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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사이버 스페이스 오디세이
김도훈 2010-12-28

1982년에 개봉한 최초의 CG 영화 <트론>의 속편 <트론: 새로운 시작>

<트론>은 1982년에 개봉했다. 역사상 최초로 CG를 이용한 영화였다.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영화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30여년 만에 속편 <트론: 새로운 시작>이 12월30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모두가 마음속에 질문 하나를 품고 있을 것이다. 대체 왜 지금 다시 <트론>인가.

1982년. 혁명이 일어났다. 디지털 혁명이었다. 혁명의 이름은 <트론>이었다. 월트 디즈니가 내놓은 <트론>은 역사상 최초로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한 영화였다. 시사회가 열린 직후 지금보다 젊고 몸도 야무지던 시절의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테크놀로지로 만든 빛과 소리의 쇼”라고 썼다. “절대로 나쁜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트론>은 완전히 기술적인 영화다. 좋은 배우들이 잔뜩 포진하고 있지만 지난 두편의 <스타워즈> 영화들(그가 이 글을 쓴 당시에는 <스타워즈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이 개봉하기 전이었다)처럼 이건 인간 본성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트론>은 우리를 즐겁게, 또 놀랍게 만드는 기계다. 이전에는 단 한번도 배우들이 특수효과의 한가운데 서 있는 걸 보면서 이런 센세이션을 느껴본 적이 없다. 캐릭터들은 정말로 컴퓨터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반면 <뉴욕 타임스>는 불평했다. “요란하고, 정신없고, 이야기는 공허하다. 그게 이 영화가 제공하는 모든 것이다.” 이 놀라운 기시감.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에 쏟아진 극단적인 비평을 한번 떠올려보라. <트론>은 1982년의 <아바타>였다.

1982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독자를 위해 <트론>의 이야기를 먼저 좀 해야겠다. 거대한 게임회사 엔컴의 직원인 딜린저(데이비드 워너)는 동료이자 천재 프로그래머인 플린(제프 브리지스)의 아이디어를 훔쳐 부사장이 된 모략가다. 또 다른 엔컴의 프로그래머인 앨런(브루스 박스라이트너)은 직접 개발한 보안 프로그램 ‘트론’을 이용해 딜린저가 장악하고 있는 메인 컴퓨터의 MCP(마스터 컨트롤 프로그램)에 접근하려 하지만 오히려 트론이 MCP에 먹혀버린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앨런을 도와서 해킹을 시도하던 플린이 아예 메인 컴퓨터에 집어삼켜져 사이버 세계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플린은 프로그래머들이 제작한 프로그램들이 마치 검투사처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죽음의 경기를 지속하고 있는 걸 목격한다. 인공지능인 MCP가 아예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실제 세상에서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플린은 컴퓨터 세계 속 최강의 전사인 트론과 함께 MCP에 맞선다. 대단히 순진무구한, 디지털 시대 초창기의 판타지다.

2MB 메모리 컴퓨터에서 시작된 CG영화

<트론>의 시작은 게임회사 아타리(Atari)가 제작한 컴퓨터 게임 <퐁>(Pong)이었다. 검은 화면에 하얀 커서와 선이 점멸하는 이 초보적인 일종의 탁구 게임은 1만대 이상 판매되며 역사상 최초로 상업화에 성공한 컴퓨터 게임으로 역사에 남았다. 당시 비주얼 디렉터로 일했던 스티븐 리스버그는 <퐁>을 보자마자 어떤 계시를 느꼈다. “나는 CG라는 게 영상을 스크린에 옮기는 데 아주 적절한 기술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 순간부터 <트론>의 컨셉이 마음속에서 저절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리스버그는 1977년에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차려서 <트론>의 현실화에 몰두했다. 그러나 CG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예나 지금이나 돈이었다. 워너브러더스, MGM, 컬럼비아는 리스버그의 꿈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리스버그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월트 디즈니였다. 원체 무모한 도전에 뛰어들기로 유명한 디즈니(디즈니가 보수적이라고? 적어도 영화기술의 역사에서 디즈니는 끝없는 개척자이자 선구자에 가깝다)는 리스버그의 꿈에서 새로운 <스타워즈>의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극장용 2D애니메이션의 전성기가 막을 내리자 사람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에 돈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디즈니는 부랴부랴 1979년에 SF영화 <블랙홀>(The Black Hole)을 제작했으나 재앙으로 끝났다. 새로운 장삿거리를 개발하려던 디즈니와 새로운 실험을 해보려던 리스버그는 손을 잡았다.

