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만큼 고민 많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10월28일 개막을 앞둔 제1회 과천국제SF영화제(이하 SF영화제)의 태상준 프로그래머 또한 첫 영화제를 앞두고 숨돌릴 틈이 없다. “영화제에 뒤늦게 합류하는 바람에” 서둘러 프로그램을 꾸리며 속사포 같은 여름을 보낸 그는 영화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도 신작 부문을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그래도 한해가 지날 때마다 욕심이 생기는 부분을 보완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프로그래밍의 매력 아니겠어요?”
태상준 프로그래머가 정의하는 1회 SF영화제는 ‘백화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니라 교육과학기술부가 주관하는 행사이기에 “최대한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작품을 선정”하려 했다. 때문에 SF마니아가 좋아할 만한 작품보다 SF적인 요소를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기대하는 것이 맞단다. 그가 추천하는 섹션은 프리츠 랑의 고전SF <메트로폴리스>부터 옴니버스 SF애니메이션 <메모리즈>까지 걸작 SF영화 7편을 영화 스크린으로 감상할 수 있는 ‘마스터피스’ 섹션이다. 신작 중에서는 국내외 단편을 눈여겨볼 것을 권한다.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시각효과연출상을 수상한, 우주 주유소에서 근무하는 남자의 백일몽을 다룬 <데브리스>와 LA 시내에서 천연덕스럽게 우주인을 피해 도망다니는 장면을 촬영한 <디스트릭트9> 느낌의 <더 레이븐>이 추천작이다.
내년에는 국내 신작들과 새롭게 발굴한 작품들에 좀더 초점을 맞추어 프로그래밍을 해보고 싶다는 태상준 프로그래머에게는 영화제 이외에도 하나의 개인과제가 남아 있다. 프로그래머로서의 데뷔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다. “제가 기자 출신이거든요(그는 영화 웹진 ‘엔키노’ 편집장을 역임했고 최근까지 영화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왔다). 기자로서 영화제를 들락날락하다 영화제를 운영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말로 표현은 못하겠는데 기자들은 모르는 영화제의 생리? 그런 게 진짜로 있더라고요.” 그렇게 초짜 프로그래머는 ‘영화제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