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우울증에 시달리는 초등학교 교사 애나(크리스티나 리치). 애인 폴(저스틴 롱)과 크게 다투고는 빗길 운전을 하다 옆 차선에서 끼어든 트럭을 들이받는다.
가까스로 의식을 차린 애나는 말쑥한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다. "여기가 어디냐"는 말에 엘리엇(리암 니슨)이라는 이 남자는 시체실이라며 당신은 이미 죽었다고 대답한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갑작스런 비보에 당혹한 애나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움직이려 하지만 좀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엘리엇은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라고 충고하고, 애나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시체실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호소한다.
영화 '애프터 라이프'는 사망선고가 내려지고 나서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망자의 영혼이 이승 주변을 배회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폴란드 출신 아그네츠카 보토위츠 보슬루 감독은 설화나 신화에서 많이 본 듯한 이러한 소재에 스릴러 양식을 가미함으로써 중반까지 꽤 흥미진진하고 탄탄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는 여지를 남기는 미묘한 대사를 축적해나가며 애나가 과연 살았는지 죽었는지 막판까지 관객을 헷갈리게 가림막을 쳐 놓는다. 80년대 B급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거친 화면, 그로테스크한 조명, 틈만 나면 시체실을 탈출하려는 애나와 이를 막으려는 엘리엇의 대결구도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죽음을 다루는 영화답게 삶에 대한 허무주의가 짙다. "사람들은 죽는 게 두렵다고 말하지만 사는 게 더 두려운 거다" "죽어야 비로소 삶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붙잡을 만한 삶이었나?" 등 삶의 공허함을 건드리는 대사가 이어진다.
아역 배우 출신의 크리스티나 리치가 성인 연기자로 변신해 노출 연기를 선보인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남자 배우 중 한 명인 리암 니슨도 제 몫을 했다.
다만,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영화는 빈약한 상상력을 드러낸다. '죽음의 허무' '살아있을 때 제대로 살자'는 동어반복의 메시지가 계속되면서 지루함이 더해 간다. 절박하게 생을 원하다 갑자기 모든 걸 포기하는 애나의 태도도 설득력이 약하다.
영화가 끝나고 흐르는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의 노래(Exit Music)는 우울한 결말에 심란함을 더한다.
9월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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