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배우 김태희는 요즘 숨 가쁠 정도로 바쁘다.
드라마 '아이리스'를 찍고 나서 곧바로 영화 '그랑프리'를 촬영했다. 이르면 내달 말에는 한류스타 송승헌과 함께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를 찍는다. 쉼 없는 행진이다.
사실 김태희는 다작 스타일은 아니다. "작품을 선택할 때 지나치게 심사숙고하는 편이었다"는 그의 말처럼 데뷔 10년차이지만 출연한 작품은 열 손가락에 꼽힌다.
2000년 CF로 데뷔한 김태희는 그간 시트콤 1편, 드라마 6편, 영화 3편에 출연했다. 세 번째 주연 영화 '그랑프리'는 연기에 임하는 자세를 바꿔 즐기는 마음으로 찍은 첫 작품이라고 그는 말했다. 최근 인사동에서 김태희를 인터뷰했다.
"예전에는 작품을 고를 때 심사숙고했어요. 대사도 천천히, 한 장면 한 장면 공들여 했죠. 이번에는 편하게 가자고 마음먹었어요. 공백 기간도 두지 말고 다음 작품을 찍자고 했죠. 연기에 임하는 자세를 아예 바꾸고 싶었습니다."
서른이 넘어가면서 김태희에게도 변화가 필요했다. 진정한 배우라는 이미지보다는 '서울대 출신의 얼짱 CF 스타'라는 이미지를 떨쳐 버려야 했다. 1년여의 공백을 딛고 출연한 드라마 '아이리스'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길 바랐다.
"드라마 초반 너무나 절박했어요. 제가 CF 스타라는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항상 연기력 논란이 따라다니고, 얼굴이 예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솔직히 인정을 해주는 배우는 아니잖아요. 그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어요. '아이리스'도 인정을 받지 못하면 이제 배우로서 가망 없는 게 아닌가라는 우울함에 짓눌렸죠. 정말 초반에 맘고생 많이 했어요. 끝날 때쯤 되니까 노력한 것만큼은 그래도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시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연기에 임하는 자세를 바꾸어보고 싶은데 '아이리스'를 계기로 그런 희망을 품어볼 수 있게 됐어요."
성공적이었던 '아이리스'를 끝마치자, '아이리스'의 양윤호 감독이 김태희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자신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그랑프리'의 여주인공 서주희 역을 김태희에게 맡아보라고 권한 것이다.
'그랑프리'는 경마 도중 사고로 애마와 자신감을 잃은 기수 서주희가 이끌어 가는 영화다. 주희는 모든 걸 포기한 채 제주도로 가 우연히 목장주 아들 우석(양동근)을 알게 되고, 그의 격려와 도움으로 다시 한번 그랑프리에 도전한다는 내용이 뼈대다.
"서주희는 복잡하거나 어려운 캐릭터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도 아니었지만, 감독님이 적극적으로 권유를 해서 하게 된 작품입니다. 아이리스로 쌓은 신뢰가 있어서 감독님을 믿고 했죠."
서주희는 그랑프리를 노리는 기수다. 그래서 말을 잘 타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말과의 호흡이 중요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영화 '중천'(2006)에서 말에서 떨어진 공포를 이겨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말에 대한 공포감이 컸어요. 사실 촬영 전에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죠. 영화 '각설탕' DVD를 봤어요. '메이킹 필름'에서 보니 배우들이 말에게 차이고, 말에서 떨어지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괜히 하겠다고 했나 싶었죠. 영화 찍기 전 고사 지낼 때 말이든 사람이든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 넘게 말이랑 계속 붙어 있으니 정이 들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계속 보고 있으니 예쁘고 귀여웠어요. 촬영도 잘 됐구요."
영화에서 양동근은 마치 랩을 구사하는 듯 리드미컬한 운율을 대사에 싣는다. 상대 연기자가 응대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양동근 선배는 계산된 애드리브를 해요. 자연스럽게 금방 생각해 내는 것 같은데, 전날 다 아이디어 내고 감독님에게 승인을 받아 정해진대로 하는 거예요. 본인대사를 스스로 많이 썼는데, 제 대사는 점점 줄더라고요.(웃음)"
'그랑프리'는 양동근이 도와주긴 했지만 김태희를 위한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느낌이 어땠느냐고 묻자 "(아이리스 이후) 욕심이 너무 과해지는 것 같은데, 영화를 보고 나니 많이 아쉽다"며 "그래도 그동안 김태희에게서 보지 못한 부분을 보시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영화는 추석 대목을 앞두고 오는 16일 개봉한다. '퀴즈왕', '시라노;연애조작단', '무적자', '해결사', '옥희의 영화' 등 6편의 한국영화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때다. 여기에 '레지던트 이블 4',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애니메이션 '슈퍼배드' 등과도 한판 대결을 벌어야 한다.
"'무적자'는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한 대작이고,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물리지 않는 소재의 로맨틱코미디였어요. 이런 센 영화들 틈에서 과연 우리 영화가 경쟁력이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우리 영화도 잘 나온 것 같아요.(웃음) 더구나 추석이잖아요. 아이와 어른들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경주 씬도 박진감과 흥분을 주고요."
서른 하나인 그녀는 현재 남자 친구가 없다고 한다. 결혼은 마흔 안에 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혼자인 게 불편하다거나 너무 외롭다거나 그런 게 아닌 상태죠. 물론 나이 들면 결혼도 해야죠. 그냥 재밌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서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요. 제가 좀 진지하고 재미없고, 스스로 비판적인 구석이 있어요. 예전에는 낙천적이었는데 이 직업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 같기도 해요.(웃음) 그동안 비판을 끊임없이 받았으니까요. 여기서 받은 상처가 나으면 다른 데서 터지고…. 그러다 보니 제 상처를 감싸 안아줄 수 있고, 항상 내 편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그는 스스로 샘이 많다고 했다. 특정한 맞수는 없지만, 연기 잘하는 배우를 볼 때, 몸매가 좋은 여성들을 볼 때 좀 더 노력해야겠다며 생각을 다진다. '여신', '얼짱'이라는 타이틀도 최대한 오랫동안 가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연기에 대한 욕심이 크단다. "한국에서 유명한 감독님들과도 다 작업해보고 싶고, 다양한 역할도 소화하고 싶다"는 그는 "대중성을 놓치지 않은 예술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CF 스타에서 배우로 거듭나는 김태희. 연예계 데뷔 10년차에 재도약을 꿈꾸는 그는 이제 일을 즐기기 시작한 것 같다. 앞으로 김태희의 연기를 주목해 봐야 하는 이유다.
"처음 모델로 활동할 때는 자세를 잡는 것조차 어려웠고, 혼도 많이 났어요. 어느 순간, 기술적인 부분을 터득한 뒤부터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CF촬영장은 그때부터 연기가 안 돼 받는 스트레스를 푸는 공간이었어요. 지금은 CF 촬영장보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이 더 재밌게 느껴져요.(웃음)"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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