영화가 개봉한 뒤에도 모두가 <트론>의 혁명을 이해한 건 아니었다. <트론>은 1982년의 <아바타>가 되기에는 벌어들인 돈이 너무 적었다.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거액 1700만달러를 투자한 <트론>은 3300만달러를 박스오피스에서 벌어들였다. 좀더 거대한 프랜차이즈 성공작을 바랐던 디즈니는 실망했다. 아카데미 위원회는 <트론>을 특수효과 부문 후보로 올리길 거절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건 부정행위”라는 게 그 이유였다. 스티븐 리스버그는 아카데미 위원회에서 걸려온 전화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들은 이렇게 물어보더라. 어떤 카메라를 이용해서 컴퓨터그래픽 장면을 찍은 건가요? 모델을 만들어서 찍은 건가요?” 당시 CG라는 건 아카데미의 고루한 영감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오히려 <트론>의 가능성에 깜짝 놀란 건 감독 혹은 미래의 감독들이었다. 당시 디즈니 애니메이터로 일하던 픽사의 창시자이자 <토이 스토리>의 감독 존 래세터는 <트론>을 보자마자 CG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트론>은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CGI의 무한한 가능성을 처음으로 볼 수 있도록 내 눈을 열었주었다.” <아이스 에이지>를 만든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 대표 크리스 웨지 역시 이야기한다. “애니메이션과 필름 메이킹 사이의 통합이라는 걸 마침내 창조할 수 있으리라는 걸 알게 됐다. <트론>은 3차원의 세계로 가는 길을 열어준 영화였다.” <트론>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기적에 뛰어든 사람의 수는 셀 수도 없다. 게다가 <트론>에 스탭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산업으로 퍼져나갔다. 2MB의 메모리를 가진 컴퓨터, 330MB 용량의 세탁기만한 디스크라는 신기술을 이용해 만들어진 영화는 새로운 할리 우드 미래의 시작이었다.

미래를 디자인하는 디지털 장인들

그리고 <트론>은 돌아왔다. 그런데 여기서 모두가 궁금해하던 질문이 하나 있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30년도 넘은 이 빈티지 디지털영화의 속편을 만들겠다고 결정한 것일까. “물론 지금에 와서야 실현 가능한 기술을 이용해서 속편을 찍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만 당신들… 정말로 이걸 만들려는 건가?” 제프 브리지스의 입에서 처음 튀어나온 반응은 우리도 충분히 이해할수 있다.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진 불멸의 컬트영화를 다시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정말로 합당한 기술이 아니라 합당한 이야기가 필요한 법아니겠는가. <트론: 새로운 시작>은 디지털 세계 속으로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찾아나선 아들의 모험담이다.

