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아이들이 마법을 행하는 작은 소년 ‘해리 포터’에 빠져 있다면, 80년대 아이들의 머리맡에 어김없이 놓여진 ‘ET’야말로 그 시대를 지내온 아이들만이 꿈꿀 수 있는 하나의 전유물이 아닐 수 없다. 따듯한 심성을 무기로 온갖 상품들에 새겨져 기세를 떨치던 이 흉물스러운 고무인형이 자전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달 사이를 지날 때, 전세계 모든 이들은 <ET>를 이야기해야 했으며, 영화사의 한 페이지에 이 장면이 등록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지금은 일견 싱겁게 여겨지기도 하는 장면들은 그 즈음의 촬영 기술 덕을 톡톡히 보았음에 틀림없고, 촬영감독 앨런 다비오는 바로 이를 멋지게 조율해낸 장본인이다.
<ET> 이외에도 <칼라 퍼플> <아발론> <태양의 제국> <벅시>에 이르기까지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된 낯익은 그의 작품들이 금세 앨런 다비오의 영상을 보증해준다. 1942년 LA 뉴올리언스 태생의 다비오가 이처럼 할리우드의 촬영귀재로 등극할 싹은 컬러 TV를 대하던 충격과 함께 이미 그에게 움트고 있었다. TV 화면과 스크린에서 다르게 제각각 빛나던 색깔의 향연은 온통 탐구해야 할 과제로 여겨졌다. 도서관과 스튜디오, 전기기구점 등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다. 14살의 어린 소년은 그렇게 <CBS> 방송사와 파라마운트사의 불청객으로 잔꾀를 써가며 현장을 들락거렸다.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내부사람처럼 보이든가 그도 아니면 아침에 커피 트럭을 기다려 그뒤에 숨어 휩쓸려 들어갔다. 물론, 카메라 근처에라도 갈라치면 곧 저리 가라는 고함을 듣기 일쑤였지만, 라이브 방송의 마지막 시기라 할 1960년대에 그걸 지켜본 영광은 고스란히 내게 촬영생활의 산 경험이 되어 돌아왔다.” 무거운 카메라를 자유로이 다루며 감독인 말론 브랜도와 진지하게 장면을 고심하던 <애꾸눈 잭>의 찰스 랭을 보며, 그는 평생 자신이 본 직업 중 가장 멋진 직업이 촬영감독이라고 믿게 됐다. 촬영 정규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꾸준히 주변의 모습을 스틸로 기록하였고, 고교 졸업 뒤에는 카메라 숍에서 일하면서, 편집에도 참여하게 된다. 지금이야 최고의 감독이라 칭해지지만 그때까지 유니버설의 정식 감독이 아니었던 20살의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조합의 벽은 높기만 했다. 촬영을 하는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꽉 짜여진 조합은 완고했고, 그 일원이 되기까지는 TV 광고와 교육방송, 다큐멘터리를 통해 멀리 돌아가는 인내가 요구되었다. 이때 다비오가 촬영한 뮤직클립 ‘로큰롤쇼’를 보고 스필버그는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하게 되고, 단편영화 <앰블린>(1968)으로 그는 촬영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이 영화를 탈출구로 스필버그는 유니버설의 감독이 되지만, 조합에 속해 있지 않던 다비오와 작업을 함께 할 수 없었고, 십여년 뒤에야 <ET>를 통해 다시 해후한다.스필버그와 함께한 작품에서 그는 과감한 색채로 하늘과 땅과 푸른 잎을 그려내며 <칼라 퍼플>의 영상을 창조하는가 하면, 밤 촬영이 대부분이었던 <태양의 제국>에서는 빛의 편차를 극복할 수 있는 패닝 방식을 개발함으로써 촬영방식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오기도 한다. 함께한 세월만큼이나 현장의 곳곳을 일일이 통솔하려는 스필버그의 작업방식에 익숙해진 뒤부터는 그는 수많은 명감독들과 작업을 해왔다. 또한 배리 레빈슨, 피터 위어, 존 슐레진저 감독 등과 함께 영화를 찍으면서 다비오는 스크린을 휘어잡을만한 입지를 확보했다.
광고 촬영을 하기도 하며, 강단에도 서는 등 활동 폭도 넓은 편. 촬영을 꿈꾸는 학새들에게 그는 사진을 권유한다. 사진을 통해 일어날 상황들을 연속적으로 미리 그려보고 빛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좋은 촬영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기술 모두가 내겐 좋았다. 촬영이야말로 예술적으로 이 둘을 통합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다른 무엇이 아닌 촬영감독으로 이끈 계기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기술은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하다. 기술이 향상되고 복잡해질수록 감독과 촬영감독간의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기술보다 더 귀중한 촬영의 도구이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Allen Daviau 필모그래피
<하트 인 아틀란티스>(Hearts in Atlantis, 2001) (uncredited) 스콧 힉스 감독
<스위트>(Sweet, 2000) 앨리스 쿠빌리온, 제임스 필킹톤 감독
<트랜슬레이터>(The Translator, 2000) 레슬리 앤 스미스 감독
<애스트로넛>(The Astronaut’s Wife, 1999) 랜드 라비치 감독
<콩고>(Congo, 1995) 프랭크 마셜 감독
<공포 탈출>(Fearless, 1993) 피터 위어 감독
<벅시>(Bugsy, 1991) 배리 레빈슨 감독
<영혼의 사랑>(Defending Your Life, 1991) 앨버트 브룩스 감독
<아발론>(Avalon, 1990) 배리 레빈슨 감독
<태양의 제국>(Empire of the Sun, 1987)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해리와 헨더슨>(Harry and the Hendersons, 1987) 윌리엄 디어 감독
<칼라 퍼플>(The Color Purple, 1985)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어메이징 스토리>(Amazing Stories, 1985)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위험한 장난>(The Falcon and the Snowman, 1984) 존 슐레진저 감독
<환상 특급>(Twilight Zone: The Movie, 1983)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해리 트레이시, 데스페라도>(Harry Tracy, Desperado, 1982) 윌리엄 그레이엄 감독
<이티>(E.T. The Extra-Terrestrial, 1982)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에브리싱 유 노 이즈 롱>(Everything You Know Is Wrong, 1975) 필립 오스틴, 피터 베리만 감독
<앰블린>(Amblin’, 1968)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