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결국은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해피'한 것일까.
오로지 복수를 위해 전력 질주했지만 복수가 끝난 뒤에 밀려오는 허무감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이며, 성공을 손에 쥐었지만 그것으로 처절했던, 애끊는 슬픔으로 점철됐던 지난 세월을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일까.
SBS TV 창사 20주년 특집극 '자이언트'(극본 장영철.정경순, 연출 유인식)가 이 같은 질문을 남기며 7일 60회를 끝으로 7개월 여정을 마무리한다.
1970-1980년대 서울 강남 땅 개발기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며 인기를 모은 '자이언트'는 특히 박력있고 파워풀한 스토리로 중장년 남성팬들로부터는 '오랜만에 볼만한 드라마가 나왔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시대극답지 않은 빠른 스피드로 젊은층을 유인하는 데도 성공했다.
◇초반 시청률 고전 = 중반 이후 인기를 바탕으로 10부가 연장됐지만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자이언트'는 건설업계를 배경으로 맨손으로 일어나 성공신화를 쓴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 때문에 기획단계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니냐는 시선을 받아야했다.
유인식 PD는 6일 "방영이 되기도 전에 근거 없는 루머에 시달려야 했고 그로 인한 선입견 때문에 일단 외면하는 다수의 시청자들이 계셨다"며 "그런 선입견은 오로지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내용으로 불식시키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는데 제게 그 과정은 아득하고 외롭게만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이런 이유와 함께 '동이'가 한창 인기 있을 때 시작한 데다 이후 월드컵 중계로 편성이 뒤죽박죽 되면서 '자이언트'는 초반에 고전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제작진의 승부욕을 고취시켜 드라마를 더 많은 이야기와 더 빠른 스피드로 무장하게 만들었다. 이에 힘입어 시청률은 초인적인 의지로 숱한 역경을 헤쳐나간 주인공 이강모(이범수 분)의 활약과 보조를 맞춰 상승세를 탔고, 결국 3개월 만에 '동이'를 잡는 데 성공했고 지난달부터는 시청률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유 PD는 "이러다가 영영 저희의 의도는 왜곡되고 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자이언트'를 변호해주는 네티즌들이 나타났다"며 "그 힘으로 점차 드라마를 둘러싼 부정적 이미지가 깨어져 가는 과정은 경이롭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내가 정말 싸웠던 것은 당신 같은 인간이 잘사는 시대" = 장영철 작가는 제목에 대해 "'자이언트'라는 제목을 보고 주인공이 거인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제가 생각한 자이언트는 어두웠던 1970-1980년대를 살아온 이들이 극복하고 맞서 싸워야했던 삶, 시대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극중 모든 인물이 성공을 위해, 자이언트가 되기 위해 전력 질주하지만 그런 의미보다는 1970-1980년대가 쓰러뜨리기 힘들었던 시대였다는 것을, 거인 같은 시대였다는 것을 상징했다"고 설명했다.
삼청교육대와 근로봉사대가 위용을 떨치고 정경유착, 중앙정보부의 만행, 정치적 살인 등이 만연했던 그 시절이 바로 거대한 거인이었고, 드라마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언정 불의에 분노한 민초들의 힘이 하나둘 모여 그 거인과 싸웠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물론 그 가운에는 용기와 양심, 정의감으로 뭉친 이상적인 인물 이강모가 있어 극적 재미를 고조시켰고, 시청자는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지금은 과거가 됐지만 여전히 트라우마를 주는 그 시절을 회고했다.
이강모 역시 마지막에는 자신이 평생을 걸고 복수의 칼을 갈았던 조필연(정보석)에게 "내가 정말 싸웠던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 같은 인간이 잘사는 시대였다"고 말하며 조필연을 넘어선 더 큰 악이 무엇인지 짚는다.
◇"다 가졌지만 아무것도 갖지 못한 나" = 드라마는 현재의 '금싸라기 땅'인 강남이 어떻게 개발됐는지를 보여주며 정치 드라마와 함께 경제적 성공 신화를 조명하며 흥미를 끌었다.
이강모의 한강건설은 온갖 방해공작과 사고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지만 이강모는 위기의 순간 지략을 발휘하고 사선에서도 편법을 쓰지 않는 정정당당한 모습으로 장애를 하나하나 헤쳐나가며 시청자와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연탄재를 날라 매립지를 메우고, 흙 경화제를 이용해 도로를 건설하고, 아파트 공사 초기 보일러 사고가 발생하고 개발 경쟁이 치열했던 점 등은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라 드라마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결국 이강모는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연 행복을 찾았을까. 드라마는 이미 1회 프롤로그에서 이강모의 대사를 통해 극한의 고통을 뚫고 나온 자를 기다리는 것이 과연 행복만일까 질문했다.
이강모는 프롤로그에서 "다 가졌지만 아무것도 갖지 못한 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회한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결국 드라마는 이강모뿐만 아니라 이성모, 이미주, 조필연, 황태섭, 조민우 등 70-80년대를 관통했던 인물 모두가 승자, 패자를 떠나 '역사'라고 말한다.
장영철 작가는 "어두웠고 암울했던 만큼 그 시대 사람들은 치열하고 진지했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후 1990-2000년대가 열리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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