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15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출연 신성록, 정성화, 양준모, 이상은, 전미도, 문성혁, 조휘, 임진웅, 장기용, 민경옥, 박해수, 조승룡/ 02-2290-5900
탕탕탕! 일곱 발의 총성과 함께 안중근이 돌아왔다. 러시아 연해주 타국의 하늘 아래 모인 조선 청년들이 네 번째 손가락을 잘라 결의했던 단지동맹를 맺는 장면에서 뮤지컬 <영웅>은 시작한다. 지난해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맞아 초연된 작품이다.
스토리는 실존인물과 가상인물을 적절히 배치해 재미를 더했다. 뮤지컬 넘버는 가슴을 먹먹하게 울린다. 안중근의 고민을 담아낸 <영웅>, 안중근과 동료들이 간절한 소망을 담아 부르는 <그날을 기약하며>, 법정에서의 절규 <누가 죄인인가>, 처형대 앞에 선 안중근의 울부짖는 <장부가> 등. 친숙한 선율 속에서 심장을 묵직하게 파고든다.
볼거리도 뛰어나다. 수평과 수직의 평면에 입체감을 불어넣는 화면과 사다리와 같은 소품 사용으로 시공을 적절히 표현했다. 안중근 장면은 푸른빛, 이토 히로부미 장면은 붉은색 등 동양미와 캐릭터의 특성을 함께 표현한 조명도 돋보였다. 기차신과 추격신은 명장면이다. 흩날리는 눈발 속을 달리는 기차는 <미스 사이공>의 3D 헬기신에 버금갈 만한 생동감과 스케일이다. 독립군과 일본군의 추격신은 군무를 연상케 하는 배우들의 동작과 조명, 영상이 어우러져 영화 007 시리즈를 방불케 한다. 2막 중반, 우덕순과 조도선이 부르는 <아리랑> 장면은 웃음보가 터져 진지한 분위기를 살짝 풀어주기도 한다. 진일보한 한국 창작뮤지컬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하겠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의 죄목을 낱낱이 열거하는 넘버 <누가 죄인인가>의 울림. 그것은 분명 우리의 정체성이다. 작품 완성도의 정점에 한국적 정서가 밑받침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억지로 애국심을 고취하려 들거나 섣부른 민족주의를 강요하지 않는다. 안중근을 완벽한 영웅으로 묘사하거나 이토 히로부미를 극도로 악랄하게 그리지도 않는다. 둘 다 그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다한 인간으로 그린다. 다만 허구의 인물인 설희와 링링의 에피소드가 드라마를 풍성하게 하지만 캐릭터가 설익은 느낌이라 아쉽다.
극의 마지막, 아직 안중근의 시신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자막이 뜬다. 여전히 불안한 안보와 평화 앞에 살고 있는 우리. 나라를 빼앗긴 망자로 살면서 지금 손에 들 수 있는 것은 총이지만 자신의 아들은 이 땅에서 맘 편히 살기를 바라는 그 앞에서 고개가 숙여진다.
ps. 혹여라도 역사 드라마, 애국심 고취 등의 편견 따위로 이 작품을 놓치는 실수는 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