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왕비호를 사랑해주신 팬들도 고맙지만 '개콘'에 출연해 독설을 받아주신 스타분들께 정말 고마워요. 그분들이 '개콘'과 왕비호를 살려주셨습니다."
지난 29일 왕비호로 마지막 녹화를 앞둔 개그맨 윤형빈은 예상과 달리 "실감이 안 난다"며 무덤덤해 했다. 그러나 연예인 게스트들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는 리허설을 마치고 가진 연합뉴스와 전화인터뷰에서 "예전부터 얼마 안 지나면 끝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며 "'그 날이 왔구나' 하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윤형빈은 2008년 4월부터 2년 8개월동안 왕비호로 분해 KBS 2TV '개그콘서트'의 간판 코너 '봉숭아학당'을 지켜왔다.
만인의 안티를 자처한 왕비호는 톱스타 게스트들에게 독설을 아끼지 않으며 숱한 화제를 뿌렸고, 무명이었던 윤형빈을 인기 개그맨의 자리에 올려놨다.
윤형빈은 "사실 왕비호를 시작하고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끝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보통 '개콘' 코너는 8~10개월이 지나면 끝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왕비호도 그 정도 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늘 마지막까지 최고의 개그를 보여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그는 대중이 왕비호의 독설을 개그로 받아줬기 때문에 왕비호가 장수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냥 꾸준히 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실제 독설이라고 생각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들도 있었는데 꾸준히 해 나가니까 어느 순간 사람들이 왕비호의 독설을 개그로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변화를 제가 인지하고 나서는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었죠."
왕비호는 그에게 인기만큼 부담도 안겨줬다.
"보통 개그는 내가 안 웃기면 끝인데 왕비호는 '개콘'의 엔딩인 데다 게스트로 온 연예인들이 대상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웃기지 않으면 오신 분들에게 너무 어색한 상황이 돼버려요. 그냥 코너보다 몇 배 더 어색하죠."
그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자신의 독설이 그대로 묻히는 것이었다.
"스타분들이 기분 나빠할 거란 걱정은 별로 안 했어요. 오히려 제가 독설을 했던 스타가 방송 다음날 검색어 순위에 못 오르고 조용하게 넘어가 버리면 너무 싫더라고요. 그분들이 검색어 순위에 올라 화제가 되게 하는 게 제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스타가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존재인 만큼 윤형빈은 왕비호의 독설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신인에게 더 가혹하게 굴기도 했다.
"신인들이 나올 때 그들에 대한 정보를 주기보다는 '그냥 가..가!' 이러면서 넘어가기도 하는데 제 생각에 그렇게 하는 게 그분들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진 않을까 해서 그런 거였어요. 그런데 당사자들이 나중에 혹시라도 서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게스트로는 현재 '남자의 자격'에 함께 출연 중인 밴드 부활의 김태원을 꼽았다.
"김태원씨가 '국민할매'라는 캐릭터가 잡히기 전에 게스트로 나왔는데 제가 '무슨 록커가 외할머니를 닮았어'라고 했어요. 그게 '국민할매' 캐릭터까지 간 것 같아서 뿌듯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약 3년을 왕비호로 대중 앞에 서다보니 달라진 점도 있다.
"사석에서 왕비호스럽게 안 좋은 얘기를 해도 사람들이 그냥 '하하' 웃으면서 넘어가요. 오히려 그런 얘기를 안해주면 서운해 하더라고요.(웃음)"
윤형빈은 "원래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성격인데 이걸 하면서 원없이 했다. 속이 후련하다"며 웃었다.
왕비호의 마지막 독설 대상은 대선배 이경규다.
윤형빈은 "선배님이 왕비호의 마지막 게스트로 오겠다고 먼저 말씀을 해주셨는데 지난주 부탁을 드리니까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새로운 캐릭터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엄격한 내부 검증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언제 대중 앞에 선보일 수 있을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개콘' 시스템상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몇 개의 캐릭터를 준비하고 있는데 캐릭터에 연연하기보다는 좋은 개그를 선보일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왕비호의 마지막 출연분은 내년 1월 2일 방송된다.
okk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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