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묵혀둔 시나리오 <대행업>을 토대로 만들었다. =<코르셋>과 같이 당선됐던 대종상 시나리오 공모 당선작이었다. 그때만 해도 연애편지 쓰던 시절이었으니 지금과는 연애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연애 대행업을 하는 에이전시 있다, 그 대표의 첫사랑이었던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가 의뢰를 해온다라는 설정만 살렸다. 그리고 나머지 부품은 모두 요즘에 맞게 바꾸었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연애가 모티브다. 결국 연애 잘 못하는 남자라는 점에서 전작의 연장선에 있는 인물이다. =난 내가 시라노의 영향을 받은지도 몰랐다. 예전에 배창호 감독님을 뵀는데, 그때 감독님이 <대행업> 시나리오를 봤다며, 시라노 스토리와 비슷하다고 하시더라. 그때 시라노의 영향을 깨달았다. 그러다 2년 전 명필름과 다시 각색을 하면서 아예 시라노를 전면에 밝히고 가자고 했다.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이는 명백히 <기쁜 우리 젊은날>의 안성기 선배 오마주였는데, 이번엔 오마주는 아니다. 그런데 최다니엘의 안경이나 꽃 같은 것이 안성기 선배를 연상시키니 결국 정서는 같은 셈이다.
-연애 대행업은 이미 많이 사용된 아이템이라 신선도에서는 고민이 있었겠다. =<Mr. 히치: 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 같은 영화도 나왔고, <뜨거운 형제> 같은 예능프로그램도 비슷한 설정이다. 그렇다고 안 할 건 아니다 싶더라. 내 오리지널리티만 가지고 가면 된다 생각했다. 요즘은 워낙 이런 컨셉의 프로그램을 많이들 하니까 오히려 의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더라. 설정은 비슷해도, 우리 영화가 사랑에 대해 한뼘 진지하게 나아가는 계기를 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
-최다니엘이 연기하는 상용이 결국 이 영화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핵심 인물이다. 소심남 이미지는 기존 최다니엘이 가지고 있던 이지적인 이미지와 사뭇 동떨어진 캐스팅이었다. =사실 최다니엘 캐스팅이 여러 인물 중 가장 파격적인 캐스팅이었다. 원래 시나리오에 상용은 40대 노총각이었다. 절대 연애 못할 것 같은 남자가 미녀와 연결되는 형식이어야 원작인 시라노와 맞다고 생각했다. 박철민 선배가 ‘원래 내 역할이야’라고 농담할 정도였으니까. 근데 가만히 보니 그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그림이지 싶더라. 마침 심재명 대표가 <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최다니엘을 추천했다. 굳이 시라노 조작단을 안 찾아와도 될 것 같은 사람, 허우대는 멀쩡한데 겉으로는 알 수 없는 내부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설정을 바꾸면서, 젊은 배우들의 상큼한 멜로가 그려졌다. 한마디로 발상의 전환이다.
-사랑의 약자가 결국 승자가 되는 착한 연애다. =착하다기보단 윤리적으로 올바른 남자의 승리라고 하는 편이 맞다. 누구나 그걸 지향할 거다. 나 역시 그렇게는 못 살지만,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병훈과 상용은 사실 두 남자가 아니라 한 남자의 다른 모습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20대 때의 내 모습이 소심하지만 진실한 상용에게 가까웠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남의 사랑은 코치해주지만 정작 자신의 사랑에 실패한 병훈에게 가깝다. 영화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지난날의 과오를 고백하고 싶었다.
-첫사랑에 대한 회고와 실현, 얼핏 현실적인 연애라기보다 이상적인 연애에 가깝다. 일관되게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고수한다. =그럼에도 최근엔 변화가 있다. 여전히 판타지를 그리지만 태도는 냉소적이 된 거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나이 먹으니까 그렇게 변화하는 거 같다. 그게 영화에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난 그걸 오히려 개성으로 변화하려고 노력했다. 변화하기 전의 내 모습이 평범하고 규격화된 로맨틱코미디였다면, 지금은 변화한 내 상태를 솔직하게 보여주고 좀더 진실하게 나가보자 싶었다. 물론 너무 까칠해지면 이 장르 자체에 위험이 오니 어느 정도는 머리로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앞선 인터뷰에서 ‘로맨틱 멜로 영화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일종의 선언을 한 건가. =로맨틱 멜로 장르의 특성상 판타지를 자극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내 방식으로 까칠해진 태도로 중화를 시켜도 내가 설득되지 않은 판타지로 남을 설득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지금까지는 괜찮지만, 이 상태로 더 나가면 위험하다. 그러니 그만하자 했던 거다. 근데 내가 설령 액션, 스릴러 장르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릇이 바뀌는 것일 뿐 그 안에 지금의 내 정서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게 더 재밌지 않을까. 굳이 특정 장르에 한정 지어서 영화에 접근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