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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가지 키워드로 류승범 파헤쳐보기
장영엽 사진 오계옥 2010-11-30

고집 류승범의 20대를 대변하는 하나의 단어다. 20대의 류승범은 “좋고 싫은 것, 옳고 그른 게 명확한” 사람이었다. 그 고집은 <품행제로> 촬영 당시 조근식 감독과의 마찰로 이어지기도 했다. 캐릭터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류승범은 스탭이 “저렇게 덤비는데 가만 놔둬도 되냐”고 말릴 정도로 치열하게 감독에게 캐릭터를 되물으며 중필이란 인물에 접근했다. 고집은 몰입을 낳았고, 몰입은 결과적으로 긍정적이었다. 당시 <품행제로>의 각본을 맡았던 이해영 감독은 현장에서 처음 ‘중필이’를 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시나리오에는 원래 중필이에 대한 두 가지 결이 있었다. 봉태규와 함께 있을 때 나오는 껄렁함과 공효진, 임은경과 연기할 때 나오는 쭈뼛쭈뼛함. 그 두 가지 결을 배우가 잘 살릴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군산 촬영현장에서 승범이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시나리오가 배우 때문에 생명력을 얻는다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다. 그건 계산하고 하는 연기가 아니라 정말 자기가 지닌 것을 한순간에 확 드러내는, 굉장히 솔직하고 시원한 연기였다.”

애드리브 흔히 감초 연기를 잘하는 배우에게 세트처럼 붙어다니는 ‘애드리브’란 단어는, 역시 ‘신 스틸러’로 평가받아온 류승범에게도 잘 어울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류승범은 자신이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배우가 아니라고 말한다. “감독과 사전에 논의하지 않은 애드리브는 거의 하지 않는다. 다만 애드리브 느낌으로 대사를 치는 걸 좋아한다. 탁 물으면 탁 대답하는 게 아니라, 탁 물어보면 반 템포 쉬어간다든지 한 템포 빨리 간다든지, 그런 대사톤을 여전히 좋아한다.” 애드리브와 관련한 오해 한 가지. <부당거래>에서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된다”는 주양의 대사는 류승범의 애드리브가 아니다. 류승범은 오히려 영화의 분위기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류승완 감독에게 이 대사를 삭제하기를 제안했다고 한다.

감수성 거의 동물적으로 보이는 류승범의 연기 감각은 어디서 나올까. 평소 영화도 책도 잘 보지 않는다는 류승범은 영화를 촬영하지 않는 시간이면 홀로 감수성을 충전하는 시간을 가진다. 최근에는 앞서 언급했던 미술과 더불어 건축에 관심이 생겼다. “건축물을 보면, 내 안의 남성성, 마초적인 기질이 막 뿜어져나오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런 걸 오토바이 타면서 느꼈는데…. 특히 일본 다이칸야마에 있는 한 건물을 너무 좋아한다. 누가 건축했고 무슨 건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건물 컨셉이 찢겨지고 뜯기는 느낌이다. 철근이 건물 절반에 노출되어 있고, 하여간 종이를 찢은 듯한 느낌의 건물인데 그 건물을 보는 순간 남성성이 끓더라. 효진이랑 그 앞에서 사진도 찍고 그랬는데. 그 건물을 보면서 나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음악이 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 사이의 음악들을 좋아한다. 제임스 브라운, 아바, 신중현, 조용필, 송골매 아저씨의 음악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그때 그런 음악이 있었기에 지금 이러저러한 음악들이 나오는구나 생각한다. 음악 취향도 본질을 찾아가듯 점점 더 오래된 음악들을 듣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혼자 감수성을 찾다보면 연애는 언제 하냐고 농을 걸 듯 물어봤다. 이어지는 류승범의 대답, “물론 컨템포러리한 작품들은 같이 보러 다닌다. 또 그런 거 있잖나. 여성적인 거. (웃음) 평소에는 효진이와 같이 데이트하고, 인사동 가고 싶을 땐 나 혼자 가면 된다.”

인형 <페스티발>에서 류승범의 짝사랑 상대는 섹스돌이었다. 인형 오타쿠를 연기한다는 부담은 전혀 없었지만, 인형의 촉감은 부담스러웠다고. “내가 영화 찍으며 더미를 많이 봤잖나. 막 창자 쏟아진 시체, 이런 걸로 더미를 인식하다보니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인형을 만질 때마다 더미 생각이 많이 났다. 게다가 인형이 (김)아중이 본을 뜬 거잖나. 너무 사람 같으니까 섬뜩한 데가 있었다. 인형을 사랑하는 역할이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잘 만져보지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웃음)”

류승완 류승범은 형이자 가장 많은 작품을 함께한 류승완 감독과 <부당거래>로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류승범은 형이어서가 아니라, 류승완 ‘감독님’으로서의 현장 스타일이 본인과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한다. “류 감독님 현장에 가면 딱딱딱 빠르고, 템포감이 있고, 현장이 리드미컬하다. 그런 현장에 가면 일단 마음이 안정되고 막 기운이 난다. <부당거래>의 경우 그런 현장에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정민이 형도 있으니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생각도 맑아지고, 좀더 창의적인 해석도 떠오르고.”

황정민 황정민은 유난히 류승범과 작품에서 자주 인연을 맺었던 배우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류승범과 유난히 죽이 잘 맞았던 황정민은 비슷한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류승범의 아토스를 타고 출퇴근할 정도로 그와 가까운 사이가 됐다. <사생결단>에서 황정민은 독종 마약상 상도(류승범)를 잡으려는 도 경장 역할이었는데, <부당거래>에서는 검사 주양(류승범)에게 굽신거려야 하는 경찰 최철기 역이니, 갑을 관계가 역전된 셈이다. 서로의 합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류승범은 최철기와 맞부딪히는 장면에서만큼은 거침없이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당거래>에서 가장 큰 과제가 주양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였던 까닭은, 어쩌면 황정민이라는 상대 배우의 든든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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