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시간이 흐르면서 양파껍질처럼 하나씩 제 안의 모습이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열심히 일하면서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만의 연기스타일을 찾을 수 있겠죠."
'시라노 연애조작단'에 주인공 병훈으로 출연한 엄태웅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연애에 서툰 고객을 상대로 연애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에이전시를 배경으로 했다. 엄태웅은 에이전시 대표 병훈 역을 맡았다. 고객과 자신의 옛 여자친구를 연결해줘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다.
"시라노는 시나리오 자체가 친숙했습니다. 내가 겪어본 이야기 혹은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인 듯했죠. 연기를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찍은 것 같아요."
영화는 연애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차우'(2009)에서처럼 멧돼지가 눈앞에 있다고 상상하며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30대 중반으로 연애 경험이 있는 그에게는 좀 더 수월했던 편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항상 아쉬웠던 건 영화 속 캐릭터에 완전하게 이입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어요. 제 수동적인 태도가 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조금 달랐어요. 영화에서 배우가 만들어가야 하는 부분을 감독과 잘 소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촬영 때마다 이어진 술자리가 도움이 됐죠."(웃음)
영화 '기막힌 사내들'(1997)로 데뷔한 엄태웅은 최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작년에는 '핸드폰' '차우' 등의 영화를 찍었고 방영 중 줄곧 시청률 1위를 고수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김유신을 소화했다. 올해에는 '시라노 연애 조작단'을 찍었으며 지금은 드라마 '닥터 챔프'를 찍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 중 어디에 더 방점을 두느냐는 질문에 그는 "뭐든 가릴 처지가 아니다"고 했다.
"드라마도 놓을 수 없는 거고, 영화도 좋아합니다. 선배님들처럼 '영화만 찍겠다'고 말할 수 있는, 저는 그렇게 먹고살 수 있는 배우가 아닙니다.(웃음) 드라마든 영화든 사람이 하는 일이라 재미있는 구석이 있어요."
배우로 10여 년간 활동해온 엄태웅은 일 때문에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이 역은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 또 얼마나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촬영 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고 한다.
"작년, 재작년에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촬영장 나갈 때마다 압박이 심했죠. 그런데 '선덕여왕' 끝나고부터는 일하는 게 재미있어지더군요. 연기력이 는 것 같지는 않은데 뭐 하나가 탁 풀어진 것 같아요."
'엄정화의 동생'으로 알려졌지만 이제는 배우 엄태웅으로 우뚝 섰다. "한 분야에서 이미 끝까지 가본 엄정화 동생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는 그는 이제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을 찾고 싶다고 했다.
"최민식, 설경구 선배님의 연기를 보면 '불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그렇게 하고 싶은데 저는 뭔가 안에서 폭발하는 연기를 못 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이게 다 내 스타일인가 보다, 부럽지만 그런 불꽃 같은 연기는 나의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제 안에 있는 걸 찾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죠."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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