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엔 이상하게도 여성 스탭이 많다. ‘많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여튼 많다. 하지만 영화제엔 물리적인 체력과 근력이 필요한 일 역시 무척 많다. 홍보팀의 일이긴 하지만 기자회견을 비롯해 개막식, 영화제 기간 파티, 폐막식 등의 행사를 진행할 때면 정장을 말쑥하게 빼입은 여성 스탭들이 산더미 같은 짐을 양손에 가득 들고 행사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영화제 홍보팀으로 명함을 파기 시작한 지 4년째, 해가 지날수록 각종 영화제의 명함은 쌓여가지만 영화제 동안의 체력, 근력 노동 역시 늘어만 가고 있다.
영화제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 하는 질문은 “너무 불안정하지 않나요?”이다. 불안정하다.‘안정적’이라는 단어의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영화제는 ‘불안정’하다. 어제도 또 하나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이제 개막식만 남은 요즘, 또다시 불안감이 나를 덮치고 있다. 밤 9시, 10시, 컴퓨터를 끄고 퇴근할 때면 빼먹은 것이 없나, 내일은 어떤 일을 처리해야 하나 전전긍긍하며 돌아서는 내 모습이 너무나 처량하게 느껴진다. 국내에 영화제가 너무 많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하지만 그 수많은 영화제 속에 나의 동료가, 나의 친구가 몸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수많은 영화제가 우리의 ‘안정적’인 직장이자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는 ‘밝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5~6개의 영화제가 끝나면(혹은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또 새해가 시작되고, 각 영화제들의 새 발걸음이 시작될 것이다. 어찌 흘러갈지 모르는 한해, 정장과 하이힐에 무거운 짐을 옮기는 기자회견을 몇번이나 치르면 또다시 저물어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