이었고. 기존에 가지고 있는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영화의 분위기와 어우러지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남건이 진지하면서도 코믹함을 갖춘 인물이 된 거다. 사실 여심을 흔들 사람이 한 사람쯤 필요하지 않나. (웃음) 신정근 항상 느끼지만 결국 캐릭터를 고집하기보단 상황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감독님은 코믹한 부분을 요구했지만, 그게 단지 웃기기 위한 개그를 하라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가 가진 정서적인 지향점이 코믹이었던 거다. 지향점을 이야기해주면 그 자리를 메우는 게 배우들의 몫이다. 여기까지 코미디, 그 다음은 아니다, 이런 구분은 애초에 없다. 이준익 그렇지. 김유신이 날려버린 살가마(‘쌀가마’인데 신라 방언이 섞이면서 ‘살가마’라고 부른다) 공격장면이 대표적이다. 남건, 남생 형제들이 아무리 진지하게 연기를 하려고 하면 뭐 하나. 눈앞에서 ‘살가마, 살가마’ 하고 있는데. 연기자들은 항상 주어진 상황 안에서 자연스럽게 센스를 발휘해야 하는 거다. 그러니 나는 연기 디렉션할 필요가 없다. 그냥 상황을 보여주면 그만인 거다. 류승룡 디렉션 안 한다고 하시지만 배우들, 스탭들 말을 많이 들어주고 중요한 걸 체크해주신다. 그러니 한번 감독님과 일하면 다른 감독님이랑 하는 게 너무 힘들다. 현장이 너무 재밌고, 가끔 내가 하는 고민을 정확하게 알고 계셔서 소름끼치기도 한다. 미리 합을 짜지 않아도 현장에서 연기가 가능한 거다. 감독님 현장엔 기능적인 의미의 콘티는 있지만 자세한 콘티 자체가 아예 없질 않나. 빈 도화지 상태로 가는 거다. 인물을 정해놓고, 옷을 입는 순간 다들 알아서 움직이는 거다. 이준익 그럼 고민을 하지, 내가 고민을 안 하겠나. 도대체 감독을 어떻게 보는 거야! (웃음) 촬영날 아침, 현장에 먼저 가서 미리 내가 그 배우가 된다. 너희들은 분장하고 있었으니 몰랐지. 남건 자리에서 서서 5분 정도 하는 거다. 혼자 다 해보는 거다. 내가 직접 해봐야 장면 설계가 되는 거다. 윤제문 밤새 고민한 게 아니고 5분 만에 다 하셨다고? 이준익 5분 열심히 빠짝 하고 그 다음 50분은 준비해야지. 결정이 빨라야 퀄리티가 높아진다. 윤제문 난 대부분 현장에 아무 생각없이 나온다. <평양성> 현장은 그냥 너무 가고 싶은 현장이었다. 다들 맘 편히 놀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신정근 맞다. 네가 제일 많이 놀았다. 만날 편집기 뒤에서 게임하고 있더라. (웃음) 감독님이 공간을 만들어 두니 배우들이 거기서 자연스럽게 놀 수 있는 거다. 그게 이준익 감독 현장의 매력이다. 류승룡 그 많은 보조출연자들이 모두 웃고 있는 현장은 처음 봤다. 감독님 영화가 늘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나. 영화 촬영장으로 볼 때 감독님 현장이 유토피아다. 소년의 천진함을 간직하고 있다. 신정근 조감독이랑 나이차가 스무살 나는데 친구처럼 지낸다. 그것만 봐도 다른 현장과는 확연히 다르다. 윤제문 아, 감독님 나이가 몇살이신데? 류승룡 59년생이다. 영화쪽도 따지고 보면 권력이 명확한 곳인데, 이준익 감독님은 그런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 그 분위기에서 도망가신 거다. 그런 게 간지럽다고. (웃음) 윤제문 맞다. 현장에서 무게를 안 잡고 친구처럼 대하니 현장이 편하다. 연기하는 데도 부담감이 없고. 신정근 감독님 오케이 사인 유명하다. ‘오케이 받고 한번 더!’라고. 일단은 오케이하고 그 다음에 또 하라고 한다. 어떨 땐 모니터도 안 보고 무조건 오케이하기도 하니까. 