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 마클레이,
12월9일~2011년 2월13일 / 삼성미술관 Leeum / 02-2014-6900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 ‘오감’ 중에서 미술과 가장 안 친한 감각은 무엇일까. ‘청각’이라고 주장해본다. 물론 미디어 아트처럼 아예 소리를 담고 있는 미술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청각은 감상과 집중에 방해가 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니까. 사운드 아트 작가 크리스찬 마클레이는 ‘보는 행위’에 밀린 변방의 청각을 예술의 중심부로 데려온 장본인이다. 어린 시절 레코드판을 사용해 즉흥적으로 소음음악을 실험했으며, 1980년대 뉴욕 언더그라운드 펑크 음악에 깊이 영향을 받은 이 작가는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소리의 역할을 고민했던 위대한 아티스트 존 케이지를 계승해 ‘듣는 미술’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가 이름을 알린 1995년작 <전화>를 예로 들어보자. 7분30초 분량의 비디오 영상 작품인 <전화>는 할리우드영화 속 전화 받는 장면만 모아 편집한 작품이다. (순서와 관계가 없으나 설명을 하자면) ‘제임스 본드’ 숀 코너리가 전화를 했을 때 ‘아멜리에’ 오드리 토투가 전화를 받는 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데 모인 작품들은 교묘하게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위치한 주인공들이 소리의 순서에 의해 재편집된 것이다. 이처럼 크리스찬 마클레이의 작품은 시각 중심의 미술을 청각 중심으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현대미술계의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
‘소리를 보는 경험’이란 부제를 단 마클레이의 이번 개인전에서는 <전화>를 비롯해 <비디오 사중주> <시계> 등 세 영상 작품이 소개된다. <비디오 사중주>는 <전화>에서 마클레이가 시도했던 시각과 청각의 전복이 좀더 유려하고 능숙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할리우드영화의 장면 중 악기가 사용되었거나 소리가 인상적인 장면을 차용하는데, 4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음향과 영상들은 마치 4중주 연주를 보는 듯 긴밀하게 서로 이어진다. 2010년 작품인 <시계>는 소리에 대한 고민이 시간성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된 경우다. 총 상영시간이 24시간에 달하는 대작인 이 작품은 영화 속에서 시계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분 단위로 연결한다. 한 에피소드를 한 시간으로 간주해 총 24개의 에피소드로 주인공의 하루를 그린 미국 드라마 <24>에 버금가는 기발한 아이디어랄까. 아무쪼록 감상하고 나면 듣거나 들리는 것에 대해 좀더 너그러워질 수 있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