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전에는 의사나 변호사, 경찰이 나오는 드라마가 인기 높았죠. 이 사람들이 한 드라마에 다 나오면 크게 성공할 거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요. 그런데 최근 10년간 의사나 경찰 등이 나오는 드라마는 사람들이 싫증을 내요."
미국 인기 드라마 '로스트'와 '프리즌 브레이크'에 작가로 참여한 모니카 메이서는 2일 상암동 한국콘텐츠진흥원 회의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 드라마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하우스' 'ER' '그레이 아나토미' 같이 병원을 무대로 한 드라마나 'CSI' '로 앤 오더' 같은 범죄 수사물, '보스턴 리갈' '저스티스' 같은 법정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지만 새로운 소재와 내용의 드라마가 속속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5년 전 같았으면 절대 안 했을 것을 지금 하고 있다"면서 "'롬' '튜더스' '매드멘'이 시대물의 문을 활짝 열었다. 또 뱀파이어가 나오거나 '워킹데드'처럼 좀비를 소재로 한 드라마도 새로운 트렌드"라고 말했다.
메이서는 흑인인 아버지와 한국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매우 큰 자산이라면서 김윤진이 출연한 '로스트' 시즌1에 참여했을 때의 경험을 털어놨다.
"'로스트' 미팅에서 저를 소개했더니 보스가 눈을 번쩍 뜨더라고요. '로스트'에는 한국인과 흑인이 5명이나 나오기 때문이죠."
그는 '로스트'에서 보조 작가로 일했기 때문에 직접 대본을 쓰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김윤진과 한국계 배우 대니얼 대 김이 각각 연기한 '선'과 '진' 캐릭터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선과 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사람들이 항상 저를 보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물어봤죠."
'로스트'에서 나온 한국의 모습이 실제와 거리가 많았다고 지적하자 "아마 하와이에서 다 찍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면서 "나도 시즌1의 식당 장면을 볼 때 중국 식당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세트에 더 신경 썼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커피 프린스 1호점' 같은 한국 드라마를 자주 봤다는 그는 "세트장에 대본을 팩스로 보내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촉박한 작업 여건 때문에 배우나 스태프의 고생이 클 것이라고 걱정했다.
메이서는 미국에서는 아이디어를 내거나 자료 조사 작업을 많이 하는 보조 작가로 경험을 쌓고 나서 정식 작가가 되는 위계질서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세계적으로 히트한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를 공동 연출한 존 스티븐슨 감독이 함께했다.
스티븐슨 감독은 '쿵푸 팬더'의 성공 비결을 묻자 "만들면서 내가 유일하게 만족하게 하려 한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면서 "모든 사람이 진심으로 쿵푸 영화에 애정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점을 성공 요인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고 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홍콩 무술영화의 팬이었다는 그는 '쿵푸 팬더'의 애니메이터들이 쿵푸를 배우도록 했다는 일화도 전했다. "예를 들어 얼마나 팔을 뻗어야 하는지를 애니메이터들이 직접 배우면서 느꼈죠. 점심때마다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그는 '왕의 남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지구를 지켜라' 등의 제목을 줄줄이 읊을 정도로 한국영화의 팬이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며 특히 송강호에 대해서는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배우라면서 "영화마다 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상대역의 말을) 듣는 표정을 보는 건 마법을 보는 것 같다"고 극찬했다.
"한국영화에서 좋아하는 건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러나 미국의 대중들은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이야기와 좋은 결말을 원하는 데 제가 본 많은 한국영화는 그렇지 않아요.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와) 다르다는 건 양날의 칼인 셈이죠."
모니카 메이서와 존 스티븐슨 감독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는 '글로벌 스토리텔링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이들은 이날 중견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할리우드의 스토리 창작 시스템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열었으며 3일 오후 2시 방송회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공개강좌에 나선다.
kimy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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