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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니 위버 "봉준호 감독 '괴물' 2번 봤죠">
2010-12-02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쉽게 낙담하지 않았고,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았어요. 자기 스스로를 믿으며 제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할리우드 SF계의 전설 시고니 위버의 말이다.

그는 지난달 29일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첫 방문했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일보가 주최한 '세계 여성 리더십 컨퍼런스' 참석하기 위해서다. '에이리언'(1979)으로 명성을 얻은 지 30여년 만에 첫 방한이다.

시고니 위버를 최근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시고니 위버는 시쳇말로 '엄친딸'이다. 미국 NBC 방송국의 이사를 지낸 실베스터 위버를 아버지로 둔 그는 명문 스탠퍼드대(영문과)를 졸업했다.

명민하고 가능성이 무궁했던 위버는 돌연 예일대대학원에 들어가 연기를 배웠다. 연극배우가 되고 싶다는 갈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연기는 머리도 중요하지만 가슴도 필요한 분야였다. 교수들은 "재능이 없다"며 위버를 면박줬고, 그때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서 "교수들의 지적을 머리에서 지우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양질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연극이 좋아 연극무대를 전전하던 그는 우디 앨런 감독의 '애니홀'(1977) 등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조금씩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다.

전형적인 미인 스타일은 아니었기에 그는 여배우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큰 키(182㎝)에 강인한 외모는 고전적인 여성상을 보여주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약점은 때에 따라 장점으로 승화될 수도 있다. 여전사 이미지를 찾고 있던 영국 출신 리들 리 스콧 감독의 눈에 띄어 운명의 작품 '에이리언'에 발탁된 것.

괴생명체와 싸우는 강인한 여전사는 그간 할리우드 영화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스콧 감독은 키가 6피트 이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을 찾았어요. 제가 가진 개성과 자신감이 감독님의 눈에 띈 거죠."

그는 "남성들만 하는 역할"이라는 주위의 반대에 신경 쓰지 않았다.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그의 성향은 진취적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들었더라면 지금의 위치가 아니라 상당히 우울한 입장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여성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믿어준 감독님들께 감사해요. 특히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를 했던 리들 리 스콧 감독이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을 만난 건 제 인생에서 정말 행운이었죠."

'에이리언' '에이리언 2'(1986) 이후에는 여전사보다는 다양한 얼굴로 관객들을 만났다. 그는 여러 상업영화뿐 아니라 냉철하게 사회를 조명하는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물오른 연기력을 과시했다.

부수적인 성과도 거뒀다. '정글 속의 고릴라'(1988)와 '워킹 걸'(1988)로 1989년 골든글로브 최우수여우주연상과 최우수여우조연상을 동시에 받았다. 아울러 '에이리언 2'(1986), '정글속의 고릴라' '워킹걸'로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조연도 가리지 않고 있다. 전 세계 박스오피스 흥행순위를 갈아치운 '아바타'에서도 조연인 의학박사 그레이스 어거스틴 역으로 극에 안정감을 불어넣었다.

예순을 넘긴 현재는 오히려 활동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스페인으로 휴가를 떠난 가족의 아이가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더 콜드 라이트 어브 데이', 우디 해럴슨과 호흡을 맞춘 뱀파이어물 '앤드 어브 데이스', 코미디 '유 어게인', SF 코미디 '폴' 등 6편의 영화에 최근 출연했다.

그는 "젊고 감각 있는 감독들과의 작업을 즐긴다"며 밝게 웃었다.

위버는 여전사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약 50편에 이르는 필모그래피 중 SF물은 고작 5편에 불과하다.

그는 "스토리가 좋아서 선택했지 SF물을 선호한 건 아니다"며 "내가 출연했던 SF영화들은 미래의 이야기지만 현재의 삶과도 관련이 있다. 그리고 나는 선택을 매우 잘했다"고 말했다.

한국영화에 대해 묻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매우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2번 봤다고 했다.

"매우 뛰어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화입니다. 괴물에 많은 신경을 썼는데요, 괴물의 탄생과정에 대한 묘사라던가 오염물질을 방출하는 묘사도 대단히 치밀해요. '마더'에 대한 평가도 좋더라고요. 아직 못 봤지만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요. 봉 감독을 존경하고 있어요."

위버는 "좋은 한국영화를 추천해달라. 아직 (한국) 영화를 충분히 공부한 게 아니다"며 "한국은 영화팬들이 많고, 젊은 사람들이 영화의 길을 가고자 하는 나라"라는 평가를 덧붙였다.

buff2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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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