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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난 네게 반했어
2010-09-07

네 가지 키워드로 털어놓는 원빈을 향한 사모곡

키워드1 : 첫인상

‘촌놈 DNA’, 도시적 외모를 배신하다

백은하 ‘10 아시아’ 편집장

일단, 눈이 흔들린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미모, 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원빈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그러지 않기란 오히려 힘든 일이다. 90년대 미니시리즈 <프로포즈>의 내용이 가물가물한 사람이라고 해도 개 한 마리를 끌고 조용히 동네를 소요하던, 한쪽 눈을 살짝 가린 긴 머리 소년의 강림을 잊기는 힘들 것이다. 한국인의 그것이라고는 보기 힘든 이목구비, 화이트 셔츠 너머로 느껴지던 과하지도 빈곤하지도 않은 길쭉길쭉한 몸. 마치 강보에서부터 후광을 달고 나온 것 같은 이 ‘천상의 피조물’은 그렇게 등장부터 많은 이들의 눈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처럼 드라마 <꼭지>의 ‘명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원빈은 마음까지 흔드는 남자다. 연상의 다방마담에게 투박한 순정을 바치던 짧은 머리 고등학생. 굳게 다물고 있기보다는 하품을 하느라, 욕을 하느라 혹은 울먹이느라 늘 벌어져 있던 두터운 입술. 사랑도 분노도 품지 못하고 터뜨리고, 계산하기 이전에 돌격하고 마는 이 막무가내 촌놈에게 어느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새삼 강원도 태생이라는 정겨운 바이오그래피를 상기하지 않더라도 <마더>의 봉준호 감독이 찾아낸 시골 청년의 DNA는 때론 그의 서구적이고 도시적인 외양을 배신할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 직업적으로 그와 만나게 되는 순간의 과정도 비슷하다. 언제인가, 인터뷰를 기다리며 카페 뜰에 앉아 조용히 담배를 피우는 그 뒷모습에 먼저 눈이 흔들렸다. 세월이 비껴간 얼굴도, 좀처럼 과장과 수사를 허락하지 않은 말투도, 이제 안정감까지 겸비한 태도에서도 그랬다. 그러다 가끔 동네 바보처럼 ‘흐흐흐’ 소리내며 무방비 상태로 웃을 때, 아! 질문이 너무 어려워요, 라고 중학생처럼 되물을 때 이 남자는 비로소 마음까지 흔들고 만다.

벽에 걸린 아름다운 이국의 풍경처럼 멀고 아득했던 그가, 보통의 그것이 아니라 언제나 톱이었던 그가, 2010년 비로소 ‘아저씨’라는 무명의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피범벅이 된 얼굴에 총을 들고 이제 원빈은 오우삼의 남자들처럼 우리의 눈을 움직이고, 왕가위의 남자들처럼 우리의 마음까지 움직인다. 더 흔들어도 좋다. 아니 더 흔들어 다오. 눈 따위, 마음 따위, 이미 우리의 것이 아닌 지 오래되었으므로.

키워드2 : 액션

클리셰를 벗어났어, 발차기가 없잖아

김남훈 UFC 해설자·프로레슬러

UFC 해설자이자 현역 프로레슬러로 평소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아쉬운 점이 많았다. 정확히 말하면 액션장면이 일종의 클리셰로 고착된 느낌이었다. 바람 불고 느린 화면에 휘날리는 옷자락. 몇합을 주고받고 약간의 피를 흘리며 괴성을 내면서 달려나간다. 아니, 그전에 결투를 앞두고 주먹을 불끈 쥔 두 사람. 그런데 한쪽 주먹은 턱 옆에, 다른 한쪽은 가슴 근처까지 내려와 있다.

