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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석] 재벌 2세와 작별하고 편한 남자로 돌아오다
강병진 사진 최성열 2010-09-21

<퀴즈왕>의 한재석

한재석은 대중의 기억 속에서 멈춰선 배우다. 드라마 <태양의 여자>와 <로비스트> <거상 김만덕>까지 그의 활동은 현재진행형이나, 관객의 뇌리에서 그는 여전히 고독한 재벌 2세다. 본인에게는 상당히 난감한 일이다. “사실 재벌 2세로 나온 건 <재즈>와 <로비스트>뿐이다. 나머지는 자수성가하거나, 평범한 집안의 아들이었는데도 사람들은 <재즈>의 한재석만을 기억하더라.”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재벌 2세가 아닌 캐릭터를 연기한 작품들이 재벌 2세를 연기한 작품들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거나, 아니면 재벌 2세가 아닌데도 재벌 2세를 연기했던 때처럼 연기했거나. 물론 “여러모로 성숙하지 못했던 시절”의 작품 가운데 그와 관객이 함께 만족했던 작품이 없었던 건 아니다. 드라마 <대망>의 박시영은 권력을 향한 욕망과 정의로운 동생에 대한 열등감, 한 여자를 바라보는 사랑이 중첩된 인물이었고, 이 작품은 그에게 배우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90년대 트렌디 드라마의 전성시대가 낳은 스타였던 그는 이후의 변화와 맞서지 못했다. 그럴수록 그에게는 화려한 외모와 냉철한 성격과 든든한 재력을 갖춘 남자의 여러 판본이 주어졌다. 그리고 관객은 그 남자들 속에서 과거의 한재석만을 떠올렸다. 그에게는 “새로운 시도가 두려웠던 한편, 답답한 시간이었다”.

한재석에게 장진 감독의 <퀴즈왕>은 그런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털어내려는 시도다. 브라운관 속에서 각진 분위기를 전시해온 그가 배우들의 불꽃 튀는 협연을 중시하는 장진 영화에서 어떻게 녹아들었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예전에는 내 것만 생각하고 연기했다. 또 드라마 현장이 그래야 돌아간 것도 있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내가 치고 들어가야 할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생겼지만, 조금씩 그 분위기에 내가 빠지게 되더라.” 영화 속 해결사 상길은 머리 좋고, 말 없고, 어떤 면에서는 자신감도 있는 남자다. 이전과 그다지 다를 것 없는 이 남자를 희화화하는 건 주변인들이다. 그동안 한재석의 남자들이 온전히 멋진 남자였다면, <퀴즈왕>의 한재석은 멋진 남자이고 싶으나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는 인물인 셈이다. 그는 “그럼에도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는 게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면서 왜 저 정도밖에 안 했을까란 생각이 들더라. 어떤 장면에서는 내가 이전과 다르게 연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와 다를 게 없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퀴즈왕>에서 한재석은 180도는 아니어도 과거에 비해 어색하지 않은 각도를 향해 서 있다. 신비감은 있지만, 그 신비감이 부담스럽지 않은, 조금은 편한 남자. 한재석에게 <퀴즈왕>은 연기의 결과를 떠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 과정에 방점이 찍힌 작품일 것이다.

그의 차기작은 장진의 <로맨틱 헤븐>과 탕웨이와 함께할 <레이싱>(가제)이다. 단역으로 출연한 <로맨틱 헤븐>에서 그는 “약간 못난이, 과격하게 말하면 찌질이”인 남자를 맡았다. <레이싱>에서는 택시운전사인 탕웨이에게 레이싱을 가르치는 전직 레이서를 연기할 예정이다. <로맨틱 헤븐>이 “기존과 다른 매뉴얼을 만드는” 기회라면 <레이싱>은 원래의 자신을 심화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한재석은 영화 데뷔작인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를 끝낸 뒤,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영화를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이제 그의 나이 서른일곱이다. “관객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선까지 가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드디어 가까워질 수 있는 시기다. 과거에 비해서는 빠르되, 자신의 속도를 거스를 만큼 서두르지는 않을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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