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마당 씨네랩(CineLab) 김형희 과장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된 건 용인대학교 영화과 허욱 교수와의 술자리에서였다. 졸업영화제를 치를 때마다 제각각 다른 버전의 디지털 작품들을 한데 모아 상영하는 것이 엄청난 골칫거리였는데, 김형희 과장의 도움으로 이제는 상영사고 없이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알고 보니 김형희 과장은 독립, 단편영화를 만드는 이에겐 없어선 안될 유능한 ‘마스터링 테크니션’이었다.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맞춰 여름휴가를 내고 휴식처에서도 영화인들을 위한 동영상 강의 서비스를 구상했다는 김형희 과장을 어렵사리 만났다.
-‘마스터링 테크니션’이라는 크레딧이 생소하다. =직접 만들어 붙였다. 흔히 내가 하는 작업을 색보정 혹은 DI(Digital Intermediate)라고 부르는데 적절하지 않다. DI의 경우 필름으로 촬영해서 디지털로 상영할 때 중간에 CG 작업 등을 위해 디지털로 변환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젠 디지털로 찍어서 디지털로 상영하는 일이 빈번하다. 색보정 또한 촬영시에 실수한 것을 바로잡는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그래서 우린 컬러 그레이딩이라 부른다. 너무 복잡한가. (웃음) 컬러 그레이딩이 예술적인 영역이라면 마스터링은 기술적인 파트다. 상영환경이 디지털화되면서 포맷도 다양해졌다. 불과 1, 2년 전까지만 해도 상영을 위한 소스는 필름 아니면 테이프뿐이었는데 이제는 DCP(Digital Cinema Package) 등을 활용하지 않나. 마스터링 테크니션은 다양한 포맷의 영상을 출력하고, 또한 이 과정에서 가장 좋은 화질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을 제안하고 적용한다. 지금은 이 일만 하겠다고 하면 월급을 주는 곳이 없어서 컬러 그레이딩 작업도 병행하고 있지만.
-그전에도 영상기술쪽 일을 했나. =첫 직장은 광고영상을 제작하는 한일미디어였다. 학원을 다닌 뒤 3D 작업자로 입사했다. 그런데 입사 한달 만에 퇴출 판정을 받았다. 그때부터 2D 합성하고 프레젠테이션 영상 만들고 별의별 잔일들을 했다. 그 뒤로 인터넷 방송, DVD 제작 일을 하기도 했는데, 내가 들어가는 회사마다 얼마 안돼 문을 닫았다.
-컬러 그레이딩, 마스터링 작업은 언제부터 시작한 것인가. =DVD 회사에 있을 때 등떠밀렸다. 그 회사가 후반작업을 포함한 영화제작 일도 하려고 했던 곳이었다. 인원이 없으니까 나에게 이 일을 시킨 건데. 처음엔 색이 안 보인다고 불평도 하고 그랬다. 그랬더니 감독과 촬영감독이 요구하는 대로 오퍼레이팅만 하면 된다고 하더라. 한경훈 촬영감독님이라고 이쪽 분야에선 아주 유명한 분이 계시다. 워낙 독보적이라 정작 촬영은 못 나가시고 매번 컬러 그레이딩 작업만 하신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혼자 작업하기 힘들어서 인원을 충원하셨다고 하더라.
-공대 출신인가. 기계치라면 엄두도 못 낼 것 같다.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수업을 거의 안 들어갔다. 배운 것 중 기억나는 건 ‘모르면 만지지 마라’가 전부다. 다른 과는 잘못 만져도 ‘찌릿’ 수준이다. 기껏해야 200볼트니까. 그런데 전기공학은 최소 1만9200볼트를 만지니까 잘못하면 즉사다. 영상 기술에 대한 지식은 영상 관련 동호회에서 더 큰 도움을 받았다. 공부는 해야겠는데 기초가 없으니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관련 커뮤니티의 각종 질문들에 대한 조사를 했다. 그리고 배 놔라, 감 놔라 답변들을 올렸다. 한경훈 촬영감독님을 알게 되고 DVD 회사에 들어가게 된 것도 인터넷에서의 활동 때문이다.
-씨네랩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처음엔 1천만원 정도로 컴퓨터 몇대를 들여놓을 생각이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담당자가 한경훈 감독님과 연락이 닿으면서 실질적인 기술 지원이 가능한 센터로 변모했다. 예산도 15배는 더 늘어났다. 근데 워낙 독특하게 설계하다 보니 아무나 운영을 못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씨네랩이 만들어지면서 번들로 딸려왔다. (웃음)
-마스터링 테크니션이 되려면 어떤 자질과 준비가 필요하나. =컬러 그레이딩 작업의 경우 사진 전공자가 유리한 것 같다. 마스터링 테크니션은 교육 시스템이 전무한데 차라리 퀸텔이라는 회사에서 내놓은 용어사전을 훑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건 편법을 쓰지 않고 정도를 가는 것이다. 이를테면 18시간이 걸리는 렌더링 작업이 90% 진행됐다고 하자. 그런데 뒤늦게 깜빡 놓친 게 생각났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최종검수 때 감독과 촬영감독도 발견하지 못한 자신만 아는 실수라면. 일주일 이상 밤샘을 했다고 해도 이 경우 취소 키를 누를 수 있어야 한다. 작은 것에 눈감다보면 전체가 대충대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