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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 외국인 노동자들을 친근한 존재로 드러내고 싶었다
이영진 사진 오계옥 2010-10-15

<방가? 방가!>의 육상효 감독

<방가? 방가!>의 순제작비는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현물 지원받은 것을 제하면 6억원에 불과하다. 육상효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아이언 팜>(2002)은 미국에서 현지 로케이션을 진행한, 순제작비 10억원의 영화였다. 그의 두 번째 작품 <달마야, 서울가자>(2004)는 순제작비 25억원에, 총제작비가 40억원이 넘었다. <방가? 방가!>를 찍으면서 제작자와 “영화가 중요하냐, 사람이 중요하냐”고 다퉜을 정도로 빠듯한 살림이었다지만, 정작 육상효 감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며 돌아보면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위장취업한 한국 청년이 외국인 노동자 틈에서 일한다는 흥미로운 설정의 <방가? 방가!>는 육상효 감독의 전작들이 그러하듯 캐릭터와 대사가 돋보이는 흥미로운 코미디다. ‘웃기는’ 타이밍과 포인트를 아는 그의 여전한 감각이야말로 <방가? 방가!>가 작은 영화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입소문만으로 적지 않은 관객을 끌어모으는 저력을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매만졌다. 영화 완성까지 5년이 넘게 걸렸는데. =<방가? 방가!>만 붙잡고 있었던 건 아니다. 중간에 타이거픽쳐스에서 다른 프로젝트를 개발하기도 했는데 잘 안돼 다시 이걸 써내려갔다. 애초 제목은 <아카펠라 브라더스>였다. 그 뒤로 <아세아 브라더스>로 한번 바뀌었고. 그때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래자랑에 나가기 위해 연습한다는 줄거리였다.

-한국 사람인 태식이 위장취업하는 설정은 나중에 떠올린 건가. =외국인만 나온다고 하면 영화화될 가능성이 없잖나. 어떻게든 한국 캐릭터를 만들어 넣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하다 그렇게 된 거다. 시나리오 쓸 때 항상 느끼지만 어려울 때가 기회다. 한국 사람이 동남아 사람으로 위장해서 취업한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시나리오에 힘이 붙었고, 진짜 코미디가 됐다.

-시나리오 쓸 때 가구공장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태식처럼 위장취업을 했나. =그럴 리가. (웃음) 가구도매업을 하는 친구 소개로 의자 만드는 공장에서 딱 일주일 일한 게 전부다. 포지션을 받은 건 아니고 그냥 의자 나르는 일을 도운 정도다. 짬나면 취재하고. 의자 만들 때 안 넘어지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대사도 공장에서 들었던 말을 따왔다. 수지에 있었던 그 의자공장이 지금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데, 사장님이 워낙 협조적이어서 바쁜 연말에 보름 정도를 촬영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밤샘 촬영을 주로 했을 것 같다. 공장 일이 끝나야 촬영할 수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 한쪽에선 일하고, 한쪽에선 촬영하고 그랬다. 그쪽 공장도 납품 기한 때문에 사장님도 일하는 상황이었다. 신기한 건 며칠 하다보니 조감독이 ‘슛’ 하면 노동자들이 공구를 놓고 조용히 해준다. ‘컷’ 소리 나면 다시 일하고.

-취재하면서 듣고 본 사연들을 다 담지는 못했을 텐데. =네팔에서 온 친구가 한명 있었다. 그 친구는 매주 토요일 밤에 혼자서 수원의 나이트클럽에 간다. 담배 2갑과 맥주 20병 시켜놓고 밤새 춤추는 사람들 구경만 한다. 한번은 따라갔다가 왜 그러냐 했더니 집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 그게 낫다고 하더라. 어떻게든 이 에피소드를 넣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붙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밝게 찍고 싶었다고 했다. =미술팀이나 의상팀에도 그랬다. 색깔 많이 쓰자고. 톰 행크스가 나오는 로맨틱코미디를 떠올리면서 준비해달라고 했다.

-가명을 쓰는 인물들을 볼 때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의 2010년 코믹 버전처럼 느껴졌다. =외국인 여성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대개 꽃 이름으로 불린다. 장미, 국화 등등. 민들레라는 이름도 있다. 남성노동자들은 국적 상관없이 다 샘이고 톰이고 마이클이다. 이슬람 믿으면 전부 알리고. 우리 편의대로 이름을 바꿔 부르는 것이 정작 그들에겐 폭력이다.

