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8월, 그 첫 주말을 정동진에서 보냈다. 그동안 정동진영화제를 찾았던 기억을 더듬어보니 올해로 일곱 번째. 지지난해인가, 심한 여름 감기로, 출발 직전 항복을 외쳤던 그해를 제외하고는 스무살 이후 나의 여름은 언제나 정동진과 함께였다. 처음 영화제를 찾았던 2003년, 영화제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한낮의 땡볕 아래에서, 넓은 운동장에 착착 의자를 깔고 닦던, 그 일사불란하던 움직임을 기억한다(그건 정말이지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다 날이 어두워지면 영화를 봤고, 밤새도록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마셔대고, 대충 일어나 바닷가로 기어나가 자장면을 나눠먹다가, 또다시 운동장의 의자며 스크린을 점검하고, 밤이 되면 맥주와 함께 흘러간 3일의 밤과 낮. 정동진은 그런 곳이었다. ID카드 따위 없이도 누구라도 자유롭게 영화를 보고, 함께 술잔을 나눌 수 있는, 동시에, 누구라도 함께 영화제를 준비하고 정리할 수 있는(해야 하는!). 그렇게 밤낮 뺑.이.를 치면서도, 다음 해면 또 어딘가에서 슬금슬금 모여든 이들이 운동장 한 가득 의자를 채우고 있는, 이 말도 안되는 풍경을 가능하게 하는 곳! 물론 알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선배들은 ‘너가 아시바를 쌓아봤어?’, ‘모기 쑥불이나 한번 뜯으러 가봤어?’라는 맹공을 퍼부을 것임을. 일단 못 들은 척.
올해는 역대 가장 많은 관객이 영화제를 찾았다고 한다. 기분 좋은 소식임에 분명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영화제는 여전히 적자일 테고, 스탭들은 또 ‘내년엔 어찌하나’를 고민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 불안하지 않은 건 내년 이맘때면 자연스럽게 정동진에 모여, 길고도 짧은 여름밤을 보낼 누군가가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 지금까지의 열두해가 그러했듯, 올해도 또 내년에도 나와 우리의 여름은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정동진 식구 여러분, 불안하지 않다고 한 건 사실 뻥이었어요. 제 맘 알죠!