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부산영화제님. 흠, 이거 어렵군요. 어떤 형체를 가진 분이라고 상상하며 인터뷰를 해야 할지. =꼭 형체를 가져야만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제가 김동호 위원장님처럼 생겼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래도 이 지면에는 사진이 올라가야 해요. 김동호 위원장님은 실존 인물인데 가상인터뷰 사진으로 내세울 순 없지 않겠습니까. =전형적인 A형 남자로군요. 정 별 게 없으면 그냥 갈매기 사진을 쓰던가요.
-부산 갈매기를 생각하니 플레이오프에서 나가떨어진 롯데가 떠오르면서 슬슬 기분이 나빠지는데요. =이대호나 가르시아 사진을 쓰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요?
-어쩔 수 없이 갈매기 사진을 써야겠군요. 돼지국밥이나 복국을 상상하며 인터뷰를 하면 제가 너무 불쌍해 보일 것도 같고. 여하튼 부산영화제님을 처음으로 만난 게 1996년이었네요. 영화제가 개최하는 걸 보지도 못하고 입대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다음해 휴가를 영화제 기간에 맞춰 나와서 겨우 영화제님을 만날 수 있었죠. 그땐 뭔가 좀 동네축제 같기도 했는데….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잘 안 나긴 하는데 막 허둥지둥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고향 부산에서 영화제가 열리는 게 너무 기뻐서 잠도 못 잘 정도였습니다. 당시의 저는 그 시절에 수도없이 생겨났던 신생 영화광 중 한명으로 영화는 신묘하고 영묘하고 근엄한 거라 생각하던 대학생이었거든요. =그럼 지금은요.
-글쎄요. 그 시절에는 밥은 못 먹어도 영화는 본다가 모토였다면 지금은 복국과 영화를 저울 위에 올려놓고 재게 되었달까. 영화광의 과거를 청산했다기보다는 잘 먹지 않으면 영화를 보기 힘들어진 나이가 됐다는 의미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늙었다는 소리네요.
-같이 늙어가는 처지면서…. 게다가 살도 엄청 찌셨어요. 96년 부산영화제님이 31개국 169편을 보여주신 데 반해 올해는 67개국 308편을 보여주셨습니다. 몸집이 두배로 불어나셨습니다. =비만은 아니에요. 제가 한창 자랄 나이였으니까 당연한 거죠. 그래도 올해는 다이어트를 조금 시도했습니다.
-덕분에 관객도 기자들도 만족스럽습니다. 영화가 너무 많을 때는 편당 상영횟수도 줄기 때문에 오히려 놓치는 영화들이 많았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지금이 딱 좋은 것 같습니다. =다이어트가 성공적이었다는 말씀이죠?
-그럼요. 참. 갑자기 기억나는 게 있어요. 96년의 부산은 길거리에서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면 지나가던 덜떨어진 남자들이 뺨을 때리던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부산영화제가 열리는 기간 동안의 남포동은 거의 여성해방주의의 신전으로 변모했어요.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어도 아무도 뭐라고 안 그랬거든요. 여자친구들과 남포동 거리를 걸으며 뻔뻔하게 담배를 피워대던 기억이 아른하네요.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는 게 여성운동의 일환이었던 시절이라. 하아….
-96년이었다니까요 96년. 여하튼 김동호 위원장님이 퇴임하신 뒤에도 오래오래 우리 곁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