이준익 어떤 땐 화장실 갔다오다가 오케이한 적도 있다. (웃음) 윤제문 한번은 감독님이 정말 시원하게 ‘오케이!’를 하신 적이 있다. 근데 리허설이었다. (웃음) 이준익 아, 그 장면 정말 죽이는 장면이었는데. 근데 ‘오케이!’하고 났더니, 옆에서 ‘감독님, 카메라 안 돌아갔는데요!’라더라. 류승룡 신명나는 오케이다. 그 자체로 현장의 추임새가 되는 거다. 배우들이나 스탭들이나 그 소리에 힘을 받는다. 신정근 오케이 사인이 너무 확실하니 배우들이 처음엔 잘한 줄 알고 기분 좋아한다. 그러다가 너무 오케이를 많이 하니 슬슬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아, 이거 감독 오케이 사인에 의존했다간 안되겠다 싶어지는 거다. 그래서 더 잘하려고 한다. 이준익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믿음이다. 전적으로 믿지 않으면 안된다. 배우를 믿으면 배우한테 의지할 수 있다. 연기자는 자기가 믿음이 가야 그 연기를 하는 거고, 난 배우가 열심히 했으니 그걸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배우를 믿지 못하는 감독은 바보다. 안 믿으려면 도대체 왜 캐스팅한 건가. 난 그래서 연기를 못해도 믿는다. 틀려도, 조금 맘에 안 들어도 ‘오케이!’한다. 그 다음 컷은 앞의 컷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신정근 그러게. 그게 다 계산이 있었던 거다. 감독님은 건달보다 당당하고 소년보다 천진하다.

현장은 매일 막걸리판… 유해진도 놀러 왔었지

신정근 이렇게 가고 싶은 현장이 또 없었다. <적과의 동침>이랑 시기가 비슷했는데 같이 출연하는 유해진도 전주 촬영장에 같이 가고 싶다고 따라오고 그랬다. 여긴 다 또래니까 일하러 간다는 생각이 안 들고 차에서 내려서 촬영장이 저 멀리 보이면 그때부터 마음이 편해지는 거다. 윤제문 매일 막걸리판이었다. 숙소 근처에 ‘가맥’이라고 있는데 저렴하게 갑오징어랑 황태를 먹을 수 있었다. 스탭이랑 군산 앞바다에 가서 광어 낚시 해오고, 그거 잡아와서 술 마시고 그랬지. 신정근 올여름 비도 많이 오고 폭염이 엄청났다. 그런데 고생한 건 없다. 다들 조금씩 나눠 가진 거지. 이준익 엠티 가서 비 맞는 걸 고생이라고 하지 않지 않나. 그런 거다. 정진영 맞다. 여행 가서 고생한 건 고생이 아니니까. 류승룡 난 마늘 먹는 장면 때문에 고생 좀 했다. (웃음) 그리고 이원종 선배가 말을 너무 잘 타 긴장했다. 그때부터 혼자 승마장 가서 승마 연습했다. 그걸 털어내고 나니 해냈다 싶더라. 이준익 평안도 사투리 지도해주는 분 있었지 않나. 그분이 그러더라. 류승룡과 윤제문 사투리는 거의 완벽하다고. 류승룡 그 선생님, 사투리 지도만 한 게 아니라 연기까지 하셨다. (웃음) 처음 만나서 고기를 먹으면서 남쪽 남자, 북쪽 남자 비교분석을 하는데, ‘남쪽은 잰내비(원숭이)입네다. 뒤에서 그냥 말하지 않습네까. 북한 남자들은 바로 배때기(배) 수셔버립니다’ 그러시더라. (웃음) 윤제문 그렇지. 연기하면서 본인이 울고 웃고 감정을 막 표출하시더라. 너무 뜨거운 분이셨다. 악수도 어찌나 세게 하시던지. 소녀 같은 오십이랄까. 오죽하면 ‘연기를 저렇게 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더라. 이준익 정작 사투리보다는 그분의 에너지를 받은 거다. 류승룡 그러게 말이다. 어렴풋이 고구려인이 되어 분노가 느껴지더라. 만약에 고구려가 통일을 주도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촬영하면서 그런 가정을 정말 많이 했다. 아마 지금도 중국이랑 싸우고 있었겠지? 이준익 고구려가 이겼으면 전면전을 했을 거다. 그러고 나서 중국 땅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조 대표 어떻게 생각해요? (저 멀리 자리를 잡은 영화사 아침의 조철현 대표를 굳이 불러온다.) 