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이즘의 창시자 후고 발(Hugo Ball)의 <시대로부터 비행: 다다 일기>를 읽다가 우연히 발견한 구절이다. “우리가 취리히 슈피겔가세 1번지에 카바레 볼테르를 갖고 있었을 때, 그 맞은편, 그러니까 슈피겔가세 6번지에, 내가 틀리지 않는다면, 울랴노프 레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매일 저녁 우리의 음악과 소음을 들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그것들을 즐겼을지, 혹은 거기서 뭔가를 취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가 반호프슈트라세에 갤러리를 열었을 때, 그는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뻬쩨르스부르크로 갔다. 표시와 제스처로서 다다이즘은 볼셰비즘의 반대일까?”
카바레 볼테르의 레닌?
1916년 유럽은 1차대전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이성의 진보가 결국 기계화한 대량살상으로 이어지자, 유럽대륙은 ‘부르주아 사회의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염세적 분위기에 사로잡힌다. 이때 전쟁을 혐오하는 일군의 예술가들이 중립국인 스위스의 취리히로 모인다. 자신을 ‘다다이스트’라 칭한 이들은 매일 저녁 ‘카바레 볼테르’에 모여 광기에 가까운 도발적인 퍼포먼스로써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것을 조롱했다. 그 난장이 벌어지던 건너편에선 러시아의 한 혁명가가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부르주아 사회를 전복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혹시 레닌이 카바레 볼테르에 들러 다다이스트들과 어울리지는 않았을까? 지젝은 레닌의 예술적 취향이 상당히 고전적이었다며 그 가능성을 부인한다. 게다가 다다이스트들은 대부분 아나키 성향을 갖고 있었다. 다다의 또 다른 대표자 트리스탄 차라의 이름은 “국가 속에서 슬프다”는 뜻. 이들이 국가를 없애기 위해 더 강력한 국가를 세우자는 볼셰비즘의 주장에 동의했을 것 같지도 않다. 다다이즘과 볼셰비즘은 기존 질서의 파괴라는 목표를 공유했지만, 철의 규율로 무장한 혁명가와 자유분방한 예술가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 혹은 지젝의 표현을 빌리면 ‘시차’가 존재한다.
혹시 레닌이 다다이스트와 논쟁을 벌인 적은 없었을까? 역사적으로 그랬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발레리우 마르쿠라는 루마니아 시인이 취리히에서 우연히 레닌과 논쟁을 벌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청년이 레닌에게 묻는다. “원칙적으론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다고요? 당신이 볼셰비키라서 전쟁 자체에 반대할 줄 알았는데요.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 않으면 저마다 전쟁할 이유를 들이대지 않을까요?” 그러자 레닌이 대답한다. “확실히 난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아요. 아마도 우리는 결코 충분히 급진적일 수 없을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현실 자체만큼 급진적이려고 노력해야 해요.”
묵시론의 두 지파
레닌이 제 입으로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게 인상적이다. 레닌이 카바레 볼테르에 갔다면, 거기서도 같은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다다이즘과 볼셰비즘의 차이는 거칠게 말하면 아나키즘과 공산주의의 차이에 해당할 것이다. 19세기 아나키즘의 중요한 특징은 묵시록적 세계관이었다. 웹스터 사전은 묵시론을 “임박한 우주적 재앙 속에서 신이 악의 지배세력을 파괴하고 의로운 자들을 메시아의 왕국에서 부활시킨다”는 믿음으로 규정한다. 이 정의에서 니체에게 사망선고를 받은 ‘신’의 자리에 ‘혁명’이나 ‘예술’을 넣으면, 아나키즘(정치)과 다다이즘(예술)의 사유가 얻어질 것이다.
한편, 마르크스주의는 자신을 ‘과학적’ 사회주의로 이해했다. 실제로 그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정교한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 이면에 존재하는 신학적 성격은 감추어지곤 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마르크스주의 역시 묵시론적이다. 그것 역시 “임박한 우주적 재앙(세계혁명) 속에서 악(부르주아)의 지배를 파괴하고 의로운 자들(인민들)을 메시아의 왕국(공산주의사회)에서 부활시킨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 않은가. 이 때문에 움베르토 에코는, 다소 짓궂게 들리지만, 마르크스주의를 “트리에르 지방(마르크스의 고향)에서 발생한 묵시록의 일파”라 부르기도 했다.