-가장 웃기는 장면을 꼽아달라고 하면 다들 용철(김정태)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노래 <찬찬찬>을 몸으로 설명하는 대목이라고 말할 거다. =시나리오보다 코믹해졌다. 노래를 배우면서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한다는 공존의 의미가 강했는데, 김정태가 연기하면서 코믹함이 배가 됐다. 나는 웃기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쓴 건데. (웃음)

-<찬찬찬>을 택한 건. =가사에 의성어와 의태어가 굉장히 많으니까.

-대사 중에 말장난이 많은데, 흔한 언어유희처럼 주고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한번 더 꼬거나 지른다. 노래방에서 용철의 대사들도 그렇고. =노래방 대사 중 마지막 펀치는 다 김정태의 애드리브다. 김정태는 굉장한 몰입형 연기자다. 대사의 흐름 정도만 잡아놓고, 쟁여놓은 필을 확 풀어놓는다. 노래방 장면 찍을 때 세트 준비하는데 김정태는 1시간 동안 노래방 마이크 들고 노래를 불렀다. 촬영 때 무반주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라 그전에 자기 필을 최대한 끌어올린 거지. 당시에는 ‘쟤는 왜 저러나, 지루한가?’ 그랬지만.

-음악으로 치면 재즈네. =그냥 재즈가 아니라 프리 재즈. 잘되면 굉장히 빛나는데, 상대배우로선 받아주기가 굉장히 힘들다. 게다가 테이크마다 계속 새로운 걸 하니까. (웃음) 반면, 인권이는 계산이 많은 섬세한 배우다. 아주 잘게 쪼개서 분석하는 스타일이다. 짐 캐리보다 코미디 연기하는 로버트 드 니로에 가깝다. 김정태가 노래방 장면을, 김인권이 욕 강의 준비하는 방식을 봤다면 ‘둘이 완전 반대구나’ 하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을 거다.

-계산이 철저한 배우와 감정이 충만한 배우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겠다. =초반에 두 배우가 노래방에서 티격태격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잘 안 맞았다. 인권이도 예상치 못한 대사를 받으면 당황하고. 그런데 한달쯤 지나니 인권이가 어느 정도 과장된 연기가 필요할 땐 그걸 해주면서 맞춰주는 걸 느꼈다. 특히 욕 강의 장면 촬영 때는 감독으로서 처음 ‘아 잘 찍히고 있구나’ 안도했다.

-외국인 배우들을 섭외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동남아 출신 배우들은 거의 없다. 용케 찾았다 싶으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루가 중한 사람들이라 어쩌지 못했다. 라자 역은 학교에서(육상효 감독은 인하대학교 문화컨텐츠 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몇번 본 적 있는 나자루딘을 캐스팅했다. 나자루딘은 그냥 유학생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자카르타대학 교수다. 인하대학교 한국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에게 ‘한번 해볼래’ 했더니 다음날 바로 오디션을 보러 왔다. 노래를 준비해왔는데 체격만 보고선 파바로티 목소리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어~ 어~’ 그런 목소리였다. 딱 맞아떨어지진 않았지만, 유쾌한 성격 때문에 스탭들이 다들 좋아해서 같이하게 됐다. 찰리 역의 피터 홀맨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제2의 대니얼 헤니를 꿈꾸면서 한국에 왔는데 연기에 대한 이해가 있어 욕심이 났다. 그래서 일단 분장팀 불러서 네팔 사람처럼 만들어달라고 했고, 꽤 잘 어울려 캐스팅했다. 알리는 좀처럼 찾지 못했다. 그러다 씨네2000 사무실을 빌려 여배우 오디션을 진행할 때 이춘연 대표님 방에 있던 <한겨레>에서 조그만 기사를 봤다. 충북 음성에서 노래자랑 1등을 한 외국인 기사였는데, 곧바로 수소문했다. 칸은 처음엔 자신없다고 했는데, 우리가 천천히 배우면 된다고 꼬드겼다.