조철현 그럼. 상당히 일리있는 이야기다. 중국은 결국 우리가 미워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강대국이다. 역사적으로 중국과 전면전한 나라는 지금 다 사라졌다. 심정적으로는 고구려에 대한 애착이 왜 없겠나. 그렇지만 냉엄한 현실의 법칙으로 볼 때 신라가 대동강 이남이라도 온전히 지킨 건 국가 형성으로 볼 땐 지대한 영향이었다. 이준익 내가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영화 찍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더라. 물리적 강점은 조건이 변경되면 변하는데 생존의 지혜는 조건이 아무리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신라의 강점은 지혜였다. 고구려와는 조금 다른 방식의 사고다. 고구려는 강했기 때문에 부러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혜로운 이가 승리한 거다. 의도적으로 맞춘 게 아니라 지정학적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역사는 늘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역사를 리얼하게 표현해보니 지금이랑 별반 다르지 않게 된다.

이준익의 ‘자뻑’ 혹은 ‘자폭’의 시간

이준익 이번엔 될 것 같다. 내 영화 중에서 가장 좋다. ‘코믹전쟁.’ 이게 애초 말이 안된다. 모순이다. 근데 보고나면 수긍이 간다. 하도 자랑을 했더니 누가 그러더라. ‘감독님은 자뻑 아니면 자폭이라고.’ 지금은 ‘자뻑’의 시간이다. 신정근 만족한다는 말을 원체 안 하더니 이번엔 유독 많이 하시네. 윤제문 그러게 말이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때와 많이 다르다. 이준익 목표가 상업영화라 그렇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때는 직구로 나갔다. 곧이곧대로.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래서 상업적으로 볼 땐 ‘짱구’가 된 거다. 찍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평양성>은 영화적인 만듦새나 주장하는 게 순화되어 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 생얼로 본심을 다 까놓고 말한 거라면 <왕의 남자>는 변장이었고, <평양성>은 메이크업을 좀 한 거지. 정진영 배우, 스탭들 모아두고 결심을 밝히더라. 이거 안되면 영화 연출 안 하겠다고 했다. 이준익 8년 동안 영화 7편 만들었다. 그중 사극만 네편이다. <황산벌>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왕의 남자>, 지금 <평양성>까지. 시대극으로 보자면 <님은 먼곳에>까지 다섯편이구나. 지금껏 3승3패였다. <평양성> 안되면 숟가락 놓고 고향 앞으로 가야 한다. (웃음) 솔직한 말로 이거 안되면 상업영화 포기해야 한다. 나 말고 다른 감독을 지지해줘야 한다. 민폐 끼칠 만큼 끼쳤으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정진영 3편으로 <매소성>을 하겠다고 했는데. 이번 거 돼봐야 아는 거지. 이준익 그렇지. 안되면 이 참에 도자기나 구우려고 한다. 정진영 그림도 그린다더니. 영화 말고 평소 관심있던 거 다 하려고 하나? 이러다 또 기획 하나 해와서 꼬인다. 또 줘봐라. 내가 이번엔 제대로 반박해줄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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