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 바르다 작품집>
The Agnes Varda Collection Vol.1, 2
1956~2008년/아녜스 바르다/817분 1.33:1 스탠더드, 1.66:1,1.78:1 아나모픽 DD 2.0 프랑스어/영어 자막/아티피셜아이
화질 ★★★☆ 음질 ★★★ 부록 ★★★★☆
여든의 아녜스 바르다는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이 스완송이 될 거라고 했다(수록되지 못한 영상은 단편으로 만든다고 했지만). 그녀, 그리고 그녀의 동반자인 자크 드미에게 ‘바다와 해변과 모래’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벨기에와 프랑스의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두 사람에게 바다는 고향과 같다. 바르다의 데뷔작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은 바닷가 어촌이 배경이며, 드미의 데뷔작 <롤라>의 첫 장면은 낭트 해안이다. 1990년, 드미가 죽음으로 향하고 있을 때, 바르다는 그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낭트의 자코>를 찍었다. 영화는 해변에 앉은 드미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마침내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에서 다시 해변으로 돌아감으로써 그녀는 자신과 드미의 시작과 끝을 하나로 묶는다. 백만불짜리 미소의 남자는 바다를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종종 아름다운 눈물로 말을 대신하던 여자는 해변이 한 인간의 심상이자 풍경이라고 선언했다.
바르다의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에는 두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다른 모습으로 다른 삶을 사는 두 여자의 연대를 이야기하는 바르다는 결국 두 여자를 한 사람으로 끌어안는다. 얼핏 보기에 바르다와 드미도 다른 영역에 속한 사람들이다. 굳이 두 사람의 영화를 연결할 필요는 없지만(서로의 작업을 존중했기에 촬영현장 방문도 꺼렸다는 두 사람 아니던가), 그들의 영화를 볼 때면 공히 ‘행복감’으로 충만해지곤 한다. 행복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랑하고, 자연에서 행복을 느끼길 원한 바르다는 가족과 함께 야외로 나가는 걸 즐겼다. 사실 소풍을 즐기지 않았다는 드미였지만, 그 또한 행복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건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모래알처럼 작고 은밀한 삶과 사랑과 행복의 비밀을, 두 사람은 과감하고 맹렬하게 부여안았다. 바르다의 대다수 영화에 행복이란 말이 꼭 등장하는 게 우연이 아니다.
2009년에 나온 가장 중요한 DVD 중 하나는 프랑스판 <자크 드미 전집>이다. 드미의 영화를 모으고 충실한 DVD를 구성하는 데 바르다가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였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이 각국에서 개봉된 2009년 전후에 바르다 영화의 DVD도 많이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첫 번째로 추천할 건 영국판 <아녜스 바르다 작품집>이다. 각각 4개의 디스크로 구성된 두 박스 세트는 바르다가 연출한 주요 장편영화를 담았다. 9편의 장편영화- 알랭 레네가 편집에 참여했으며 누벨바그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죽음을 예감한 여가수의 예민한 심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포착한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욕망과 가족과 행복에 대해 논쟁적인 질문을 던지는 <행복>, 여성의 연대와 소통 그리고 고통을 연대기로 그린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얼어죽은 여자의 마지막 나날을 가공의 플래시백으로 구성한 <방랑자>, 바르다가 드미에게 바치는 송가인 <낭트의 자코>,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자화상의 결정판인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는 감독, 사진작가, 설치미술가로서의 바르다는 물론, 사회적 약자와 소수그룹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인 실천가로서의 바르다를 제대로 접하도록 돕는다.
이 박스 세트의 최대 장점은 본편에 뒤지지 않는 부록들의 매력이다(본편 영화는 시네마테크에서 곧 열릴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에서 보는 게 더 낫다). 바르다의 다큐멘터리 세계를 보여줄 다섯편의 단편영화(70분), 특집영상과 인터뷰(256분), 드미의 단편영화(24분)를 제공하는데, 특히 바르다가 직접 참여한 여러 특집영상은 필자가 지금껏 본 부록 가운데 으뜸이다. 부록에서 체온이 느껴지는 건 바르다의 따뜻한 마음 덕분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