케빈 플린(제프 브리지스)은 <트론>의 모험 이후 엔컴의 대표가 되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고 사라진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어버린 샘 플린(게럿 해들런드)은 엔컴이라는 유산을 물려받았음에도 회사의 경영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으며, 오히려 돈벌이에 혈안이 된 회사의 최신 소프트웨어를 몰래 해킹으로 빼내 인터넷에 푸는 행위로 사라진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을 발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샘은 실종된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사실은 컴퓨터 세계에 갇혀서 탈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숨겨진 아버지의 작업실에 들어선 샘은 갑자기 컴퓨터 세계로 빠져들고, 거기서 여전사 쿠오라(올리비아 와일드)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만난다. 그는 오래전 아버지가 자신을 복제해서 만들어낸 클루(제프 브리지스)가 ‘완벽한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아버지를 배신했고, 심지어 디지털 세계에서의 야욕을 실제 세계로 확장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트론: 새로운 시작>으로 데뷔한 조셉 코신스키 감독은 건축학 학위를 딴 상업광고 감독 출신이다. 그는 이 영화의 시작은 ‘이야기’가 아니라 ‘디자인’이었다는 걸 강조하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먼저 영화를 만든 경험이 없는 자동차 디자인, 건축 분야의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사람들이 건너왔다. 다들 원작의 열렬한 팬들이었다.” 그러나 <트론:새로운 시작>의 프로덕션디자인이 완벽하게 새로운 시작이 될 리는 없다. 전설적인 컨셉디자이너 시드 미드(<블레이드 러너>)와 프랑스 만화가 뫼비우스가 협업으로 창조해낸 오리지널 <트론>의 프로덕션디자인은 28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빛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 <트론:새로운 시작>의 비주얼 역시 시드 미드와 뫼비우스의 유산에서 시작해야만 했다. 코신스키 감독은 첫 번째 질문이 “그래서, 대체 누가 우리 시대의 시드 미드와 뫼비우스인가?”였다고 말한다. 그는 <페르시아의 왕자> 같은 게임을 디자인한 데이비드 레비와 <클로버필드>의 네빌 페이지 같은 할리우드 안팎의 장인들을 모두 끌어모았다. 비디오 게임 컨셉 아티스트 출신 데이비드 레비는 고백한다.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뫼비우스였다. 어린 시절에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할 때면 항상 뫼비우스를 떠올렸으니까.”

훌륭한 3D 효과와 테크놀로지의 맹점

오래된 유산을 업그레이드한 <트론: 새로운시작>의 비주얼은 휘황찬란하다. 어쩌면 월트디즈니와 여전히 제작자로 참여한 스티븐 리스버그는 비로소 <트론>의 디지털 세계를 창조하기에 적합한 도구와 시간을 손에 쥔 건지도 모른다. 30여년 전,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던 세계는 이제 CG와 3D의 마력으로 <트론: 새로운 시작>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이 영화의 3D 효과는 칭찬할 만하다. 3D 효과를 입체 장난감처럼 다루는 최근의 많은 블록버스터들과 달리 제작진은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에서 그랬듯이) 자신이 다루는 세계의 물리적 깊이감을 공들여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덕분에 <트론: 새로운 시작>은 3D를 3D답게 다룬 몇 안되는 영화의 리스트에 오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기술적인 자유는 동시에 일종의 약점이다. 오리지널 <트론>이 진정으로 흥미진진했던 이유는 기술적인 제약 덕분이었다. 스티븐 리스버그와 디지털 기술자들, 뫼비우스와 시드 미드 같은 비주얼리스트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술적 제약에 딱 맞는 영화적 스타일을 창조했다. 지금 다시 <트론>을 되감아본다면 거기에는 ‘초보적인’이라는 표현으로는 도무지 담아 낼 수 없는 기술적, 예술적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직각으로 딱딱 끊어지며 달리는 라이트 바이크의 질주, 백라이트 기술을 이용해서 만든 배우들의 출연장면, 이 모든 것은 종종 <메트로폴리스> 같은 독일 표현주의 시대의 걸작들을 연상시킨다.

