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급은 영화를 관객에게 배달하는 일이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배급하는 사람을 택배 기사에 비유하곤 한다.” 영화 투자배급사 싸이더스FNH 배급팀의 허한진 대리에게 배급이란 어떤 일인가라고 물어보자 돌아온 답이다. 어쩌면 이 말만큼 영화 배급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도 없을지 모른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창업투자회사에서 회계 관리를 맡았던 허한진 대리는 MK픽처스(2005년 명필름과 강제규필름이 합병하면서 탄생한 영화제작사)를 거쳐 현재 싸이더스FNH에서 배급 일을 하고 있다. 배급으로 참여한 작품만도 50편에 이르는 베테랑이지만 그는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했다. “나보다 뛰어난 선배들이 더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보니 훨씬 자신만만했다.
-배급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한마디로 영화를 관객에게 도달시키기 위한 모든 일을 한다. 투자배급사는 시나리오 개발부터 맡는다고 보면 된다. 매주 시나리오 회의를 하고 투자사를 관리한다. 제작할 영화에 대한 정보를 투자사들에 꾸준히 알려야 한다. 마케팅팀과 함께 마케팅 전략을 논의한다. 경쟁작을 파악, 분석하고 관람 등급도 신경 쓴다. 청소년 관람불가인지, 전체 관람가인지에 따라 흥행 성적이 크게 차이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봉일 선정’과 ‘라인업 구성’이다. 영화의 성격에 맞는 개봉일을 정해야 하고, 한해 라인업을 적당한 날짜에 잘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싸이더스FNH에 어떻게 들어갔나. =남들처럼 시험쳐서 들어왔다. 2007년 MK픽처스를 나와 3개월 쉬다가 싸이더스FNH에 지원했다. 서류전형, 1차 면접, 2차 면접을 거쳤다. 2차 면접에서는 차승재, 김미희 대표님, 모회사인 KT 임원이 들어왔는데 그들이 내게 질문을 던진다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때 차승재 대표님이 “특정 지역의 인구가 얼마인데 그 지역의 영업은 어떻게 해야하나?”라고 물어보신 기억이 난다.
-요즘도 그런 방식으로 선발하나. 싸이더스FNH의 경우 어떤 인재를 선호하나. =대체로 그런 식이다. 얼마 전 배급팀에서 한명 선발했다. CJ CGV에서 극장 매니저를 하던 친구다. 대부분 투자배급사는 극장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극장 시스템을 전부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배급 일을 배우는 데 어느 누구보다 이해가 빠르기 때문이다. 롯데의 경우 엔터테인먼트와 극장 사업을 함께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선발한다.
-함께 일한 MK픽처스의 심재명 대표, 싸이더스FNH의 차승재, 김미희 그리고 현재의 최평호 대표로부터 배운 것은 무엇인가. =심재명 대표님은 모니터 시사 등을 통해 나온 관객의 반응에 귀를 기울인다. 차승재, 김미희 대표님은 명확하게 옳은 길이라고 판단되면 뚝심있게 밀고 나간다. 최평호 대표님은 CJ엔터테인먼트 투자배급 관련 출신답게 배급사 라인업과 비즈니스에 대한 여러 가지 방향을 알려주신다. 특히 라인업의 개봉일을 정해놓고 모든 스탭들의 스케줄을 직접 챙긴다.
-지금까지 배급에 참여한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모든 작품들이 소중하지만 처음으로 배급 일을 배운 MK픽처스의 <광식이 동생 광태>(2005)다. 26, 27살 때였는데, 영화가 내 나이대의 여성을 타깃으로 한 작품이었다. ‘나도 이런 영화 보고 싶어’라는 마음이 절로 생겨나 며칠씩 심야 근무할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싸이더스FNH에서 작업한 영화 중에서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이다. 이 작품은 스코어가 너무 잘 나와 배급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스코어가 잘 나와서 배급이 힘들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배급팀이 하는 일 중 하나가 매일 상영관 및 좌석 수를 체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멀티플렉스 3관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200개 좌석에서 하루에 6번 상영하면 1200개를 점유하는 건데, 300개 좌석이라면 더 많은 수입을 거둘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좌석 수를 매일 체크해 점유율을 계산하면서 극장쪽에 ‘몇관을 더 늘려달라’는 요구를 해야 한다. 영화가 흥행할수록 일은 더 바빠진다. 회사에 들어가서 매일 데이터를 정리해야 하고. 기분은 최고다.
-올 상반기 싸이더스FNH 라인업 중 가장 보람있었던 작품은 <하녀>인가. =맞다. <하녀>는 올해 라인업 중에서 가장 많은 관에서 개봉했다. 개봉 첫주 470여개관에서 개봉했다. <하녀>는 마케팅 포인트가 명확한 영화다. 전도연이라는 최고의 배우, 임상수 감독만으로도 화제가 된 작품이다. 그래서 배급 전략도 간단했다. 와이드 릴리즈하자. 무조건 많이!
-고민도 많을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투자배급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 고민이 있다. 항상 다른 사람이 만든 작품을 가지고 일을 하다보니 창작욕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창작자가 될 것인가, 회사원이 될 것인가’라는 고민을 종종 한다. (본인은 어떤가?) 물론 그런 고민을 하지만 지금은 회사에 충실해야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