이른바 <야인시대> 포즈. 그런데 어떤 격투기에서라도 이런 자세를 취하면 상대 선수의 주먹에 얼굴이 재개발된다. 발차기는 어떨까? 십각구위(十却九危)라는 말이 있다. 발차기 10번을 하면 9번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불꽃 하이킥 크로캅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크로캅의 하이킥은 왼손 주먹과 몸통을 걷어차는 킥이 좋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삼자택일의 객관식 시험에 빠진다는 점에서 가능한 하이킥이었던 것. 게다가 한국영화에서 보는 발차기는 간결하지도 않고 공중에서 여러 번 뺑글뺑글 돌다가 튀어나온다. 아니, 주제가가 배경에 깔리면서 거대 로봇이 합체·변신할 때까지 기다리는 만화영화 속 예의바른 악당도 아니고, 그걸 기다려줄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원빈이 <아저씨>에서 보여준 액션은 분명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보던 것과 완전히 다른 부분이 있다. 일단 발차기를 철저히 배제하고 아주 현실적인 또는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 액션을 만들었다. 짧은 봉을 이용하여 경쾌한 리듬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필리핀 무술 에스크리마에서 펀치 공격의 템포를 가져왔고, 멀리 에둘러가는 펀치보다는 직진과 함께 찌르듯이 들어가는 손싸움을 만들었다. 이것은 원빈의 이미지와도 아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거친 액션을 소화하기엔 다소 여린 신체곡선에 어깨까지 좁은(얼굴도 작다!) 그가 검정 양복을 입고 360도 발차기나 ‘으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두 주먹을 거칠고 큰 궤도로 휘날리며 뛰어나갔다면 UDU 섬멸조가 아니라 영화 <마더>에서의 바보 캐릭터가 동네 건달들한테 괴롭힘을 당하가 성내며 달려가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나왔을 것이다. 또한 도검술 장면도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영화 <친구>처럼 배에다가 쑤셔넣는 무식한 방법이 아니라 신체의 각 부분을 적절히 긋고, 찌르고, 베면서 마치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맛나게 요리를 하듯 신나게 찔러댔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니 여성 관객 10명 중 8명이 휙휙 소리를 내면서 이 흉악한 액션을 흉내내는 기현상을 일으킬 만큼 중독성이 큰 장면이다.

사족 하나. 잔인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는 <아저씨>. 그러나 내 입장에서 보면 이리저리 튀는 피가 잔인한 게 아니라 극장 내 모든 남자를 일순간에 수산물로 만들어버리는 원빈의 외모가 제일 잔인했다.

키워드3 : 둘째아들 콤플렉스

소년의 순수와 남자의 강인함을 동시에

이숙명 영화 칼럼니스트

만일 원빈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아저씨>의 태식을 연기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거다. 그 누군가가 원빈보다 연기를 잘할 수는 있겠지만 원빈만큼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들어주진 못했으리라. 원빈의 출중한 미모 때문에 하는 소리가 아니다. 원빈은 ‘동생 역 전문’, ‘보호받는 역 전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때문에 <아저씨>는 그가 드디어 누군가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묘한 지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원빈 자신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전 항상 제가 보호해주는 입장이라 생각했어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제가 엄마 걱정, 형 걱정 너무 하고, <우리 형>에서도 제가 형을 보호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영화를 만들어놓고 보면 보호받는 역할이더라고요.” 그렇다. 그동안 원빈이 연기한 건 마냥 청순하고 보호가 필요한 막동이는 아니었다. 그는 항상 남자가 되고 싶은 소년, 혹은 남자의 싹을 가진 소년을 연기했다. 심지어 백치에 가까운 <마더>의 도준조차 자신의 남성성을 인정하지 않는 상대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돌변한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석이 괴물이 돼가는 형에게 “내 핑계 대지 마”라고 훈계할 때, <우리 형>의 종현이 ‘범생이’ 형을 무시하며 어린 폭군처럼 굴 때, 그들에게서는 남자가 되고 싶은 소년의 스트레스가 엿보인다.

그가 전문가(?)다운 솜씨로 연기한 이 동생들은 형에게 부여된 의무와 기대감조차 질투하고 마는 둘째아들 특유의 습성을 지니고 있다. 늘 자기 안의 남성성을 과시할 기회를 찾는다는 점에서, 둘째아들 콤플렉스는 꽃미남 계열의 남자배우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일맥상통한다. 때문에 원빈이 “날 좀 남자로 봐달란 말이다!”라고 온몸으로 호소하는 소년들을 연기할 때면 극중 캐릭터에 배우 원빈의 초상이 오버랩되는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원빈이 가진 이런 속성은 전형적인 캐릭터가 돼버릴 수도 있었을 태식을 묘하게 복합적인 인물로 변형시켜놓는다. <아저씨>의 태식은 누군가의 동생도, 피보호자도 아니다. 이 영화에서 원빈은 원하던 대로 마음껏 남성성을 발휘한다. 하지만 관객에게는 여전히 그가 보호해주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남자로 기억된다. 태식이란 캐릭터가 광범위한 호소력을 갖게 된 것도 바로 그 불균형 때문이다. 서른네살이나 되었으니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겠다 싶어서 <아저씨>를 택했다는 원빈에게는 실례지만, 소년의 순수와 남자의 강인함을 동시에 가졌다는 건 그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것이 <아저씨>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다.

