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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그 배가 침몰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김혜리 2011-01-21

얼어붙은 1월1일. 여름 셔츠를 창가에 걸어두었다. 곧다시 불어올 훈풍을 기다리며, 1년간 항해할 배에 흰 돛을 다는 기분으로.

12월30일

<카페 느와르>를 보려고 계획했으나 매진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아는 분께 부탁해 ‘관객과의 대화’의 한 좌석만 얻을 수 있었다. 정성일 감독과 김혜나, 정인선 배우가 단상에 올랐다. 정성일 선배는 마치 거기 보이지 않는 노트가 펼쳐져 있는 것처럼 테이블에서 한뼘쯤 떨어진 건공중을 주시하며 또박또박 문장을 읽어내리듯 말한다. 정인선 배우가 들려준 일화가 흥미로워 적어두었다. 영화의 도입과 결말부에 등장하는 그녀에게 정성일 감독은 본인이 나오지 않는 신을 테이프로 봉한 시나리오를 건넸다고 한다. 올해 스물이 됐다는 소녀 배우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그래서 제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끝까지 저였어요.”

12월31일

한달 넘게 계속된 연말 레드 카펫 시즌을 전송하며 드는 한 가지 잡념. 줄곧 당연히 여기다가도 배우의 성취를 상으로 기리는 풍습이 의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 배우가 발휘하는 힘은 그가 어떤 연기를 했는가에만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가 어떤 사람이며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와 깊이 연결된 문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do 더하기 be. “당신이 좋은 사람임을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말이 어색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연기상은 언제부터 성별로 구분해서 수여하기로 정해졌을까(따지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순수한 의문이다). 다른 예술도 이런 예가 있는지 모르겠다. 여성의 연기와 남성의 연기 사이에 본질적으로 겹치지 않는 고유한 영역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스타로서 소구하는 대상이 구별되는 까닭일까.

1월1일

비가 오면 하지원과 현빈의 영혼이 몸을 바꿔치기하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은 “나는 네가 되고 싶어.”로 요약되는 연애하는 자들의 욕망을 결정(結晶)한 판타지다. 만약 그리만 된다면, 첫 목련의 개화나 혜성의 꼬리를 목격하며 “당신이 여기 함께 있다면!”(그 많은 카드에 새겨진 “Wish You were Here”)이라고 안타까워할 일 따위는 없어지겠지. 나는 때때로 어떤 대상을 아름답다고 판단내릴 때의 기분과 사랑의 감정을 또렷이 구분하는 데에 곤란을 겪는다. 이를테면 우리는 아름답다고 느끼는 상대를 사랑하는 것일까, 사랑에 빠진 대상한테서 미를 찾아내는 것일까. 아예 그 사람이 되어버리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처럼 아름다움도 복제의 충동을 부른다. 예쁜 소녀를 보면 연필을 들어 그리고 싶고, 카메라로 찍어두고, 글로 옮겨놓고 싶어진다. 비트겐슈타인은 “눈이 아름다운 것을 보면 손은 그걸 그리고 싶어 한다”고 했다. 시각은 그처럼 촉각으로 전이된다. 현빈과 하지원은 시선으로 더듬던 상대의 피부 안에서 사는 일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갖는 일은, 아름다움을 복제하고자 하는 우리의 본능이 이르는 극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실은 다음과 가깝다. 정작 당신이 그가 되면, 당신은 그를 사랑하기를 멈출 것이다. 레나타 살레클이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에 쓴 대로, 사랑은 제약 속에 있다. “의례 때문에 억제된 사랑을 찾으려는 건 쓸모없는 일이다. 사랑의 일체는 그 의례들 속에 있다.” 그가 지금 여기 없기에, 있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1월3일

움베르토 에코의 <애석하지만 출판할 수 없습니다>는 성경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단테의 <신곡> 같은 고전들을 현대의 편집자가 검토한 결과를 상상해서 쓴 패러디 칼럼이다. 그에 의하면 성경은 “오늘날 독자들이 현실도피적인 책에 요구하는 모든 문제, 즉 간통과 동성애를 포함한 섹스, 살인, 근친상간, 전쟁, 대량학살에 대한 것들이 다 들어 있는” 책이다. 스펙터클이 있어 영화화 전망도 밝다. 에코가 연기하는 가상의 편집자는 사드의 <쥐스틴>을 읽고는 “우리가 찾고 있는 책은 철학 책이 아닙니다”라고 불평하고, 칸트라는 필자는 5시에서 6시 사이에는 산책을 가서 연락이 안되니 같이 일할 부류가 못 된다고 결론짓는다. 대가를 흉내내긴 어렵지만 영화판 <애석하지만 투자할 수 없습니다>를 써보기로 한다.

