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좋았다. 극장이 좋았고, 그 안의 팝콘 냄새가 좋았고, 스크린 외의 모든 세상과 차단되는 일탈감이 좋았다. 영화 현장의 활기참이 좋았고, 현장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영화는 내 꿈이었고, 한때는 내 모든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빌딩 숲의 커리어우먼을 동경해서, 혹은 꿈을 꿈으로만 간직하기 위해서 등등 수만 가지 이유로 몇번이나 눈을 돌려 다른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언제나 한때의 시도에 그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영화 공부를 하고 있거나 제작 현장에 있거나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영화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영화제에서 일하며 영화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일하는 CinDi(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는 새로운 감독의 발견을 위해 올해부터 버터플라이 섹션을 신설했다. 버터플라이 출품작 공모 기간에는 하루에도 몇번씩 배달되는 포대 자루를 보면서 ‘저걸 다 언제 정리해?’하며 투덜대다가도 그 안에 담긴 땀과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소포 주인들의 꿈을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솟는 게 사실이었다.
내년 초 또다시 제5회 CinDi영화제 버터플라이 출품작 공모가 시작된다. 사무국에는 택배 보따리를 한 아름 짊어진 우체부 아저씨가 하루에도 몇번씩 꿈을 날라다주시겠지. 그리고 나는 연일 이어지는 야근에 힘들어하다가도 그 꿈들을 생각하며 바짝바짝 힘을 얻겠지. 그때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