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인터넷의 각종 검색엔진들이 올해 인기를 누렸던 검색어들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예상을 그렇게 빗나가지 않고, ‘엽기’, ‘와레즈’, ‘게임’, ‘리니지’ 등의 장수 검색어들과 ‘황수정’, ‘정양’, ‘하리수’ 등 단발성 검색어들이 골고루 순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올 한해 가장 많이 이용했던 검색어를 꼽으라면, 아마 Harry Potter를 꼽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검색창에 마우스를 클릭하면 나타나는 과거 검색 기록에서 Harry Potter가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매번 Potter를 Porter로 잘못 쓰는 바람에 꼭 두번씩 검색을 했어야 했다는 사실. 이유야 어떻든 Harry Potter는 확실히 올해 가장 많이 사용한 검색어임은 틀림이 없다.
이렇게 Harry Potter를 자주 검색하게 된 것은 소설 자체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도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보다는 영화로 제작되는 <해리 포터>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에 대한 궁금증을 지난 1년 내내 떨쳐버리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제작 초기 단계에서는 어떤 감독이 선정되었고 어떤 배우들이 캐스팅되었는지에 대한 인터넷 속 소문과 풍문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해리 포터> 영화의 제작 소식과 제작진/배우들의 인터뷰 등이 실린 홈페이지들은 매번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리 포터>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했던 것은 비단 필자 개인만의 경험이나 취향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리 포터>의 영화화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로 엄청난 네티즌들이 정보의 수동적인 이용자가 아닌, 아주 능동적인 창조자로 변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개봉되어 예상되었던 빅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요즘, 특이하게도 그런 <해리 포터> 관련 팬사이트들은 온통 속편들의 제작에 대한 소식들로 왁자지껄하다. 그것도 2편에 대한 소식뿐만 아니라, 아직 출시도 되지 않은 소설 <해리 포터> 5편권에서부터 시리즈의 끝인 7권까지에 대한 무수한 소문까지 다루고 있을 정도다. 마치 소녀팬들이 인기가수에 열광하며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알고 싶어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는 부분은, 단연 캐스팅에 대한 소식들이다. 특히 속편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주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질데로이 록허트 교수 역이 휴 그랜트에게 돌아갔다는 소문은 한때 <해리 포터> 팬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화제가 되었다. 나중에 확인 결과 휴 그랜트가 계약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샌드라 불럭과 연기할 <이브와 함께 시작됐다>(It started with eve)와 스케줄이 겹치면서 고사(?)했다는 것이 알려져 많은 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다. 현재까지 그의 뒤를 이어받아 록허트 교수를 연기할 것으로 알려진 배우는 케네스 브래너로, 상당수의 팬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와 함께 속속 결정된 캐스팅은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국 배우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대부분 생소한 것이 사실. 살펴보면 50년 전의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교장인 디펫 교수 역에 앨프리드 버크, 깐깐한 도서관 사서인 마담 핀스 역에 샐리 모트모어, 아기 모양의 비명지르는 식물 멘드레이크를 다루는 약초학 교수 스프라우트 역에 미리암 마골리에 그리고 ‘비밀의 방’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열쇠를 가지고 있는 모우닝 머틀 역에 올해 13살인 알리시아 로시악이 낙점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벌써부터 2003년에 개봉할 3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캐스팅 소문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중 3편에서 가장 인기있는 등장인물인 어둠의 마법 방어법 수업을 위해 전근을 오는 늑대인간 시리우스 블랙. 루핀 교수 역에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크리스천 베일이 거론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있다.
이런 캐스팅 소식과 함께 지난 1편이 개봉된 뒤 이틀 만인 11월18일 영국 런던의 교외에서 촬영을 시작한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의 촬영현장 사진이 차츰 공개되고 있는 것도 네티즌 팬들 사이에서는 아주 큰 화젯거리다. 물론 지금까지 공개된 것들은 모두 팬들이 몰래 찍은 현장의 모습들. 그중에는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 낡은 포드 앵글리아의 사진도 있고, 론과 해리가 안개 자욱한 금지된 숲을 걸어가는 사진도 있다. 물론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사진들이지만 골수팬들은 벌써부터 내년에 11월에 개봉될 2편을 예측하는 자료로 활용하는 중. 또 한켠에서는 1편에 출연했던 영국 출신 배우들이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를 상대로 임금을 올려주지 않을 경우, 속편들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선데이 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을 두고 설전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감독인 크리스 콜럼버스가 여러 번 인터뷰를 통해 아역배우들을 포함해 1편의 출연진들이 지속적으로 속편들에 출연해야 하기 때문에 속편의 촬영을 쉬지 않고 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이라, 영국 출신 배우들의 반란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몰라 더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집착에 가까운 행동에 대해 <해리 포터>를 단지 하나의 소설이나 영화로만 생각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해리 포터의 마력에 이미 빠져버린 팬들에게는 이러한 작은 소문 하나하나가 생명력이 충만한 하나의 빅 뉴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영화뿐만 아니라 원작소설 자체가 계속 집필되고 있는 상황에서, 팬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상상력을 현실화시켜줄 단초로서 정보와 소문들을 계속 찾고 만들어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몇년간 인터넷의 한구석은 <해리 포터> 팬들로 인해 시끌벅적할 것이다. 그리고 굳이 팬이 아니라도 그런 시끌벅적함을 곁눈질로 보며 즐기는 것은, 아마도 상당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이철민/인터넷 칼럼리스트chulmin@hipop.com
업커밍 무비스의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페이지
http://www.upcomingmovies.com/harrypotter2.html
<해리 포터> 갤러리스 홈페이지
http://www.hpgalleries.com/
사진들은 <해리포터> 속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