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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시나리오 넘기면 시집 보낸 느낌">
2010-12-27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2008년 장편 데뷔작인 '추격자'로 500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며 각종 영화상을 휩쓴 나홍진 감독.

'추격자'의 주연 배우 김윤석, 하정우와 다시 뭉친 그의 두번째 영화 '황해'는 지난 22일 개봉해 26일까지 5일간 10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27일 중구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나홍진 감독은 밝은 표정이었다. "기대 이상이죠. 관객이 어떻게 봐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관심이 많으셨구나 싶어요."

그는 '황해'에서 중국에 사는 조선족 남자 구남(하정우)이 연락이 끊긴 아내를 찾고 빚도 갚기 위해 살인 청부 의뢰를 받아 한국에 오면서 일이 꼬이고 쫓기게 되는 모습을 그렸다.

나 감독은 '추격자' 촬영을 앞두고 분식집에 갔던 기억을 떠올려 '황해'를 구상하게 됐다고 했다. "10살 정도 되는 아랍계 아이가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고 덮밥을 먹는 모습을 봤는데 그게 시작이 아니었을까 해요. 굉장히 놀랐죠."

그는 '황해' 시나리오를 쓸 때 사람을 죽인다는 소재를 먼저 떠올렸다고 했다. "원한이나 이유가 있어서 살해하는 게 아니라 누구인지도 모르고, 본 적도 없고, 왜인지도 모르는 채 이런 살인을 저질러야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사람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촬영 기간만 10개월이 넘고 제작비는 100억원이 넘는 대작이다.

그는 시나리오 쓸 때는 제작비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냥 이렇게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만 했어요. 남자를 쫓아가는 영화인데 남자는 그러했노라고 말만 할 수 없었고 정말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걸 카메라가 쫓아가면서 담느라 아주 많은 시간과 제작비가 들어갔죠. 한 걸음 한 걸음 이동할 때마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몇 밀리씩 자라는 디테일한 변화를 다양한 장소에서 담으려고 하니 일반적인 영화의 일정처럼 할 수 없었어요."

나 감독은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곤 생각 못했다면서 제작 기간이 길어진 가장 큰 원인으로 날씨를 꼽았다. 날씨 때문에 지연된 시간만 두달이 넘을 거라고 했다.

"1월엔 100년 만의 폭설 때문에 촬영을 한참 쉬고 2월에 부산에 갔더니 비가 보름은 왔죠. 거기서 벗어나서 촬영하려고 했더니 울산, 경주에서 눈이나 비가 내리는 식이었어요."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로 생각하느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완벽을 추구한 적은 없다"면서 "굉장히 허점이 많고 덜렁거린다"고 했다.

나 감독은 다만 "현장에서는 시나리오에 대한 굉장한 신뢰를 갖고 움직인다"면서 "배우나 스태프가 좋은 의견을 내면 '감사합니다'하고 받아먹긴 하나 그렇다고 시나리오를 버리진 않는다. 두 가지 버전을 갖고 간다. 시나리오가 이만큼 표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지점에서는 그만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이걸 한번 더하자고 말할까 하는 갈등은 나도 한다"면서 "이 말을 내가 욕 먹을까봐 안 하는게 맞는건가 하는 고민은 5초만 지나면 찾아온다"고 덧붙였다.

최근 만난 하정우는 나홍진 감독에 대해 "배우에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가 현장에서 어떤 감독이길래 배우가 그같은 극찬을 늘어놨을까.

그는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줄 때 "시집 장가보내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제가 이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고 그 사람이 돼보기도 했는데 배우 손에 넘길 때는 착잡하죠. 넘겨 드리면 그분의 몫이 된 것 같아요. 전 그때부터 그 캐릭터의 후원자가 되는 거지 제가 직접 끌고 간다거나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이 현장에서 열려 있는 편이며 배우에게도 세세한 것까지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예를 들어 배우가 왼쪽으로 가요. 전 오른쪽으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도 배우한테 오른쪽으로 가달라는 말은 거의 안 드려요. 미술팀을 불러서 벽을 쌓고 다른 배우들한테 벽 앞에서 험한 상황을 만들어달라고 하죠. 그러면 배우가 '왼쪽으로 가면 안 되겠구나 오른쪽으로 가야겠다'고 느끼죠."

그렇다고 모든 것이 결국 감독의 의도대로 된다는 말은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다.

"저희 배우들은 제가 벽을 쌓아도 그걸 뚫고 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굉장히 좋은 효과가 날 때가 있죠. 모든 걸 정해놓은 상태로 시작하는데 변수가 어디서 생길까요? 사람이 연기한다는 거고 사람들이 촬영하고 편집하고 후반작업한다는 거죠. 그래서 정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시나리오를 표현하고자 할 때 내는 화학 작용이 영화를 만드는 결정적 요인입니다. 전 그걸 굉장히 즐기는 편이고요."

영화의 높은 폭력 수위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촬영이나 편집을 할 때 수위를 조절하려고 했지만, 청부살인업자 '면가'로 나온 김윤석의 실감 나는 연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보다 잔혹한 장면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교수가 살해되던 날 밤의 잔혹성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면가에 대해선 '면가가 이런 사람입니다' 하고 말만 할 수 없었고 이 남자가 왜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한번은 표현했어야 한다"면서 "면가의 은신처 격투신은 리얼리티를 살리기보다 과거 일본에서 많이 만들어진 활극 같은 느낌으로 디자인해서 관객에게 '이건 영화입니다' 하고 말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김윤석 선배가 너무 무서운 사람이잖아요. 하하. 그런 제약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잔혹하게 만들어냈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영화가 잔혹한 게 아니라 김윤석이 잔혹한 겁니다."

구남의 부인이 열차에서 내리는 마지막 장면은 현실인지 구남의 환상인지 모호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영화는 보시는 분들이 완성하는 거지 만든 이가 완성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지만, 관객으로서 그 여자가 살았다고 믿고 싶다. 이 영화가 굉장히 끔찍한 이야기를 하는데 전 그 신이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고 했다.

승객이나 역무원도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텅빈 역을 설정한 것에 대해서는 "만약 승무원이나 승객이 있었다면 어떤 관객이 보더라도 다른 생각할 것 없이 이 여자가 살아 돌아온 게 분명하다고 느낄 것 같았다. 그래서 보는 사람마다 다른 결론을 내도록 여지를 남겼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모호하게 만든 데 대해 "관객은 구남이라는 남자를 쫓아서 볼 텐데 구남이 보는 모든 현상은 (확실한 정보 없이) 모호할 것 같았다"면서 "관객도 구남처럼 모호함의 연속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차기작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했다. '추격자'나 '황해' 같이 어두운 영화만 할 거냐고 물어보니 그렇지는 않다면서 "코미디를 할 생각이 간절한데 너무 어려운 장르"라고 했다.

자신의 영화는 보지 않는 감독들도 있지만 나홍진 감독은 크리스마스가 낀 이틀간의 휴일에도 온종일 '황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황해'는 여러 가지로 굉장히 예민한 영화 같아요. 보는 사람의 컨디션이 굉장히 많이 영향을 끼치고 극장의 스크린도 크게 작용하죠. 이런 게 영화의 장점인지 단점인지 잘 모르겠어요. 장점이라면 어떻게 키우고 단점이라면 어떻게 보완할지를 생각하고 있죠."

kimy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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