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제목만큼이나 특이한 연애 이야기다. 불교 철학을 밑바탕으로 한 영화는 선호와 소의 여정을 통해 치유와 사랑에 대해 말한다.
귀향한 노총각 시인 선호(김영필)는 시골 생활이 마뜩찮다. 농사를 지어야 하고 소똥도 치워야 하며 아버지의 잔소리도 견뎌야 한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과 소를 돌봐야 하는 불편함을 끝내고자 선호는 몰래 소를 팔러 나간다. 하지만, 턱없이 싼 값을 부르는 상인들의 제안에 분통만 터진다.
제값을 받기 위해 유명한 우시장을 찾아 나선 선호는 옛 여자친구 현수(공효진)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현수의 남편이자 절친했던 친구 민규가 죽었다는 것.
장례식장으로 가던 선호는 젊은 시절 '피터 폴 앤드 메리'로 불렸던 자신과 현수가 나눴던 추억에 잠긴다.
영화는 본성을 찾아가는 선 수행 과정을 소와 주인의 관계에 비유해 그린 십우도(十牛圖)를 배경으로 한 김도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묵직한 내용을 담았으면서도 영화의 발걸음은 밝고 경쾌하다. 사랑과 성장 이야기가 뒤섞이면서 상업영화로서 충분한 재미도 갖췄다.
큰웃음이 '빵' 터지지는 않지만 소소한 웃음이 도처에 잠복해 있는 건 주인공 선호 덕택이다. 절친한 친구에게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긴 그는 시인으로서도 성공 못 하고 마흔 가까운 나이에 부모님으로부터 잔소리만 듣는 찌질남.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인 시는 "상처받고 외로운 사람이 부르는 노래"일 뿐이다. 남을 고려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 상태에만 빠져 있는 선호는 현수의 말처럼 "부족한 이해심과 넘치는 이기심"으로 무장한다.
그런 선호가 소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조금씩 자신의 닫힌 마음을 열어젖힌다. 심장 속에 꼭꼭 숨겨뒀던 진실을 깨닫게 되고, 무엇을 해야 행복해지는지도 서서히 알아 간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성장이라는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 영화가 데뷔작인 연극배우 출신 김영일은 옛 상처를 잊지 못하는 남자의 복잡한 심리를 신인답지 않은 능숙한 연기로 풀어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공효진은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쿨한 여성의 심리를 절제된 연기로 표현해낸다.
극 중 등장하는 사찰 이름이 '맙소사'인데, 맙소사 주지 스님을 비롯해 여러 단역이 감초 같은 연기로 영화를 자연스레 이끈다.
영화는 선호를 중심으로 펼쳐지다가 선문답 같은 내용의 강연이 이어지고, 극중의 내러티브와 관계없을 법한 판타지적인 장면들이 등장한다. 모두 꿈 속 내용인데,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조금 헷갈릴수도 있다.
영화를 볼 때 남성 관객들은 선호에게, 여성관객들은 쿨한 현수에게 감정을 이입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피터 폴 앤드 메리'의 '500마일' 같은 명곡들이 아름다운 화면에 잘 녹아드는 것도 영화의 장점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이다. 상영시간은 110분.
11월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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