키워드4 : 순정만화 이미지

늘 혼자였던 외로운 아이가 성장한 거지

유선주 드라마 칼럼니스트

“네가 그냥 커피라면 이 사람은 티오피야” 선언하며 여봐란 듯 키스를 하는 남자. 그리고 소녀의 목숨을 구했으면서 그 앞에서는 “너무 아는 척하고 싶으면 모르는 척하게 돼”라고 어눌하게 말하는 옆집 아저씨. 서로 동선조차 겹치지 않을 것 같은 두 남자는 모두 2010년의 원빈이다. 배우가 배역으로 대중을 설득하며 다양한 이미지를 추가해가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이 경우는 특별하다. <아저씨>의 태식과 티오피의 신민아 애인의 자리에 다른 어떤 이름을 올려놓아도 완고하게 거절하게 되는 이 마음은 어찌된 일일까?

<캔디 캔디>에 테리우스, 안소니, 스테아가 있듯, 어떤 타입의 정서와 이미지들을 강력하게 환기시키는 이름들이 있다. 원빈에게 주어지던 드라마 배역들을 추려보면, 순정만화의 이름들에서 시작점을 찾게 된다. 원빈은 한·일 합작드라마 <프렌즈>와 <꼭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작품에서 가혹할 정도로 그들을 재현할 것을 요구받았다. 소중한 이를 잃은 뒤 어둠 속에 웅크리고 늘 혼자 지내는 사람. 마주 보는 것보다 애틋한 눈빛으로 누군가를 응시하는 일이 더 많은 남자. 이건 <프로포즈>(1997)의 김희선 옆집 미소년이고, <레디고!>(1997)의 형을 잃은 승주다. 어느 정도는 <광끼>(1999)의 민이, <가을동화>(2000)의 태석도 찾을 수 있다. 특히 초기작들은 필터나 조명, 음악 등으로 다른 인물들과 단절시키는 듯 원빈의 이미지도 고립시킨다. 더없는 비애, 세상에 없을 듯한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아내려던 시도는 때론 원빈의 미숙한 연기나 조기종영 때문에 실패했고 맥락을 떠난 대사 한줄이 유행어가 되어 떠돌기도 했다. <아저씨> 이전은 어떤 의미에서는 조금씩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아저씨>는 긴 설명 대신 태식이 소미에게 차려준 밥상 위의 소시지 달걀부침을 보여준다. 태식이 소시지를 살까말까 망설이던 장면은 소미의 방문을 가늠하던 건 아니었을까? <아저씨>는 태식과 소미 사이의 거리를 같은 장소의 공기로 감싼다. 그런 것들을 동력으로 태식은 절박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다.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이나 우정, 단 한번의 친절에 의미를 담아 모든 것을 걸던 순정만화의 인물들처럼.

그 캐릭터들과 시간을 함께한 원빈에게 쌓인 이미지들을 반대로 놓으면 그건 티오피 광고 속 신민아 애인이 된다. 결국 사랑을 완성하고 달콤한 말로 사랑을 확인받던 캐릭터들로 대중의 큰 공감을 얻어냈던 다른 누군가가 원빈의 대사를 했다면 어땠을까? 조금 웃기지만, 그냥 커피와 티오피 사이의 무수한 커피들, 지나간 연인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만 같다. 갑갑할 정도로 말이 어눌하고 늘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만 보던 이미지의 원빈이 세상에. 티오피의 대사를 선언하는 순간, 마치 처음 이룬 사랑을 구경하듯, 눈꼴 시고 설레는 마음까지 불러온다. 원빈은, 시간을 그냥 보낸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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