스타워즈 마치 이야기의 중간 토막부터 대뜸 시작하는 듯한 이상한 시나리오입니다. 끝도 개운치가 않군요. 조지 루카스라는 감독은 자기가 무슨 6부작이라도 찍을 줄 아나봅니다.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학창 시절 놀림깨나 받았을 법한 괴상망측한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스카이워커에 오비완 케노비라니요. 대사는 전화번호부를 낭독하는 편이 훨씬 흥미진진하겠다 싶을 정도로 참혹합니다. 알렉 기네스를 데려와도 구제하기 힘들 겁니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려다가 막히면 무조건 ‘포스’를 들이대고 있는데, ‘포스’가 신의 가호라는 의미라면 이 영화의 성공에는 반드시 그것이 필요합니다. 12세 미만 관람가라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애니 홀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우리가 전혀 알고 싶지 않았지만 기어코 우디 앨런이 털어놓을까봐 두려워했던 그의 성생활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대체 어디서 웃어야 할지 고민할 겨를을 허락지 않는 요점없는 수다가 쏟아집니다. 이 작가/감독은 마치 “엄마 나 좀 봐주세요, 나, 나, 나말이에요!”라고 치마꼬리 잡고 늘어지는 유치원생 같습니다. 애초에 애니 같은 여자가 왜 이렇게 짜증나는 남자에게 끌리는지 관객을 설득하는 일이 이 영화의 최대 숙제가 되리라 봅니다.

시민 케인 제목이 한 사람의 이름이고 그 인물이 원톱 (남자) 주인공이라는 점은 크게 성공한 영화들의 공통점인만큼 고무적입니다. 일인칭 단독 주인공의 시점은 보통 사람이 인생을 살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닮아 있기 때문에 강력한 집중을 쉽게 유도하는 드라마 구조의 발판이니까요. 그런데 이 오슨 웰스라는 인사는 유리한 초기 조건을 조성해놓고도 주인공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평생 살았는지 끝까지 보여주지 않으면서 주변 인물들의 입을 빌려 에둘러 변죽만 울리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재벌 이야기라는 점은 흥미를 돋우지만 재벌 중에서도 언론 재벌은 섹시함이 덜합니다. 비주얼이라곤 윤전기가 전부일 테니 자동차 재벌이 낫지 않을까요? 게다가 이 시나리오는 기자 시사에서 스포일러 입막음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경우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매표소 앞에서 누가 “로즈버드는 썰매다!”라고 외치기라도 하면 상황 끝입니다.

괴물 참고로 이 감독은 3년 전 숨막히는 추리와 육박전을 펼친 끝에 “그래서 연쇄살인범은… 누구게?”로 끝나는 기막힌 시나리오를 들고 왔던 그분입니다. 전달받은 시나리오와 괴물의 스케치를 검토해보았습니다. 고질라보다 더 크게, 티라노사우루스보다 더 무섭게 만들 수 없는 거야 별수 없다지만 제 눈에는 거대 골뱅이와 발 달린 고등어의 유전적 합성물 같군요. 한강 둔치 가족단위 행락객들에게 동정을 자아내는 괴물이라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코미디로는 잠재력이 있지만 과연 스릴이 발생할지 의문입니다. 주인공 박씨네 가족은 워낙 각자 아이템이 부족해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인데 뿔뿔이 흩어져 대책없이 서울 곳곳을 뛰어다닐 뿐입니다. 그나마 믿음직하고 정이 가는 인물인 가장은 영화 반환점에서 퇴장해버립니다. 추신) 최종병기가 활이라니 설마 농담이겠죠?

타이타닉 이 배가 침몰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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