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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미남’이란 편견에 갇히지 마시라
2010-09-07

함께 작업했던 감독들, 배우 원빈을 말한다

뚱하고 미련한 인물의 코미디도 잘할 걸

<마더>의 봉준호 감독

<마더>의 아들 역할은 시나리오 쓸 때 정해놓지 않았다. <살인의 추억> 때 함께 일했던 김선아 프로듀서를 만났을 때 원빈 얘기가 나왔다. 다들 도시의 핸섬 가이나 안구정화용 배우라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은데(웃음) 실제로 보면 되게 소박하고 현실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고1 때까지 강원도 정선에서 자랐다고도 했다. 제작사 바른손에서도 원빈을 추천했고. 식사 약속을 잡았는데, 원빈이 헐렁한 오리털 파카를 입고 식당에 들어오더라. 아, 도준이네 싶었다. (웃음) 미모가 핸디캡일 정도로 잘생겼지만, 하릴없이 왔다갔다하는 시골 남자애들의 무드 같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목소리 톤이 좋다. 우울하고 뚱하고, 이상하게 고집스런 느낌이 있다. 그리고 그 톤을 본인이 컨트롤할 수가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중에 뚱하고 미련한 인물이 벌이는 온갖 해프닝을 담은 코미디를 찍어도 잘할 것 같다. 주변에선 말리는데 혼자 뚱하게 밀고 나가는 그런 거 있잖냐. (웃음) 특히 <마더> 막바지 세트 촬영 한달 기간이 그에게 승부처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원빈이 죄수복을 입고 있는 감옥 장면, 면회실 장면 등은 매우 밀도 높은 장면이 총집합되어 있다. 거기서 대단한 집중력을 보여줬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다섯살 때 농약 먹은 얘기를 할 때다. 원빈이 “뭔가 생각났다”면서 한쪽 눈을 가리고 슥 돌아본다. 그 가려진 반쪽이, 이미지적으로나 그때 원빈 얼굴에서 뿜어져나오는 느낌으로나 대단했다. 게다가 유리 반대쪽에선 김혜자 선생님이 하이피치의 고주파 비명을 지르는데, 원빈은 뚱하고 묵직한 소리로 “창피해, 집에 가”라고 무지막지하게 받아친단 말이다. 그런데 원빈은 본래 근심 걱정이 많은 캐릭터다. (웃음) 내가 “잘했다, 오케이”라고 해도 “감독님, 마음에 안 드시는데 그냥 가시는 거죠”라고 묻더라. (웃음) 내가 아니라고 해도 나중에 프로듀서한테 또 물어보고. 좋아하는 장면을 하나 더 꼽는다면, 아정을 돌로 치고 난 다음이다. 당황한 도준이 휴대폰을 꺼냈다 폴더를 열었다 소리를 꽥 질렀다 하면서 로봇처럼 구는 그 장면 말이다. 매우 어려운 연기였다. 하나하나 지시하지 않고 이런 느낌이라고 대충 설명만 하고 슛 들어갔는데, 네 번째 테이크 만에 그 연기가 나왔다. 명장면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원빈은 또 안 믿고 우울해하고 괴로워하기에 두세 테이크를 더 찍었다.

<마더> 술자리에서 원빈한테 액션영화, 진짜 마초영화 같은 거 하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보살핌받지 말라고, <마더>로 종지부 찍으라고. (웃음) 우연의 일치겠지만 원빈이 이번 <아저씨>로 다른 평가를 받으니까 괜히 으쓱하고 기분이 좋다.

몸치도 아니고 센스까지 갖춘 영민한 배우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

원빈이 <아저씨> 시나리오를 재밌게 읽었다고 연락이 왔을 때 궁금했다. ‘한류스타 꽃미남 배우’가 <아저씨>라는 제목의, 40대가 주인공인 영화를 어떻게 재밌게 본 걸까. 이번이 아니면 원빈을 언제 보겠나 싶어(웃음) 서둘러 약속을 잡았다. 대화하면서 이 사람에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다는 걸 느꼈고 점점 확신이 들더라. 재밌는 건 당시 내 사무실에 김영빈 감독님의 <테러리스트> 포스터를 붙여뒀었다. 최민수씨가 얼굴 상처에 밴드를 붙이고 빗속에 서 있는 그 포스터를 너무 좋아해서, 태식이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며 붙여둔 거였다. 저녁 늦게 사무실에 온 원빈이 “혹시 얘기 들으셨어요?”라면서 깜짝 놀라더라. 영화가 참 멋진 거구나, 나도 배우가 되고 싶다고 느낀 최초의 영화가 <테러리스트>였다면서.

무술 훈련을 진행하고 협의하면서 느낀 게, 이 사람이 몸치가 아니다. 굉장히 센스도 좋고, 어떻게 동작을 취해야 자신의 장점이 더 잘 드러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운동 신경이 없어도 안되고 센스가 없어도 안되는데, 촬영이 진행될수록 그 부분에 대해 원빈에게 확신을 가졌다. 오히려 나중에는 액션 걱정 안 하고 감정적인 부분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관객 리뷰를 보면 ‘원빈의 변신, 발견’ 이런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연출자 입장에선 되게 고맙다. 엄밀히 말하면 원빈이라는 배우가 원래 갖고 있던 여리면서도 거친 이미지를 내가 남들보다 조금 먼저 끄집어낸 것뿐인데….

원빈은 여러 가지를 갖고 있는 배우다. 단순히 잘생겼다는 차원이 아니라 감성 연기를 충분히 잘할 수 있는 근사한 마스크다. 게다가 인간성이라든가 태도와 어긋나는 점이 있다면 그런 느낌이 잘 안 나올 텐데, 배우 자체가 진중하다. 현장 스탭에게도, 배역에도 한결같다. 그의 성격이 소미와의 관계를 보여줄 때 장점으로 발휘됐고, 액션 연기에서도 몸을 헌신적으로 던졌기 때문에 지금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 원빈 신드롬의 모든 결과물은 원빈 혼자 스스로 다 가져가도 되지 않나, 그런 대접을 받아도 마땅하지 않나 싶다.

<아저씨> 중 내가 좋아하는 원빈의 장면은 눈알이 들어 있던 병이 깨진 다음 람로완을 쳐다보는 그 장면이다. 태식은 이미 소미가 죽었다고 판단했고, 이제 모두를 죽여버리겠다고 결심한다. “니들 다 죽었어!”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아주 싸늘하게 감정이 배제된 채로, 터미네이터 같은 살인 기계가 되는 거다. 내가 제시한 디렉션은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이해하고 태식이라는 캐릭터를 잡아내는 원빈의 역량이, 그 소름 돋는 표정을 만들어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연기해서 딱 맞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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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봉준호/영화감독 , 이정범/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