-숙련된 배우들이 아니라서 고충도 있었겠다. =답답하긴 했다. 일단 현장에서 대사 수정을 못한다. 토씨 하나 고치면 그 장면의 대사가 다 무너진다. 연습할 때 한번 틀린 건 계속 틀린다. 알 반장 역을 맡은 칸이 그러더라. 자기 대사만 잘 외우면 되는 줄 알았다고. 제때 대사를 치려면 상대배우의 대사도 외워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안 거지. 그래도 노동하듯 연기를 하는 친구들이라 굉장히 열심이었다. 나중에 칸은 막바지 촬영이 되자 자기가 대사를 만들기도 했다. 부탄가스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LPG라고 말하기도 하고. 아마 김정태가 가르쳐줬던 것 같다. (웃음) 칸은 이슬람이어서 태어나서 술 한 방울 안 먹어봤는데 술 취한 연기를 가장 잘해서 놀랐다.

-태식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 외에도 태식과 용철, 태식과 장미의 이야기가 함께 진행된다.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만지고 나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인종이나 민족이라는 개념이 환상일 수 있다는 주제 아래에서 아이러니하고 코믹한 상황들이 파생된다는 점이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한데 묶일 수 있었던 것도 그 점 때문인 듯하다.

-민감한 소재를 다룰 때 정치적인, 윤리적인 올바름에 대한 고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점 때문에 불안하진 않았다. 각색 작가들이 조심스럽게 희화화를 걱정할 때도 괜찮다고 했다. 그들을 한국사회에 친근하게 드러내 보이고 싶다는 내 목적의 타당성에 확신이 있어서다.

-장미가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가 베트남어로 무엇이냐고 묻는 아들에게 ‘나는 한국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일러주는 대목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적지 않은 고민을 했구나 싶었다. =그건 스토리상의 문제가 더 크다. 장미는 아들이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렇게 한 거다.

-사업장에서의 갈등을 족구로 해결한다거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시위하다 노래방 가는 장면 등은 웃음을 유발하려는 순진한 무리수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코미디영화는 웃기지 않으면 죄악이다. 안 웃기면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이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충족시켜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시나리오 때부터 코믹한 반전을 만들어내려고 애썼다.

-재치있는 설정과 대사들을 보면서 사실일까, 의구심이 든 부분도 있었다. 이를테면 한국에 거주하는 부탄 출신 사람이 대사 부부밖에 없다든가. =그거야 용철이가 하는 말이니 믿긴 좀. 사실 만들어낸 게 많긴 하다. 일단 한국에는 부탄 대사관조차 없다. 베트남에서 남자가 바지를 선물하면 모욕적이라는 설정도 그렇고. 방글라데시 노래도 우리가 같이 만들어낸 거다.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직종에서 일했는데 기자님(영화계 입문 전 육상효 감독은 스포츠신문 연예부 기자로 일했다), 감독님, 교수님 중 어떤 호칭이 가장 맘에 드나. =그래도 감독이지. 개봉했더니 감독님이라고 부르는 학생들도 있다.

-영화를 본 학생들이 뭐라던가. =개봉 전에 제자들 앞에서 시사회를 연 적이 있었다. 그때 교실에서 내가 가르친 것은 다 잊으라고 했다. (웃음)

-영화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영화를 대하는 태도 또한 조금씩 바뀔 것 같다. =이전에는 영화가 숭고한 신앙이었다면, 지금은 좀 다르다. 5년 만에 현장에 가서 느꼈던 건 영화가 정신노동이 아니라 육체노동이구나였다.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협상 능력도 필요한 작업이라는 것도 많이 느끼고. 그런데 그걸 내가 잘 못한다.

-배우들 입장에서는 ‘곤조’를 부리지 않는 감독이어서 대화하기 편했다고 하던데. =정치적인 능력이 좀 부족하다는 말이겠지. 내 천성에 그런 게 별로 없다. 화내고 짓누르고 이런 거. 가끔은 화를 내봐야겠다고 하는데, 화 안 내던 사람이 화내면 옹색하게 보인다. 코미디를 하는 것도 기질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다음 영화도 코미디인가. =그러지 않을까.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영화들처럼 사회적 약자가 주인공인 코미디가 될 것 같다. 또 언제나 그랬듯이 그 안에 사랑 이야기를 눌러 넣겠지. 배경이나 상황이 좀 특수한 로맨틱코미디라고 해두자. 현재로선 계층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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