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반 동겐, <푸른 눈의 여인>, 1908, 캔버스에 유채, 27 x 22cm ⓒKees Van Dongen/ADAGP, Paris-SACK, Seoul, 2010
2011년 3월1일까지 | 덕수궁미술관 | 02-757-3002
“전쟁이 사악한 것으로 간주되는 한 그것은 언제나 고유의 매혹을 지닐 것이다.” 19세기 말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이 말은 전쟁과 산업화를 겪어야 했던 20세기 예술가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가만히 골방에 틀어박혀 이 절망과 불안의 시대를 견뎌낸 것이 아니었다. 어떤 이는 인간을 과장되고 왜곡된 모습으로 그리며 현대의 우울하고 병적인 시대정신을 표현했고(에드바르트 뭉크), 어떤 이는 원시적인 숲속에 놓인 나체의 인간을 그리며 훼손된 순수를 그리워했다(오토 뮐러). 더불어 대상의 모방과 재현을 중시하던 미술계의 화풍은 인간 내면과 작가의 사적인 관점에 대한 표현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결국 전쟁과 산업화는 인류에게 불안과 고독을 선사했지만, 그것이 유발한 변화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매혹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피카소와 모던아트: 열정과 고독>은 20세기를 맞아 변화의 기로에 있던 유럽 화가 39명의 회화, 조각, 드로잉을 소개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알베르티나미술관의 소장품으로, 피카소와 샤갈, 모딜리아니와 알베르토 자코메티, 에드바르트 뭉크 등 20세기 화단을 주름잡았던 작가들이 ‘열정’과 ‘고독’이라는 키워드로 묶였다. 전시명에 유일하게 포함된 거장 피카소의 작품은 대다수가 푸른빛을 띠고 있어 ‘청색시대’라 불리는 1901년부터 1904년까지의 회화와 1940~50년대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특히 익숙한 입체파 형식의 그림보다는 청색시대의 작품에 눈길이 간다. 실연의 아픔으로 자살한 친구 카사게마스를 잃은 충격과 함께 시작한 이 시기의 피카소는 인간의 비참과 소외, 절망을 주제로 지독하게 어두운 그림들을 내놓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맹인과 또 다른 남자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검소한 식사>등이 소개된다.
이 밖에 파리 미술계의 유행을 선도하며 화류계 여성들을 강렬한 색채로 그려냈던 야수파 출신의 화가 키스 반 동겐의 <푸른 눈의 여인>, 거칠고도 이국적인 화풍으로 연인의 나체를 그린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여인의 누드>, 인물의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초상화에 담아내고자 했던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안네트의 초상> 등을 추천한다. 뭉크가 그린 겨울 해변, 칸딘스키의 비교적 추상적이지 않은 풍경화, 인상주의 기법으로 정물화를 그린 마티스의 그림 등 거장들이 이름을 알린 화풍과 조금 다른 정서의 그림을 보는 재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