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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발] 나에게 복종하고 싶어? 그럼 꿇어
2010-11-09

SM 마스터, 순심역의 심혜진

동네 어귀에서 한복집을 운영하며 평범하게 살던 순심은, 우연히 들어갔던 철물점 차고에서 거대한 채찍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본인에게 SM(정확히는 사디스트)적 성향이 내재되어 있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순심 캐릭터의 가장 큰 관건은, 엄마와 SM 마스터라는 양 극단의 성향을 모두 공평하게 표현하면서도 존재 자체의 무게감이 필수라는 것이었다. 한복집에서는 단아한 모습이기를 바랐고, 생활공간인 집에서는 여느 엄마들처럼 억척스럽기를 바랐고, SM 플레이가 주로 이뤄지는 SM 던전에서는 독한 마스터의 위용이 느껴지기를 바랐다. 상호 붙기가 만무해 보이는 이 지점들을 딱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강력한 배우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 주관식 문항의 모범답안은 단연, 심혜진이었다.

십수년 그녀의 팬이기도 했지만, 막상 그녀와 함께하는 작업이란 팬심을 훨씬 공고히 만들어주는 경험이었다. 적절히 세월이 묻어나는 관록은 엄마로도, SM 마스터로도 충분한 생활상이었고 동시에 넘치는 카리스마였다. 그녀 앞에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한 순간, 감독은 그저 거들 뿐. 순심 캐릭터는 저절로, 제 발로 저벅저벅 도도한 직립보행(이라고 쓰고, 시크한 캣워킹이라고 읽는다)을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녀가 배우 생활 동안 거의 입은 적 없었다는 한복 자태가 뿌듯짜릿했고, 막연히 ‘캣우먼 같았으면’ 하고 꿈꿨던 SM 코스튬의 피트감에는 황홀 전율이 일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간절히 복종심을 부르는’ 마력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아아, 그녀에게 혼나고 싶어라’ 반사적으로 반응하게 만들고야 마는 매력이었다. 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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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해영(영화감독) <페스티발><천사장사 마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