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원작과의 승부라는 점에서 부담이 클 것 같다. =<무적자>가 100억원대의 액션 블록버스터처럼 비쳐지는 게 가장 부담스럽다. 사실상 그 정도 규모가 투여된 작품도 아니고 액션적인 부분보다 드라마를 강조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배우의 무게감이 있다보니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영웅본색>도 지금에 와서 보자면 사실상 큰 액션신은 세 군데 정도고 전체적으로 보자면 빈틈도 많은 작품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거의 판타지처럼 각자의 가슴속에 남게 된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영웅본색>의 팬이었으니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니고, 그렇게 가지게 된 기대로 인해 관객의 감상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해서다. 나는 김지운 감독과 달리 생계형 영화감독이라(웃음) 그 정도 규모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다. 거대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기대보다 탈북자의 이야기라는 드라마에 집중해줬으면 한다.
-그런 비교와 승부라는 점에서 배우들도 비슷한 중압감을 느끼리라 생각한다. =물론 원작의 배우들을 절대 이길 수 없다. 그건 <아저씨>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좀 심한 말이지만 술자리에서 너희 4명이 원빈 하나 이길 수 있을 것 같냐고도 했다. (웃음) 바꿔 말하면 그건 내가 우리 배우들을 너무 아끼고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뱉은 말이기도 하다. 영화가 공개되고 호불호가 명쾌하게 갈릴 거란 생각은 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말 네 배우만큼은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했다. 특히 송승헌과 조한선이 자기 야망으로 직선으로 나가는 캐릭터라면 주진모와 김강우는 어찌 보면 원작보다 더 난이도 높게 내면으로 들어가야 하는 지점이 많다. 그래서 배우들에 대한 평가만큼은 인색하지 않았으면 싶다.
-애초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나온 것도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 같다. =결국 15세 관람가가 나오긴 했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주제, 욕설, 폭력성, 모방범죄, 그렇게 네 가지가 문제가 됐다. 심의위원들은 보스인 조한선의 욕이 너무 적나라하다는 걸 문제삼았는데, 반대로 경찰인 김강우가 그에게 하는 같은 욕에 대해서는 별 지적이 없었다. 사실 초등학생도 하는 욕을 경찰이 하면 되고 범죄자가 하면 안된다는 거다. 그리고 조한선 일당이 송승헌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는 옥상장면은 모방범죄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원작과의 비교, 심의문제 등 그런 과정에서 하나의 줄기로 굳게 잡았던 게 있다면. =내 입장에서는 남자들의 멜로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형은 동생을 너무나 짝사랑하는데 동생은 자기 마음을 안 열고, 영춘 역시 혁을 향해 함께 다시 일하자며 사랑을 구걸하는데 그는 계속 묵묵부답이고. 그리고 태민은 그런 그들에게 다시 고향 북한으로 돌아가라고 괴롭힌다. 그럴 때 나는 ‘이런 세상에서 살아서 무엇하리?’ 하는 기분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내 다른 영화들의 정서나 결말과 비교하면 좀 차이점이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무적자>는 약간 좌파영화이면서 퀴어영화이기도 하다. (웃음)
-영화를 본 오우삼 감독과도 만났는데 어떤 얘기들을 나눴는지. =잘 봤다고 하더라. 자신은 당시 오히려 액션에 치중하면서 형제애에 신경 쓰지 못했는데 <무적자>는 거기에 좀더 신경 쓴 것 같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리고 나 역시 전에 내 영화 <파이란>을 리메이크하는 바딤 페렐먼 감독을 <씨네21> 대담을 통해 만난 적 있는데 감독들의 관계란 게 그렇다. 당연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창작자로서 서로의 접근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내 영화를 어떻게 만들 거냐? 그런 걸 따지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어떻게 내 영화를 좋아하게 됐을까, 그걸 먼저 생각하고 신기해하는 거다. 구스 반 산트가 <싸이코>를 리메이크하고 절망의 세월을 보냈지만 그 시작에 어떤 절실함과 자신감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원작과 가장 다르면서 인상적인 장면이 바로 혁과 철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면서 <무적자>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그 둘이 함께 밥상에서 머리를 맞대고 밥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을 하고 허송세월을 했을까, 느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찍을 때도 두 사람의 멜로장면을 연출한다는 느낌으로 했다. 게다가 원작보다 응어리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는 철에게 너무 리얼한 분노를 줘버리면 이후에 해소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런 장면이 필요했다. 그렇게 탈북자라는 정서, 멜로에 가까운 남자들의 관계라는 점에 포커스를 맞춰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짜 이건 멜로영화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