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1일까지 / 대학로예술마당 3관 / (OB)류태호, 이남희, 윤제문, 유연수 (YB)정상훈, 김재범, 김대종 /02-764-8760
그림 한점이 있다. 하얀 바탕에 하얀 선이 그려진 가로, 세로 120cm의 정사각형 그림. 20년지기 친구가 이 그림을 샀다. 2억8천만원이란 거금을 주고. 당신이라면 함께 즐길 수 있을까? 아니면 배가 아플까?
현대미술에 심취해 있는 피부과 의사 수현의 선택에 친구들의 반응은 차갑다. 다혈질인 2년제 대학교수 규태는 그림을 보자마자 수현을 미친놈 취급한다. “그저 하얀 판때기”일 뿐인데 거금을 주고 산 친구가 그로선 이해불가다. 분을 삭이지 못한 규태는 문방구 사장인 성격 좋은 덕수를 찾아가 하소연한다. 결혼 준비로 힘든 늦깎이 총각 덕수 역시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전셋값보다 비싼 그 그림이 어이가 없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덕수는 둘 사이를 중재하려는데 오히려 우정의 균열은 깊고 날카로워져만 간다. 해체주의니 네덜란드 화풍이니 서로의 예술관을 지적하고, 경제적 계급의식까지 튀어나오고, 급기야 해묵은 감정까지 터져나온다. 오랜 친구지만 암묵적으로 존재해왔던 질서와 무시라는 감정이 켜켜이 쌓여왔던 것이다.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가 쓴 연극 <아트>는 현대 추상화 한점을 통해 체면, 의리 때문에 마음속 깊이 꽁꽁 감춰뒀던 남자들의 질투와 시기라는 치졸한 속내를 백일하에 드러낸다. 속사포처럼 화끈하게 이어지는 대사를 통해서 말이다. 따라서 연극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 배우의 합이 중요하다. 이번이 11번째인 <아트> 무대는 올드팀 vs 영팀으로 나뉘어져 있다. 역대 멤버 이남희와 유연수에 류태호와 윤제문이 가세한 OB팀과 뮤지컬 <스팸어랏>의 코믹 3인방 정상훈, 김재범, 김대종으로 이루어진 YB팀. 엄청난 대사량을 노련미로 거뜬히 소화한 OB팀(윤제문, 류태호, 유연수)의 연기는 찰지다. 세 남자의 침 튀기는 수다 한판이 끝나면 누군가가 떠오른다. “친구야 술 한잔하자, 그리고 털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