흔히 사도요한이 쓴 것으로 (잘못) 알려진 묵시록은 원래 집단적 좌절의 산물이다. 그것은 AD 100년경 악의 왕국(로마제국)이 나날이 승리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면서 초기 기독교인들이 느꼈던 절망의 결정체다. 오늘날 사회주의자들도 나날이 승리하는 자본주의 앞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 몰락의 과학적 필연성이 허구로 드러난 이상 남은 기대는 하나, 즉 자본주의 몰락의 신학적 필연성에 대한 믿음뿐이다. 이로써 한때 과학이었던 사회주의는 신학이 된다. 최근 방한한 테리 이글턴이 느닷없이(?) 기독교의 가치를 옹호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글턴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들먹이며 ‘도덕’ 재무장 운동을 하는 것은 초점이 많이 빗나간 얘기다. 최근 좌파 사이에 부활한 신학은 ‘도덕’이 아니라 ‘묵시론’이기 때문이다. 그가 예로 든 아감벤, 바디유, 지젝 등의 좌파신학은 이글턴이 ‘마르크스주의 랍비’라 부른 발터 베냐민(‘역사철학테제와 폭력비판론’)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글을 쓰던 시절 베냐민의 상황도 파트모스 섬의 요한과 다르지 않았다. 불의를 이기는 정의도 결국 불의로 전락한다. 이 ‘신화적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최종적 정의를 이룰 ‘신적 폭력’에 대한 기대. 베냐민은 자신의 좌절을 메시아적 열망으로 빚어냈다.
앞에 인용한 논쟁에서 레닌은 청년의 이상주의에 현실주의로 응대한다. 그것은 아직 이상사회(공산주의)의 도래를 ‘현실적’ 가능성으로 간주했기 때문일 거다. 적어도 레닌에게 자본주의가 멸망한다는 것은 종말론적 ‘염원’이 아니라, 경치경제학적 ‘필연’이다. 즉 자본주의는 ‘행동에 의한 선동’이라는 파토스에 의해 관념적으로 무너지는 게 아니라, 자체의 모순(프롤레타리아)에 의해 현실적으로 무너진다는 얘기. 하지만 오늘날 인류를 이상사회로 이끌 과학적 이행전략이 사라졌다. 그러자 레닌의 후예들에게 남은 것은 묵시론의 파토스. 여기서 코뮤니즘은 갑자기 아나키즘과 비슷해진다.
오늘날 좌파가 부활시킨 신학은 사실상 아나키즘이다. 그것은 ‘도덕’이라기보다는 ‘예술’의 정치에 가깝다. 아나키스트들은 ‘파괴가 곧 창조’라 믿었다. 공교롭게도 이는 현대예술의 미학을 빼닮았다. 가령 모더니즘 예술은 앞 시대의 가치와 규범을 가차없이 파괴했지만 그 파괴는 동시에 창작이었다. 가령 예술 자체를 부정한 뒤샹의 <변기>는 20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가령 권위주의를 파괴하는 것은 그 자체가 새로운 인간관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파괴한 다음에 건설할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파괴 다음에 건설해야 할 유토피아의 그림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포칼립스 나우
아포칼립스 나우(apocalypse now). ‘탈주’든 ‘거절’이든, 일상에서 일으키는 조그만 종말론적 파국이 체제의 급진적 전복일 수도 있다는 믿음. 이것이 부활한 신학의 새로운 묵시론이다. 베냐민은 ‘역사’ 자체를 끝낼 우주론적 파국을 기대했지만, 오늘날 좌파들은 ‘지금, 여기’에서 그 묵시론을 실현하려 한다. 유물론적 신학은 한마디로 코뮤니스트가 받는 아나키즘의 세례다. 아니면 울랴노프 레닌과 트리스탄 차라를 하나로 합친 합성사진? 아무튼 지젝은 레닌이 카바레 볼테르에 드나드는 것이 개연적이지 못하다고 말하나 오늘날 레닌은 카바레 볼테르에서 다다이스트들과 썩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