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페루의 금광을 노린 미국 기업과 20년간 싸운 신부가 있다. 주민들과 함께한 끈질긴 싸움 과정에서 신부는 기업들로부터 '악마'란 별명을 얻었다.
캐나다 출신의 여성감독 스테파니 보이드는 10여년간 이 신부의 곁을 지키며 그와 주민들의 지난한 투쟁을 카메라에 담았다.
23일 오후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제7회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EIDF) 기자간담회에서 보이드 감독은 "10년 넘게 작업하면서 주민들과 신부의 용기가 내게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는 힘이 돼줬다"고 말했다.
그가 연출한 '악마라 불린 신부'는 페루 최대 노천광산이 있는 카하마르카 주(州)를 배경으로 미국 거대 기업의 광산개발 계획에 맞서 고향을 지키려는 주민들과 마르코 아라나 신부의 투쟁을 다뤘다.
마르코 신부의 행적은 민간 보안업체에 의해 철저히 감시되고 있었고 보이드 감독은 마르코 신부를 향한 감시와 위협을 고스란히 카메라로 기록했다.
그는 촬영과정 중 신변의 위협이 없었냐는 질문에 담담하게 "나보다 주민들이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종군기자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카메라로 찍는 것보다 카메라를 멈추는 게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저에게 카메라는 보호막(shield)이 돼줬습니다. 영화 제작이 일종의 자기 방어였던 셈이죠."
보이드 감독은 "한국관객에게 이 영화를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다"며 "페루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환경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주제"라고 말했다.
"대륙을 넘나드는 거대 기업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벌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영화로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공동체를 설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는 끝으로 이 말을 꼭 덧붙이고 싶다며 아라나 신부가 영화 말미에 했던 말을 전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하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okk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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