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데뷔작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로 새로운 액션영화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듣는 류승완 감독.
그의 7번째 영화인 '부당거래'(28일 개봉)는 이전에 만든 영화들과 달리 액션 장면은 거의 없으며 복잡하게 전개되는 사건과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는 캐릭터들을 묘사하는데 집중했다.
경찰관과 검사, 스폰서인 건설업자가 얽혀 저마다 이익을 챙기려고 더러운 거래를 하다 파멸에 치닫는 모습을 그린 영화다.
20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영화는 모두 액션영화로 오해받는다면서 '부당거래'에 액션장면이 많지 않지만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주먹이 운다'나 '다찌마와 리'를 액션영화라 할 수 있나요. 액션장면이 많은 영화를 주로 만들긴 했지만, 장르적으로는 달랐어요.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제가 액션영화를 만든다고 떠든 것도 있고 언론에서도 '액션키드'라는 별명을 붙여서 '류승완이 만들면 액션영화인가보다' 하시죠. 이번 영화도 항상 제가 다뤄왔던 범죄에 대한 이야기이고 현대 도시에서 뜻하지 않은 결말을 향해 치닫는 남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부당거래'가 액션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나 '짝패'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전 영화는 아예 장르영화를 표방하고 이미 만들어진 다른 영화를 의식하고 만들었다면 이번 영화는 일종의 원본 상태의 영화라고 할까요?"
류 감독은 "다른 영화보다 장르의 전통적 방식에 비빌 언덕이 별로 없어서 인물 묘사에 주력했다"면서 "배우가 워낙 중요한 영화라서 이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움직이는지를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부당거래'는 류승완 감독의 전작과 달리 그가 시나리오를 직접 쓰지 않은 작품이다. 대본을 받았을 때 이미 배역이 정해진 상태였지만 그는 "잘 모르는 배우들과 작업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캐스팅을 새로 했다"고 털어놨다.
"류승범이 무시무시한 엘리트 양아치를 하면 진짜 무섭겠다 싶었어요. 저는 그 배우의 스펙트럼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있으니까 듣도 보도 못한 역을 하나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류승범과 최고의 앙상블을 끌어내는 데는 황정민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검사 주양 역의 류승범, 승진을 애타게 갈구하는 경찰 최철기 역의 황정민, 최철기의 스폰서 역할을 하는 건설업자 장석구 역의 유해진 등 3인방은 말그대로 불꽃 튀는 연기를 보여준다.
류 감독은 "황정민 선배는 일해보니 소 같은 사람이다. 한번 좋으면 간이고 쓸개고 빼주는 것 같다"고 했고 "류승범은 독사 같은 놈이다. 워낙 잘한다"고 평했다. 유해진에 대해선 '괴물'이라면서 "어떤 장르화된 유형도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칭찬했다.
조연배우를 캐스팅하는데도 수개월 동안 공을 들였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주연이 잘해도 조연에 빈틈이 있으면 걷잡을 수 없다"면서 "일종의 방수공사 같다. 약간의 균열만 있어도 일단 비가 새면 온 집안에 곰팡이가 퍼진다"고 했다.
그는 영화 만드는 것을 집 짓는 일에 비유했다. 좋은 설계도와 땅, 재료, 기술자를 다 갖춰야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있지 하나라도 어긋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부당거래'에는 선악구도의 대립이 없다. 저마다 자신을 더럽히면서 악마와의 거래를 서슴없이 한다.
그는 "명확한 선악구도의 대결을 좋아한다"면서도 "이 영화는 그럴 영화가 아니었다.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라는 상투적인 표현마저도 상투적으로 만들 정도"라고 설명했다.
"하루 24시간 온종일 나쁜 사람도 없고 온종일 좋은 사람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면서 그는 "만들면서 누가 나쁘다 좋다 하는 생각은 안 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이 벌이는 행위의 사실 관계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류 감독이 영화에서 그린 것은 "최고의 정점은 없고 끝없이 물고 물리는 순환구조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다.
이번 영화 외에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아라한 장풍 대작전' '주먹이 운다'까지 모두 4편의 영화를 함께 한 동생 류승범으로 화제를 돌렸다.
류승완은 동생에 대해 "제 영화에 나올 때마다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면서 "'쿵짝'이 잘 맞아서 같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동생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잠깐 망설이다 칭찬을 늘어놨다. "점점 창조적 예술가가 돼가는 것 같아요. 지시에 따르는 마네킹이 아니라 생각도 깊고 역할에 대한 고민도 무지해요."
류승범을 캐스팅할 때도 매니저를 통해서 한다고 했다. "일할 때 오해하는 시선이 싫어서 지킬 건 철저하게 지키려고 해요. 그래야 실수를 안하죠. 서로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가의 단계로 진입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출연 제의를 했다가 거절당한 적도 있어요. '부당거래'도 안 하려고 하는 걸 제가 설득했죠."
27세에 데뷔한 류승완 감독은 어느덧 7편의 영화를 내놨다. 그는 "'류승완은 이런 걸 만들거야'하는 기대감이 불편하다"면서 "어떨 땐 진심으로 신인감독이 부러울 때가 있다. 한때는 유명해지고 싶었는데 지금은 유명한 것과 유능한 것은 다르다고 알아버려서 유능한 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난 아직 나에게서 최고작이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서 "빈틈이 보이는데 그건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거다. 그게 안 보이는 순간이 내 그릇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최대치 같다"고 덧붙였다.
"최고작은 다음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죽기 전에 나올 수도 있죠. 평생 못 만들 수도 있고요. 자꾸 개선하려고 노력할 뿐이죠."
차기작이 어떤 장르가 될지 묻자 그는 말을 아꼈다. "요새는 장르는 생각 안 해요. 일단 이야기와 어떤 사람이 등장하느냐가 기준점이죠. 서부에서 칼 차고 떠도는 동양인 남자라면 자연스럽게 서부를 배경으로 한 무술영화가 되겠죠. 이야깃거리와 인물이 먼저 결정돼야 장르가 결정되고, 장르도 사실 영화가 완성돼야 규정되는 거죠. 예전엔 장르를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장르를 정해놓고 영화 만드는 건 무의미한 것 같아요."
그는 "우리 세대는 좀 그럴듯한 액션영화를 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이젠 너무 뛰어난 액션과 SF영화가 나온다"면서 "굳이 어떤 장르를 만들고 싶다 하는 욕망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류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야깃거리는 어디서 얻을까? 그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거나 신문 기사, 소설 등 다양한 경로로 아이디어를 찾는다고 했다.
"갈수록 취재를 중요하게 여겨요. 제 머릿속에서 뭔가 끊임없이 샘솟는 게 아니라면 나머진 발로 뛰어서 채워야 하죠."
kimy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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