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한때 1년 수입이 20만원이던 때도 있었는데 이젠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소곤대기도 해요. 저보고 '중년돌'이라네요. 하하."
연기 잘한다는 배우들은 죄다 모인 듯한 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 그리고 당대 최고라는 김윤석ㆍ하정우가 모인 영화 '황해'(감독 나홍진)에는 유난히 강한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새 얼굴이 있다.
바로 45살의 늦깎이 배우 조성하다.
'욕망의 불꽃'에서 그가 김희정과 만들어내는 중년의 로맨스는 어느새 극의 중심이 돼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고 '황해'에서 보여준 내공은 김윤석ㆍ하정우의 아우라에 절대 뒤지지 않았다.
오랜 무명 생활을 겪었던 조성하에게 이들 두 작품은 연기자라는 이름 외에 스타라는 명칭을 붙여줬다. '중년돌'(중년 아이돌), '따도남'(따뜻한 도시남자), '꿀성대'(꿀처럼 달콤한 목소리) 같은 별명이 보너스로 따라붙었다.
조성하는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욕망의 불꽃'에 대해 "불륜이지만 시청자들이 아름다운 로맨스로 봐주셔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황해'와 관련해서는 "김윤석과 하정우의 아우라와 조화를 이루는 데 힘을 쏟았다"고 했다.
◇긴 무명 끝 40대 중반에 얻은 인기 = 서울예대(85학번) 출신인 그는 김지운ㆍ김지숙ㆍ이남희 등이 속해있던 극단 전설의 멤버로 대학로 무대에서 활동했다.
연예계 데뷔는 2001년 영화 '화산고'의 '국어'(선생) 역. 독립영화 '미소'(2003년)를 비롯해 '거미숲' '깃'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플라이 대디' 등에 출연했지만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그는 최근 얻게 된 인기에 대해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두 딸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며 밝게 웃었다.
"딸들이 주변에서 '너네 아빠 멋있어서 좋겠다'는 말을 들었대요. 이전에는 정체모를 영화나 19금 영화만 했지만 '성균관 스캔들'이나 '욕망의 불꽃' 같은 드라마에 나오니 얼굴이 알려진 것이죠. 딸들 부탁받고 사인도 해줬어요. 딸들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 것 같아 좋네요."
대학 동기는 표인봉, 김정균, 권용운, 정은표, 배동성 등으로, 동기들이 일찌감치 유명세를 치를 때 그는 "가난한 연극쟁이" 혹은 무명 배우 생활을 견뎌야 했다.
그는 "딱 서른 살 때는 1년에 수입이 20만 원밖에 안 되던 시절도 있었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솔직히, 먼저 유명해진 (대학) 동기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봤던 게 제게 동기 부여가 됐어요. 그런 게 힘이 돼서 그때 버틸 수 있었나봐요. 이젠 제가 동기가 될 차례인거죠."
◇"응원받는 불륜 기뻐" = '욕망의 불꽃'에서 그가 연기하는 재벌 2세 영준은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캐릭터다. 성공으로 대변되는 세련된 여성인 부인 애리(성현아)와 뜨거운 사랑을 상징하는 어촌 여성 정숙(김희정)이 그 상대다.
영준과 정숙의 뜨거운 로맨스는 요즘 이 드라마의 가장 뜨거운 시청 포인트다. 시청자들은 불륜이지만 두 사람의 사랑에 응원을 보내고 있고 욕망에 불타는 애리가 영준에게 무릎을 꿇을 때에는 통쾌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바람피우는 중년 역할이니까요. 그런데 의외로 정숙과의 사랑이 잘 됐으면 하고 바라는 시청자들이 많더군요. 불륜인데도 오히려 아름답게 봐주시는 거죠. '영준이 누구랑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팬들이 말을 걸어주시는 걸 보면 저도 즐겁습니다."
그는 "실제 성현아와 김희정은 드라마 속 캐릭터와는 정반대"라고 귀띔했다.
"김희정 씨는 정숙과 달리 털털한 편이에요. 연기할 때에는 적극적으로 폭풍 애드립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성현아 씨는 오히려 얌전하고 여성스러운 편이에요. 연기를 정말 잘하는 분들이랑 함께 호흡을 맞추니 연기하면서도 재미가 있습니다."
현실이라면 애리와 정숙 사이에서 누구를 택하고 싶냐는 질문에는 "애리의 성공이나 정숙의 열정보다 편안한 조강지처가 제일 좋은 평범한 40대"라는 답을 들려줬다.
"편안한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사랑이 있어도 편안함이 없으면 계속 옆에 있을 수 없잖아요. 돈이나 성공도 두번째 문제죠. 그저 내 옆에 있기만 해도, 아무 말도 안하고 바라만 봐도 편안한 사람이 좋죠. 집사람처럼요."
◇'황해' 엔딩 만 33일간 촬영 = '황해'에서 그가 연기하는 태원은 한국에서 사건에 휘말리는 구남(하정우), 연변의 개장수 면가(김윤석)와 함께 이야기를 지탱하는 세 축 중 하나다. 철저한 계산하에 움직이는 태원은 결국 허무하게 무너져내린다.
"11개월 동안 같은 캐릭터를 유지하는 게 큰 시련 중 하나였다"고 말하는 그는 태원에 대해 "쪼그라든 풍선 같은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큰 풍선에 바람구멍이 생기면 쪼그라들어서 아주 볼품이 없게 되잖아요. 태원이 그런 느낌이었어요. 계산을 하고 움직여도 자꾸 늪에 빠지잖아요. 오른팔이라는 부하는 계속 바보 같은 짓만 하고요. 하체가 부실하니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죠."
'황해'의 주인공 세 명 중 다른 두 배우는 감독의 전작 '추격자'에 출연했던 까닭에 캐스팅이 일찌감치 결정됐었다. 감독은 김윤석과 하정우, 두 배우의 아우라에 주눅이 들지 않을 내공을 갖춘 인물을 태원의 자리에 필요로 했다. 태원을 뽑는 오디션에는 800여명의 40대 배우들이 몰렸다.
"두 배우 모두 현장에서는 한 치의 양보 없이 최대치를 만들어내는 그런 사람들이거든요. 이들의 아우라에 먹혀들지 않으면서도 과장되지 않게 서로 앙상블을 이뤄야 했어요. 태원이라는 캐릭터를 잡을 때 고민해야 할 숙제 같은 것이었죠."
엔딩 신은 휴식날을 포함해 33일에 걸쳐 촬영됐다. 그는 "처절한 액션 장면을 위해 매일같이 몸에 피를 발라야 했고 극단적인 공포에 떠는 감정을 줄곧 유지해야 했다"며 "장시간 꼼꼼하게 촬영을 해서 좋은 화면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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