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이언맨>(2008)으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그런 남자가 아니다. 희극의 제왕 찰리 채플린의 전기영화 <채플린>(1992)에서 그는, “유령을 보는 듯 소름끼칠 만큼 찰리 채플린을 부활시켰다. 외모의 유사성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떠돌이 복장을 하고 있을 때 채플린의 영혼을 손에 잡힐 듯 낚아챈다”(평론가 로저 애버트)는 격찬을 받으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이제 그는 마약 중독에 빠졌던 젊은 날의 아픔도 잊고, <아이언맨> 시리즈를 통해 뒤늦게 획득한 ‘인사이더’의 안정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화장실 유머의 대가 토드 필립스의 신작 <듀 데이트>에선 길동무를 잘못 골라 죽도록 고생하는 평범한 가장으로 등장하여 남자 배에 얼굴을 폭 파묻는 등의 망가지는 연기도 서슴지 않는다. 그럴 때의 이 남자는, 눈을 찡긋하며 ‘나 즐기고 있는 거 알지?’라는 사인을 보내는 것 같다. 미워할 수 없는 훈훈한 중년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