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보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침인데도 어둑어둑한 것이 눈 내리는 날의 운치가 느껴졌다. 몸이 영 개운치 않았고 꿈도 어수선했다. 그래서 집을 나서는 길에 쌓인 눈을 밟으며 따뜻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밖으로 나가봤더니, 창밖에 내리던 ‘눈’은 온데간데없고, 날씨가 더욱 춥기만 했다. 영화제가 열린 11월을 마감하고 맞이하는 12월은 사라져버린 ‘눈’을 만나는 기분과 비슷하다. 1년 동안 준비하는 행사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누릴 여유들을 영화제 뒤로 미루곤 한다. 11월의 축제가 끝난 뒤 지난해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한달 동안 유럽여행을 떠났고, 올해는 단편영화 후반작업 마무리와 새로운 시나리오 작업을 목표로 잡았다. ‘영화제만 끝나면, 영화제만 끝나면, 영화제만 끝나면…’이라고 그간의 마음을 다독이며 달려왔는데, 단편영화 사운드 작업은 언제 마무리될지 모르겠고,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는 제목부터 턱 막히고 있다. 저기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마주하는 순간,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다시 12월이 오고 겨울이 올 것이다. 지치지 않고 끝까지 길을 걷다보면, 여기까지 걸어온 우리에게 함박눈이 내려줄 것이라 믿는다. 물론 다시 녹고 없어질 ‘눈’이지만, 눈이 올 때만큼은 따뜻한 마음을 함께 나누듯이 말이다. 조금은 추운 12월을 맞이하고 있는 영화 속 친구들이여, 가자! 보이지 않는 것에 절대 지지 말고! 나의 세 번째 단편 <내가 본 것은>과 내년에 찾아올 제9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 동등한(?) 행운을 빌며… 와, 또 ‘눈’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