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이하 <적인걸>)을 보고 나면 감독에게 묻고 싶은 여러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래서 그간의 근황에서부터 <적인걸>의 제작과정과 내용, 서극 영화의 방향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궁금증을 적어 서극에게 보냈다. 그가 조목조목 답변해주었다. 오늘의 서극 영화를 있게 한 뚝심과 야심이 답변에서도 느껴진다.
-최근작으로 <여인불괴>가 있었지만 무협영화로 친다면 <칠검> 이후 5년 만이다. 무언가 서극 영화의 본격적인 귀환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떤 관심과 동기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완성하게 됐는지 먼저 묻고 싶다. =<칠검> 이후 <여인불괴> <미싱>을 만들었다. <여인불괴>는 로맨스, <미싱>은 공포물이었다. <칠검>을 만들고 나서 현대적인 다른 장르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던 것 같다. 장르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다양한 작품에 대한 도전 욕구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적인걸>은 무협 장르여서 선택했다기보다 각본가 진국부의 시나리오에 완전히 반했기 때문에 선택했다. 정통 무협이라기보다 추리극의 성격이 강했다. 이 역시 새로운 도전이었고 즐거운 작업이었다. 나는 이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즐긴다. 그리고 다른 동기가 있다면 적인걸이란 캐릭터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완벽한 사람이다. 그는 영리하고 청렴한 사람인데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이 재미있고 희망적일 수 있다.
-적인걸은 중국 역사상 실존했던, 중국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적인걸을 주인공으로 하되 지금과 같은 영화 속 배경 시기가 설정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적인걸은 중국 내에서 유명한 위인이고 여러 차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소설도 있고 거기서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시대 배경을 설정함에 있어 영향을 받진 않았다. 영화 <적인걸>은 원작을 갖지 않은 순수한 창작물이다. 이번 작품을 위해서 사전 조사를 철저히 했고 당나라 시대가 중국 역사 중 가장 화려하고 특별한 시기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당 시대의 화려함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구체적인 배경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는 측천무후의 즉위식을 중심으로 정해졌다.
-애초에 알려져 있는 적인걸과 당신 영화의 적인걸은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고 들었다. 두 가지가 궁금하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적인걸과 영화 <적인걸>의 주인공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왜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원래의 적인걸은 무척 뚱뚱하고 온화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무술고수도 아니다. 우리의 최초 시나리오에서도 그는 무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추리소설 속의 탐정처럼 영리하고 냉철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영화를 준비하면서 그는 점점 천재적으로 두뇌회전이 빠른 비상한 머리를 가진데다 무술 실력까지 갖춘 인물이 되었다. 나는 그를 진정한 영웅의 이미지로 만들고 싶었고 그런 새로운 캐릭터가 액션을 비롯하여 더 많은 영화적 재미를 전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등장인물들 각자가 자신만의 무협의 세계관 내지는 무술의 컨셉을 부여받은 것처럼 느껴진다. =<적인걸>의 무술 컨셉은 무술감독인 홍금보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적인걸은 매우 정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죽이기보다는 부상을 입힌다. 또한 그의 주된 무기인 항룡간은 그의 지혜롭고 강직한 성격을 나타낸다. 이것은 무기의 떨림으로 상대 무기의 약한 부분을 알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두꺼운 창도 부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 밖에 각 캐릭터의 액션도 무기로 표현하고 싶었다. 배동래는 그의 거친 성격을 보여주는 무거운 양날 도끼를 포함하여 다양한 무기를 가지고 다닌다. 반면 정아는 적이 쉽게 대응하기 어렵도록 멀리서 채찍을 휘두른다.
-영화 속에서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 “적공은 도대체 소속이 어디야?” 이 대목이 흥미로운 건 당신 무협영화의 인물들은 데뷔작 <접변>을 포함하여 때때로 ‘난세’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문득 찾아온 무소속의 해결사처럼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청년기에 당신을 그토록 매료시킨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의 주인공이 당신의 창의적 세계를 통과하여 재출현하고 있다는 인상을 개인적으론 때때로 받는다. 무소속의 해결사 혹은 이 영화의 적인걸, 그와 같은 인물들이 당신의 어떤 생각 아래에서 창조되고 있는지 듣고 싶다. =나는 영웅을 좋아한다. <황비홍>이나 <칠검>에서도 영웅을 주제로 다뤘다. 특히 <칠검>은 버림받은 영웅들의 이야기다. 비록 자신은 사람들에게 외면받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정의로운 성격을 발휘한다. 내 영화의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라 대의적인 이유에서 희생한다. 이런 점들이 나는 관객에게 감동과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적인걸은 내가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영웅이다. 적인걸은 자신은 버림받았지만 결국 국가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인물이다.
-잘 고안된 세트와 CG에 대해 묻고 싶다. 다 말하긴 어렵고, 도드라지는 특정 장면에 대해서만 말해보자. 영화 속 귀도시의 세트는 무엇을 염두에 두었는가. 반면 측천무후의 궁궐과 그 바깥 풍경을 이루는 CG를 사용할 때는 어떠했는가. =귀도시는 한나라 시대 때 지진으로 땅속에 묻힌 이후 오랫동안 잊혀진 지하세계다. 이 지하세계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미친 사람들과 범죄자들이 살고 있고 도시 사회의 시선에서 벗어나 금지된 물건들을 거래하고 연금술이 이뤄지는, 으스스하고 미스터리한 공간으로 설정됐다. 이 느낌을 살리기 위해 디자인팀은 얼음처럼 차가운 물로 가득한 인공 동굴을 빌렸다. 한편, 내가 풍경을 만들어내는 CG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당나라 시대의 화려함과 거대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였던 만큼 항구의 번화함과 서양에 영향을 받은 복합적인 느낌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영화 속 장면 중에서 백미를 꼽으라면 세 차례의 액션 시퀀스를 꼽을 수 있다. 즉 귀도시와 무극관과 통천부도 불탑에서의 액션장면이다. 이 세 차례의 액션을 보면서 장소의 환경적 조건이 이 장면의 액션 스타일을 다스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즉 귀도시, 무극관, 통천부도 불탑이라는 일종의 그 장소의 환경적 요인을 반영한 액션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세 차례의 액션 시퀀스가 유독 아름답다. 그 세 장소에서의 액션연출 개념에 대해서 차례대로 듣고 싶다. =그렇다. 액션에 있어서 공간이 주는 영향은 매우 크다. 같은 무술이라도 어떤 공간에서 벌어지느냐에 따라 그 느낌은 무척 다르다. 그 공간에 있는 물건들이나 장식에 따라서 액션의 동작은 달라진다. 귀도시는 물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수면 위에서 벌어지는 액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물 위에 떠 있는 통나무들이나 배 등은 훌륭한 액션 도구가 되었다. 무극관에는 석탑들이 많은데 그 위를 날아다니거나 천으로 감싸는 모습들에서 오는 이미지가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통천부도에서의 액션은 이곳이 매우 거대한 공간이기 때문에 더욱 역동적인 액션이 가능했다. 특히 엘리베이터가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현대적인 느낌의 액션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차기작으로 <3D 신용문객잔>을 준비 중이라고 알고 있다. 당신이 기대하는 3D의 효과란 당신의 무협영화에서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것은 <3D 신용문객잔>에만 국한되는 것인가, 당신의 무협영화 전반에 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인가. =3D는 내게 새로운 시도다. 나는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발전의 과정을 거듭한다. <촉산> <청사> <황비홍> <여인불괴> 등 모든 영화에서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한다. 단순히 주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작업을 중요시한다. 3D에 도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다. 그리고 이 작품은 세계시장을 겨냥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