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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근] 내가 누구? 랩하는 군필 목장집 아들!
장영엽 사진 최성열 2010-09-21

<그랑프리>의 양동근

불온한 고백 하나. <그랑프리>의 양동근을 만나러 간다니 누군가가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일렀다. 간결한 대답, 무뚝뚝한 표정, 예상지 못한 반응으로 기자들을 굴복시키는 배우라 했다. 그 말을 듣고 예전 인터뷰 자료를 찾아보니 과연 그랬다. 양동근은 “네”, “아니오”, “생각 안 나는데”, “시나리오대로 했어요”로 이어지는, 기자들에겐 악몽 같을 마의 4종 답변을 몰고 다니는 배우였다. 그러나 실제로 만난 양동근은 짐작과 달랐다. 대답은 담백했으나 짧지 않았고, 표정은 무덤덤했으나 종종 웃음도 보였다. 스스로도 “변했다”고 했다. “군대에선 육하원칙에 따라 정확하게 보고를 해야 해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습니다, 라고 말해야 하죠. 거기에 적응하다 보니 (군대에 복무했던) 2년간 많이 바뀌었어요. 이젠 한 마디 할 거, 두 마디 하려고 노력하고.”

바뀐 건 그뿐만이 아닌 듯하다. <그랑프리>는 양동근이 “영화는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느낀 첫 번째 작품이다. 동료 배우와 담소도 나누지 않고 촬영장에 홀로 앉아 대본에만 몰두하던 배우는 여기 없다는 얘기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상황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입대문제로 도중 하차한 이준기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통이 절실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보는데 저랑 전혀 맞지 않는 캐릭터였어요. 우석이는 쉽게 말해 말수 적고 비주얼이 멋있어야 하는 인물이었어요. 태희는 그 인물에 맞춰서 감정선을 다 잡아놓은 상태였고요. 하지만 그렇게 갈 수는 없더라고요. 그건 제가 할 수 없는 캐릭터니까요.”

그리하여 <그랑프리>의 ‘백마 탄 왕자님’은 ‘괴짜 카우보이’가 되었다. 영락없는 목장집 아들 복장을 한 양동근이 경쾌하게 말을 몰며 상심한 주희(김태희)에게 실없는 농을 던지는 영화의 초반부 장면은 살짝 비튼 신데렐라 이야기를 보는 듯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트레이드 마크인 랩처럼 읊조리는 대사와 느긋한 듯 은근한 태도는 이 영화의 가장 큰 활력소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모두 양동근의 철저한 계산에서 비롯됐다. “일단 재미있고 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인물도 살리고 영화도 살리는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봤거든요.” ‘스터디하듯’ 설정을 고민한 끝에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낸 장면은 단연 주희와의 키스신이다. 주희에게 아랫입술을 물리는 바닷가 키스신과 경마장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연출된 마지막 키스신은 온전히 양동근-김태희의 합작품이라고.

<그랑프리>의 경험은 이후 양동근의 출연작을 결정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예정이다. “고뇌하는 역할 말고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든 겪으며 함께 가는 역할, 그러니까 우석이 같은 역할이 저에겐 맞는 것 같아요. 미국에 히어로 캐릭터가 있다고 하면 우리나라에는 우석이 같은 캐릭터가 필요한 것 같더라고요.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좋은 영향을 주는 그런 캐릭터를 앞으로도 맡아보고 싶어요.” 베스트 앨범을 내고 ‘래퍼 양동근’으로 살아갈 당분간 이 계획은 보류다. “제가 군대 있을 때 약속했거든요? 제대해서 앨범 내면 군용 민소매랑 전투복 바지 입고 활동하겠다고. 그 약속을 빨리 지켜야 할 텐데….” 이쯤이면 양동근을 변하게 한 건 팔할이 군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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