<트론: 새로운 시작>의 제작진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배우와 라이트 바이크를 제멋대로 합성할 수도 있고, 디스크 원반을 던지는 디지털 세계의 콜로세움 결투장면을 더욱 현실감 넘치게 창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나친 기술적 자유는 종종 <트론: 새로운 시작>의 독처럼 작용한다. 특히 제프 브리지스가 전혀 발광하지 않는 피부로 등장한 뒤, 아들과 함께 구운 새끼 돼지 요리를 디지털 세계 속에서 즐길 때, <트론: 새로운 시작>은 이상할 정도로 평범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영화처럼 느껴진다. 코신스키 감독은 “CG와 현실 세계 사이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무디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심지어 영화에 등장하는 몇몇 라이트 바이크와 차량을 실제로 제작해서 촬영했다. 물리적인 법칙에서 자유로운 세계를 창조하면서 굳이 물리적인 힘을 부여하려는 그의 의도는 어딘가 이율배반적인 데가 있다. <트론: 새로운 시작>은 <트론>의 속편이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물리학적 법칙 속에서 존재하는 (기술적) 평행우주에 가깝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보태자면, 가상 현실 속의 액션장면(특히 몸과 몸이 부딪히지 않는 디지털 탈것들의 액션)이 물리적인 임팩트가 약하다는 사실은 이미 워쇼스키 형제의 <스피드 레이서>가 증명한 바 있다. <트론: 새로운 시작>의 라이트 바이크 액션 시퀀스와 라이트 제트기의 공중전 시퀀스는 입이 딱 벌어지는 볼거리이긴 하지만 액션의 긴박감은 조금 결여되어 있다. 사실 이건 액션 시퀀스 자체를 훌륭하게 짠다고 해서 가능한 일도 아니다. <스피드 레이서>와 <트론:새로운 시작>처럼 모든 것이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확연하게 비주얼로 드러내는 영화의 경우, 물리적인 서스펜스는 좀처럼 발휘되지 않는다.

사이버 펑크 운동의 시작

<트론>은 80년대 이후로 세상을 뒤바꿔버린 시대정신의 일부였다. <트론>이 개봉하고 2년 뒤에 윌리엄 깁슨의 역사적인 SF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가 등장했다. 깁슨의 소설은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말을 처음으로 창조해냈고, (작가 스스로는 <블레이드 러너>의 영향력을 가장 많이 거론하지만) 그것이 <트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트론>과 <뉴로맨서>는 사이버 펑크 운동을 열어젖혔다. 가상공간을 다루는 대부분의 영화들(그러니까 <매트릭스>로부터 <아바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 거의 모든 SF영화들)은 <트론>과 <뉴로맨서>에 빚을 지고 있다. 리스버그는 “제프 브리지스를 컴퓨터에 집어넣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사이버 스페이스에 자신만의 아바타를 창조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말한다. “그렇다. <트론>은 정말로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사이버 펑크 운동이 영화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것도 이미 지난 세기의 일이다. <매트릭스> 이후 가상 세계와 현실을 오간다는 영화적 컨셉과 사유는 더이상 새로운 게 아니다. <트론: 새로운 시작>이 정말로 새로운 시작이 되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트론: 새로운 시작>은 쌍둥이처럼 <트론>의 이야기를 되새김질한다.

<트론: 새로운 시작>은 묘한 균열의 영화다. 눈을 믿을 수 없는 기술적 진보와 눈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빈티지한 이야기가 28년 만의 속편 속에 뒤엉켜 있다. 이 디지털 시대의 조금 때늦은 모험담은 어쩌면 우리에게 재미있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특수효과의 발전은 상상력의 한계를 진정으로 뛰어넘었는가, 아니면 한계를 오히려 넓혔는가. 새로운 특수효과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이 될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아직도 새로운 장난감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만들 만한 능력이 없는 것일까. 디지털 액터의 가능성은 무한한가, 아니면 그것은 오히려 배우들의 새로운 굴레가 될 것인가. 눈을 믿을 수 없는 기술적 진보, 그리고 기술적 진보를 동시에 짊어지고 빛의 세계 속을 질주하는 <트론: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속편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의 시작이다. 어쩌면 이 질문들로부터 새로운 진화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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