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류승완 감독의 '부당 거래'는 검찰과 경찰, 언론의 추악한 이면을 파헤친 일종의 사회고발 영화다. 긴박감 넘치는 이야기를 밀도감 있게 연출한 류승완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지만 배우들의 호연도 영화의 완성도를 더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경찰 최철기(황정민)와 함께 극을 이끌어 가는 검사 주양 역의 류승범이 있다. 류승범은 기회를 포착하면 놓치지 않는 끈기를 가졌으면서 신경질적이고 야비한 주양 역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라며 경찰을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하지만 막상 코너에 몰릴 때는 평소 무시하던 경찰에게 넙죽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다 된밥에 숟가락만 올리면 되는 사건"이라며 대충대충 사건을 처리하지만, 위기에 처했을 때는 상대방을 끝까지 추적해 결국에는 응징하는 뚝심도 보여준다.
"이번처럼 캐릭터 이해가 안 되는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류승범은 최근 강남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영화를 중간쯤 찍고 나서야 비로소 캐릭터가 이해됐다. 정말 연기하기 어려웠다"며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경찰관과 검사, 스폰서인 건설업자가 얽혀 저마다 이익을 챙기려고 더러운 거래를 하다 파멸에 치닫는 모습을 그린다.
인물들 간의 대결보다는 사건의 비중이 훨씬 크다. 최철기가 극을 이끌어가는 연쇄살인사건이 전면에 등장하다가 주양 검사와 건설사 간의 유착관계를 설명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이러한 사건들은 관계없는 듯 따로 놀다가 극이 진행되면서 교묘하게 포개진다.
"제가 등장하는 사건들이 띄엄띄엄 발생하니까 감정 잡기가 쉽지 않았어요. 제가 나오지 않아도 사건은 이미 많이 진행돼 있어서 감정의 단계를 밟기가 어려웠습니다. 예컨대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감정이 올라오는 단계를 1-10단계로 나눌 때, 어떤 장면에서 5단계라고 판단했는데 정작 요구하는 건 7단계 정도로 점프해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어려웠죠."
이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현장에서 열심히 했다고 한다. 류승완 감독에게 계속해서 자문을 구하고 황정민 등 배우들에게도 도움을 받았다. 자신의 촬영이 없는 날에도 나가 다른 배우들이 촬영했던 연기도 봤다. '감정의 점프'를 막기 위해서였다.
"정말, 감독님 도움이 컸어요. '부당거래'가 혼자 질주해서 결승선에 닿는 영화는 아니잖아요. 전체적인 밸런스가 중요한 영화죠. 그런 부분에서 감독님이 조련을 잘 해주신 것 같아요. 나중에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뿌듯했던 건, 배우 중 누구 하나 튀지 않으면서 영화에 안착했다는 느낌을 줬다는 점이죠."
그는 처음으로 검사 역할을 맡았다. 부담스러웠느냐고 묻자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지만 배역을 위해 특별한 준비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제 주변인물 중에 검사가 있겠어요?(웃음) 제가 할 연기가 검사에 대한 직업을 고증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인물을 파악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했죠. 인물파악을 위해서 감독님과 많은 말을 나눴어요."
'부당거래'의 류승완 감독은 류승범의 친형이다. 류승범은 인터뷰 내내 류승완 감독을 "형"이라는 말대신 "감독님"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촬영장에서 무조건 감독님이라고 불렀어요. 지금은 현장에서 가끔 형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해요. 감독 류승완의 동생이 류승범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졌으니까요. 감독님이라고 부를 때는 배우로서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 주로 쓰죠. 긴장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류승완의 작품에 자주 출연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다찌마와리'(2000), '피도 눈물도 없이'(2002). '아라한장풍대작전'(2004), '주먹이 운다'(2005) 등 주ㆍ조연급만 5편이다. 그는 류 감독의 영화에 5년만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작업하는 태도가 조금 변한 것 같아요. 예전에 감독님은 열정이 넘쳐서 모든 걸 스스로 통제하려고 했어요. 지금은 본인 스스로 무장해제를 한 느낌이에요. 느긋하게 관전포인트만 짚어 주시는 편이었죠."
황정민과는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사생결단'에 이어 3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소처럼 일하는 배우라는 점에서 정민 형은 별로 변함이 없는 분 같아요. 참 한결같은 사람이죠."
류승범은 올해에만 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용서는 없다' '방자전' '부당거래' '페스티벌'이다. 그는 "현장에 가는 게 재미있다. '용서는 없다'와 '방자전'은 조연이어서 그나마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드라마에 다시 출연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자, "날밤을 새는 살인적인 일정이어서 나랑은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정말 드라마에서 연기 잘하시는 분들은 진짜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했으니 그도 어느덧 10년차 배우다. 10년차 배우의 소감을 묻자 예상 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20대부터 지금까지 제 마음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변화에서 발생한 그 무엇인가를 끄집어내서 연기에 반영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예전에 했던 연기를 다시 동어반복 하기도 하죠. 배우로서 커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지난 10년간 남들을 잘도 속이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연기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제 실력이 곧 들통나겠죠. 정말로 나를 채워야 한다는 느낌이 절실합니다. 평생 공부라는 건 해본 적이 없는데 제가 좋아하지 않는 분야도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 관심의 폭을 넓혀야죠. 열심히 노력하면 잘 되겠죠. 적어도 제가 가진 가능성만은 믿고 싶습니다."
그는 오랜 연인 공효진에 대해서는 "정말 자연인 같은 사람이다. 물 흐르듯이 편안한 사람이어서 연기도 자연스럽게 잘하는 것 같다"고 했다. 결혼과 관련해서는 "서로 심각하게 이야기해 본 적은 없다. 아직 서로에게 그럴만한 때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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