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려 한 것일까?
'카페 느와르'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영화다. 그리고 올해 개봉한 영화 가운데 아마 가장 실험적인 작품일 것이다. "책의 리얼리즘을 구현한 영화"라는 정성일 감독의 말처럼 대사는 문어체적이고, 10분이 넘는 롱테이크(길게찍기) 장면도 자주 나온다.
똑같은 대사는 인물을 바꿔가며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기시감(旣視感)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도 영화 전편을 타고 흐른다. 명장 감독들의 영화뿐 아니라 브레히트, 바흐, 그리스 신화 등 이른 바 '교양'(敎養)에 근거한 내용이 3시간 18분을 빼곡히 채운다. 이 영화의 부제가 '세계 소년소녀 교양문학전집'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야기 구조도 깔끔하지 않을뿐더러 이미지들은 서로 충돌한다. 마치 무성영화처럼 대사가 영사막에 비추어지지만, 그 대사를 설명하는 해설은 스크린을 비추는 대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드라마가 성기고, 친절하지도 않아 무얼 말하려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영화는 사랑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인 듯하다. 이 시대의 영화광인 비평가 정성일 감독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그린 작품일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두 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두 번째 에피소드는 도스토옙스키의 '백야'를 뿌리 삼았다.
흰색바탕에 '카페 느와르'라는 검은색 글자가 새겨진 오프닝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화양연화'의 오프닝을 떠올리게 한다.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를 담은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다.
이어 영화는 한 소녀가 햄버거를 먹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카메라는 한 소녀(에필로그에서 이 소녀는 임신한 상태로 드러난다)가 우걱우걱 햄버거를 씹는 장면을 10여 분간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양상추, 토마토 등을 흘려도 소녀는 입을 닦지도, 콜라도 마시지 않은 채 오로지 먹기만 한다. 마치 햄버거를 먹는 게 고통스럽지만 성스러운 일인 양.
영화는 이처럼 오프닝과 프롤로그를 통해 '사랑과 고통, 그리고 희생'이라는 영화의 주제를 집약적으로 전달한다.
중학교 음악교사인 영수(신하균)는 애인인 미연(김혜나) 대신 애인과 같은 이름을 가진 학부모 미연(문정희)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영수는 곧 학부모 미연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는다.
사랑의 상처를 입은 영수는 거리를 배회하던 중 치한에게 희롱당하는 선화(정유미)를 구해준다. 둘은 이후 자주 만나면서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간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사랑에 빠진 후 고통에 허우적대다가 결국은 숨지는 영수의 이야기를 따라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정 감독은 영화광답게 무수한 영화를 차용했다. '괴물'이나 '올드보이'를 비롯해 레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 장뤼크 고다르의 '주말',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쇼트 등을 빌렸다.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의 한 장면은 아예 통째로 삽입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다. 난데없이 일본 전통악기 샤미센을 이용한 음악이 나오는가 하면,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이 등장하고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흐르는 등 인류 문화유산들이 영화를 치장한다. 이 가운데 소설 '백야'에 근거한 대사를 선화가 읽듯이 읊조리는 장면은 압권이다. 하나의 쇼트로 이뤄진 이 장면은 무려 20여 분에 이른다.
다양한 이미지들과 음악들이 영화를 장식하지만 통일성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감독의 의도라고는 하지만 지나친 감이 있다.
정성일 감독은 첫 영화를 만들면서 '극장전'의 유명한 대사 "생각을 더 해야해..생각을"이라는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한 탓일까. 영화는 생각 속으로 침잠해 다시 수면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상업영화에 길든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당황해 할 게 분명해 보인다.
2008년 5월 촬영을 마친 이 영화는 오는 30일 개봉된다.
청소년관람불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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